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쾌거 넘어 문화적 대사건
백인 영화 중심 할리우드 풍토 바꿔
‘기생충’ 수상, 한국문화 보편성 입증
백인 영화 중심 할리우드 풍토 바꿔
‘기생충’ 수상, 한국문화 보편성 입증

현지시각으로 9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출연 배우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언어의 장벽을 뚫고 할리우드를 뒤흔들었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각)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의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다. 세계 영화산업의 심장부라 할 할리우드에 입성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주요 부문을 석권한 것은 한국 영화의 쾌거를 넘어 세계 영화사의 일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로써 봉 감독은 할리우드 주류 감독으로 우뚝 섰으며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도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의 수상은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어 영화가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봉 감독은 지난달 초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자막이라는 1인치의 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대로 아카데미가 외국어라는 언어의 한계를 딛고 <기생충>에 상을 몰아준 것은 미국 영화에 갇힌 할리우드의 풍토를 바꾼 일로 기록될 만하다.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오명도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과 함께 털어냈다. 외신이 봉 감독의 아카데미 등극을 ‘세계의 승리’라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함으로써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카데미가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오스카 수상은 황금종려상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의미 깊은 일이다. 더구나 <기생충>이 아카데미가 선호해온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 달리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이라는 사회 비판적 이슈를 제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봉 감독의 수상은 특별하다. 한국 문화의 독특한 코드로 할리우드를 매료시켰다는 점도 이번 수상의 의미를 높인다.
봉 감독은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 연출 능력과 배우를 알아보는 남다른 안목을 보여주었다. 이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영화의 거목으로 성장했고, <설국열차> <옥자>에서는 세계 영화자본과 할리우드 배우들을 끌어들여 국제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기생충>은 봉 감독의 20년 영화 이력이 꽃핀 작품이며, 오스카 수상은 영화의 본산지인 할리우드가 봉 감독을 탄생시킨 한국 영화의 힘에 경의를 표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문화는 2000년 이후 대중음악과 드라마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인의 주목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흐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 한가운데 영화가 있다. 봉 감독을 비롯해 여러 영화감독의 작품이 이미 세계 영화의 자산이 됐으며 영화인들의 교과서로 통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석권에 이어 <기생충>이 영화의 본류인 할리우드를 점령함으로써, 한국 문화는 명실상부하게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봉 감독의 수상을 국민과 함께 기뻐하며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낸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