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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진당 해산, 분단 상황 고려하면 불가피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20. 12:11

[사설] 통진당 해산, 분단 상황 고려하면 불가피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4.12.20 00:02

 
헌법재판소가 어제 국내 헌정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과 해당 정당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 해산은 세계적으로도 이번이 다섯 번째일 만큼 흔치 않은 사례여서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킨 결정이었다. 통진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재판관 9명 중 8명이 통진당의 위해성을 받아들여 정당해산 인용 의견을 냈고, 한 명만 기각 의견을 제시했다. 일부 진보와 중도 성향의 재판관까지도 해산에 찬성했다.

 헌재의 판단은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고심 어린 결정이었다. 폭력적 방법으로 체제 전복을 모의했던 RO 모임이 적발된 후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숨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법무부는 통진당의 활동이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헌재에 요청한 것이다. 헌재는 통진당의 주도세력이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민족해방(NL) 계열로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헌법 체제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집권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통진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과 맥을 같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통진당이 노선이나 강령만 북한을 추종했다고 보지 않았다. 통진당의 실제적인 활동이 우리 사회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석기를 포함한 RO 모임 참석자들이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의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무기제조 및 탈취 등 폭력수단을 실행하기 위해 회합한 점 등을 중요한 정당해산 사유로 본 것이다. RO의 행위가 정상적인 정당 활동의 범위를 넘어서 스스로 법과 질서를 훼손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이와 함께 헌재는 “정당 해산이 헌법을 수호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비롯된 만큼 해당 정당의 국회의원의 대표성도 인정할 수 없다”며 통진당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도 결정했다. 이는 국회의원이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정당 해산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첫 사례다. 이들 중에는 국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뽑은 지역구 의원 3명도 포함됐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국민의 선거권이 헌법기관에 의해 제한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충분한 설명과 신중한 처리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헌재 결정이 냉엄한 남북 분단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에 무거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음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정당 해산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하는 정당에 대해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극단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기본 질서란 다수뿐 아니라 소수를 배려하고, 다원적 가치를 포용하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따라서 나와 다른 세계관을 포용해야 한다. 통진당 문제는 표현과 결사의 자유라는 보편성과, 남북이 대치한 예외적 상황에서 민주질서 수호라는 특수성의 측면이 충돌하는 경계 지점에서 일어났다. 국제앰네스티가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국제사회 일각의 비판적 관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결정은 폭력을 통한 체제전복 시도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다양하고 비폭력적인 진보 가치의 표현과 활동이 위축돼서는 곤란하다. 민주사회란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며, 다원성을 존중하고, 소수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모든 가치는 도전과 비판을 받는 가운데 발전한다. 도전과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반문명적이며, 퇴행적인 사회다. 그런 차원에서 기각 의견을 제시한 김이수 재판관의 견해도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RO 모임의 참석자들이 통진당 전체를 장악한 것이 아니고, 이 모임에서 논의한 구체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모임에서 논의된 민주질서 위배 사안을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부 보수단체가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스스로 헌재 결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비민주적 행위다.

 통진당 해산은 법의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 모든 정당활동은 헌정 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주질서 수호의 과제는 이제 시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결정 이후 벌써부터 보수와 진보 세력 간에 갈등의 조짐이 보이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통진당 해산 결정을 민주질서와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