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00627 평화를 이루는 길(대하 11:13-17)<쉰들러 리스트>[교회의목적]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1. 16:54

 

100627 평화를 이루는 길 (대하 11:13-17)

성경본문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레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을들과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해임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대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여러분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입니다. 1994년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습니다. 칼라 홍수시대에 흑백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새로운 방법으로 전달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오스카 쉰들러라고 하는 사람은 독일 사업가입니다. 2차 대전에 독일 점령하에 있던 폴란드에서 유대인이 운영하던 그릇공장을 인수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돈을 쓰기도 하고 나치에 협력하기도 하는, 아주 기회주의적인 사업가죠. 특별히 그 공장의 매력은 돈을 한푼 주지 않아도 되는 유대인들을 고용하는 공장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를 돕는 유대인 회계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그가 유대인을 고용함으로써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유대인 대학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때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고 드디어 생각을 바꾸어서 유대인을 더 많이 고용함으로써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서 죽게 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죠. 책임자인 독일군 장교에게 목숨 값으로 돈을 집어주고 사람을 건지게 됩니다. 결국 1,100명의 사람들을 살려 냈다고 합니다. 그 고용인 명단이 바로 쉰들러 리스트가 된 겁니다.

얼마 전에 6.25한국전쟁을 조사하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발표하기를 한국전쟁에서도 이런 쉰들러들이 있었다, 이제까지 19명 정도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마을의 유지거나 면장이거나 또는 경찰서장이거나 지서장이었는데 무고하게 희생될뻔한 사람들을 구해주었다. 해방 이후에 남북한 모두 다 대혼란에 빠졌죠. 남한에도 남조선노동당이 있었고 공산주의 이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남한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서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북한은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남한에는 자본주의 민주정부가 세워지면서 공산당을 불법화하게 되었죠. 공산주의에 동조했던 사람들을 계도하기 위해 보도연맹이 만들어지게 돼요. 그런데 6.25 전쟁이 나면서 정부가 피난가면서 이들이 공산군과 손을 잡을까 두려워서 많은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많은 사람들은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해준다는 구호에 그만 귀가 솔깃해서 동조했던 것이죠. 이들이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이들을 구해주었던 것이죠.

그러나 한번 전쟁의 회오리가 몰고 지나가니까 이런 쉰들러 같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피해가 컸습니다. 민간인 희생자만 37만 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1983년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1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형제와 헤어져 살았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죠.

더 비극적인 것은 전쟁의 전세가 바뀌고 또 바뀌어 공산군이 들어오고 국군이 들어오는 와중에 마을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남 영암군 부림마을은 최근에 위령비를 건립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을에서 좌우가 뒤바뀌면서 희생된 사람들이 262명이나 되었다는 거죠. 이제 6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 후손들이 같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서로 원수가 된 것이죠. 이런 피흘림의 역사를 청산하고 회복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위령비를 건립하고 이 모든 것이 냉전체제 속에 약소국이 겪어야 했던 전쟁의 비극이었다고 역사적 평가와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 것이죠.

아직 우리나라는 정전체제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게 아녜요. 잠깐 멈춘 거예요. 아직도 계속해서 북한이 도발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 천안함 사건도 보았습니다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평화를 지켜내야 할 시대적인 과제를 다같이 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한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어서 전쟁을 겪으면서 원수가 되고 오랫동안 피흘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절묘하게 판박이같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약 3,000년 전 이야기예요. 유대의 이야기예요. 다윗이 통일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 때에 아주 번영하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은 예루살렘을 새로운 정치 중심지로 정하고 예루살렘성전을 지어 종교 중심지로 삼아 백성의 마음을 모았지요.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하게 하셔서 군사적 안정을 주시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하셨어요.

그런데 솔로몬이 죽은 이후에 왕국은 남북으로 갈라집니다. 남왕국을 유다라 하고 북왕국을 이스라엘이라 했어요. 남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을 계승하게 돼요. 북왕국은 솔로몬 지배에 반대하는 10개 지파가 뭉쳐서 독립된 나라를 세우게 된 거예요. 그 왕이 여로보암이었어요. 그래서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됩니다. 결국 북왕국은 앗수르(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왕국은 바벨론에게 망해요.

2백년 동안 동족이 나뉘어져 서로 원수가 되어서 싸우는 것입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대치하고 있다가 큰 전쟁이 일어나요. 남쪽 유다의 40만 군대와 북쪽 80만 군대가 전쟁을 해요. 전사자가 50만이 나왔다고 해요. 이스라엘은 큰 나라가 아니에요. 우리 남한의 1/6밖에 안돼요. 경상도 정도밖에 안돼요. 이 얼마나 비참한 이야깁니까? 때로는 외교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대립과 갈등 관계를 200년 유지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남북 왕국을 보는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북으로 분열되어서 갈등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쪽 유다에게나 북쪽 이스라엘에게나 각각 말씀을 주셨어요.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을 주셨어요. 너희가 다윗과 솔로몬과 같이 온전히 예배하는 길로 행하면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쪽 유다의 르보보암이나 북쪽의 여로보암이나 둘 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어요. 정치적 술수를 부리며 반대파를 처단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그러져 살았어요. 특별히 북쪽의 여로보암은 더 멀리 나가버렸어요. 여로보암은 이렇게 생각 했어요. 나라가 둘로 나누어졌지만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므로 북쪽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나 불리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국경을 막아버리고 새로운 신으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북쪽지방 두 군데 중심지에 제단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게 했어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반발하자 이들을 핍박하여 내쫒고 임의로 자격없는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워서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게 한 것이죠.

그때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여로보암의 핍박을 피해서 남쪽으로 내려가요.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지고 김일성정권이 기독교를 탄압하자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남쪽으로 피난 오게 되었어요. 또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것이 역사예요. 끝내 하나님을 부인했던 북한의 김일성정권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 완전히 벼랑 끝에 내 몰리고 있죠.

얼마 전에 한국국제학교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기다리는 시간에 도서관을 둘러 보았어요. 잘 만들어 놨잖아요. 눈에 띄는 책이 있어서 꺼내서 넘겨 보았습니다. 탈북자들의 글그림을 담은 화보집이었어요. 넘겨 보니 두만강을 건너오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연속사진이었는데 폭이 넓지 않고 깊지 않은 강을 아랫도리를 다 벗고 황급히 주위를 살피면서 건너는 남녀의 모습 이었어요. 아랫도리를 다 벗었어요. 속옷이 젖으면 안되니까. 지금 목숨을 얻느냐 잃느냐 하는 아주 긴박한 순간이에요. 얼마나 비참 합니까! 굶어죽고 맞아죽는 상황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하는 모습, 내 나라 내 땅을 뒤로하고 필사적으로 도망하는 모습,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6.25전쟁은 너무나도 뼈아픈 고난 이었습니다마는 그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어요 그 고난 때문에 사람들이 집과 논밭을 다 내버리고 고향을 떠나 목숨을 구해서 남으로 내려갔어요.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이 되었어요.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손에 쥔 게 있으면 자만하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잘 안보여요. 위기에 내몰리고 고난에 내던져지면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아요. 여러분, 신앙이 이렇게 버릇 들면 안됩니다. 언제까지나 어려움 속에 빠질 때만 하나님을 찾겠어요. 그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죠. 6.25전쟁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았어요.

원래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중심은 황해도 평안도 쪽이었거든요. 남한 구석구석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기 시작하면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어요. 남한이 복음화되기 시작했어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예요.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오는 동안에 전세도 역전되고 경제력도 역전되고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남한이 이토록 엄청난 부흥을 이루게 된 거예요.

어제 여러분도 월드컵 16강전을 보셨듯이 선수들도 열심히 뛰었지만 그 배후에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서 그만큼 이루어 낸 거예요. 함께 가는 거예요. 우리나라 팀이 지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섭섭하니까 잠도 안 왔어요. 전쟁이에요. 사실 축구도 전쟁이고 운동도 전쟁이에요. 그렇게 해서 서로 간의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죠. 역사를 보면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에서 중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에 축구전쟁이 일어났어요. 축구시합이 싸움이 되고 전쟁으로 확대되어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그러나 또 하나 이걸 보아야 해요. 세계 선교와 긴밀히 연결이 돼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서 한국의 이미지와 위상이 전 세계에 퍼졌어요. 선교 현장에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던 것이죠.

여러분, 축구까지도 전쟁이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해요. 예수를 잘 믿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를 보면서 여러 가지로 정치외교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면서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과연 하나님의 기준은 뭔가 하는 거예요. 개인이건 나라이건 간에 모두다 다윗과 솔로몬이 행한 길로 행하라 이렇게 말씀하셔요. 물론 솔로몬에 대해서는 두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어요. 솔로몬이 젊었을 때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어요. ‘이 나라를 내 지혜로는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내게 지혜를 주십시오.’ 기도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너무 기뻐하셨어요 그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었어요. ‘내가 하나님의 성전 짓기를 원합니다’ 했을 때 하나님이 ‘너는 나라를 일으키고 통일을 이루느라 네 손에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구나. 그 피 묻은 손으로 세운 성전은 받고 싶지 않구나. 다만 그 아름다운 마음만 받겠다. 그 꿈은 네 아들이 이루도록 하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성전을 세우겠다고 서원한 사람이요, 솔로몬은 그 약속을 대를 이어가며 잘 이룬 사람이에요. 성전을 세우고 예배의 틀을 만들어서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예배를 인도하게 한 사람이죠. 그래서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잘 믿는 것이 평화의 길이에요.

어젯밤 월드컵 축구 보고 나서 잠이 안 오길래 혹시 지금 TV에서 뭐하나 켰더니 켜자마자 무슨 드라마인 모양인데 부부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아내가 맞아서 나둥그러지는 장면이 나오길래 얼른 껐습니다. ‘저건 전쟁보다 더하구나.’ 여러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어야 남편과 아내가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전쟁이 멀리 있지 않아요. 내 집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아무리 먹을 것이 많고 문명이 발달한다 할지라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리자.’ 마지막 남은 에덴동산에서 네 평화를 이루라.

교회도 마찬 가지예요. 교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공동체를 이루는 거예요. 교회가 큰 것도 중요하고 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 쉬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서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온전하지 못하잖아요. 우리가 다 병들어 있잖아요.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참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옛날부터 하나님이 사람을 세워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사람을 만나주셨구나. 그 역사와 전통이 흘러내려서 나에게까지 왔구나.’ 그 생각을 하니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환한 얼굴로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 나온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여러분의 쉰들러 리스트에는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까 누구의 이름을 적어 넣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라.’ 다윗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 라는 뜻이에요. 저는 제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기억하기 쉬우니까.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소개할 때 일부러 뒤집어서 ‘수영장’ 이라고 합니다. 거꾸로 하면 ‘수영장’입니다. 똑바로 말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없고 거꾸로 말하면 잊어버리는 사람이 없어요. 제 이름을 ‘수영장’이라고 장난하듯이 말하면 잊어버리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다윗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이고 솔로몬의 뜻은 ‘샬롬’ 즉, 평강이에요. 같은 뜻이에요.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라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전쟁과 혼란 속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