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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근작가의 불안한 초상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9. 9. 06:24

 

오형근작가의 불안한 초상.jpg

오형근작가의 불안한 초상

박영택 교수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 미술 평론가

이 사진은 오형근이라는 작가의 사진입니다.
제목은 소녀인데 부제가 불안한 초상입니다
.
사진을 보시면 교복을 입은 소녀의 하반신이 드러나 있습니다
.
상체는 잘라져있고 두 팔과 손가락에 칠한 매니큐어, 짧은 치마, 무릎, 다소 상처가 나있는 종아리, 깜찍한 키티 캐릭터가 그져있는 흰 양말을 신고 있습니다. 얼굴이 부재하고 상체가 없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수 없습니다. 얼굴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추측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상상력에 따라서 어떤 얼굴을 대입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줍니다.

오형근의 이 사진은 여학생을 스튜디오로 불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게 우리는 사진기 앞에서 경직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자신의 어떤 한 순간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모습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찍히기 직전에 대게 불안해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타인의 시선에 불안해합니다. 우리가 어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나 혼자 있을때 보다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때, 누가 나를 자꾸 지켜보고 있을때 그때 무척 불안합니다. 불안할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땀이 나거나 손을 모으거나 손가락을 움찔거리거나 하는 여러가지 증세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

오형근은 사진찍기 직전에 불안한 소녀의 손과 다리에 주목했습니다. 또한 디테일한 손가락과 발, 양말, 짧은 치마는 오늘날 동시대 소녀들의 모습의 전형성을 알려줍니다. 알다시피 오늘날 중고등 학생들의 교복은 초미니입니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귀걸이, 목걸이, 매니큐어, 패디큐어, 캐릭터 양말 또는 일반적 아가씨들의 수준에 능가할 정도로 화려하고 관능적인 옷차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것을 두르고 치장하는 것이 오늘날 여자가 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광고나 텔레비전, 영상매체를 통해 교육받고 학습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
소녀가 여자가 되고 소년이 남성으로서 자란다는 것은 그 사회의 대중문화를 통해서 학습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하나의 젠더로서 살아나간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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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녀들은 여성이 되고 싶을까요
?
그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기호들을 자신의 몸에 두를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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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적합한 화장, 악세사리, 옷차림, 섹시하고 관능적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포즈들과 어떤 사물들을 몸에 두를 때 소녀는 성인여자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중고등학교 모든 소녀들은 거의 획일적인 화장과 옷차림과 사물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기서 더이상 개별성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한 개인성이라는 것은 부재하고 그 자리에 대중매체를 통해서 강제되고 학습된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코드만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들은 불안합니다. 아직 소녀들은 어른이 아니기때문에 성인여자를 흉내내면 흉내낼수록 자신들의 불안한 정체성에 더욱 곤혹스러워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해된 인간들입니다.
대학에 들어가거나 성인이 되기전까지는 아직 인간취급을 받지 못함과 동시에 청소년 자체의 문화도 부재한 곳입니다. 오로지 획일적인 교육만이 강제되고 있는 현실상황에서 소녀들은 금기를 끝없이 위반하면서 성인이 되고자 열망합니다. 그래서 성인여자들의 옷차림과 화장과 악세사리를 자신의 몸에 열심히 두르고 흉내냅니다. 그러나 그 소녀들의 매니큐어는 벗겨져있고 종아리는 상처투성이고 양말은 언벨런스하게 귀여운 캐릭터 양말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 균열되거나 이상한 봉합이 오늘날 소녀들의 초상화인 것 입니다.

오형근은 아주 날카로운 눈썰미를 가지고 바로 오늘날 소녀들의 정체성이라고 여겨지는 기호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는 사진의 디테일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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