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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거룩한 배교 - 이장호 감독의 ‘시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6. 6. 09:14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거룩한 배교

이장호 감독의 ‘시선’

 

 

 

기독교영화 감독으로서 새 출발

 

“영화 <시선>은 돈을 벌기 위해 관객을 이용한 지난날에 대한 반성입니다.”

 

한국영화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노장 이장호 감독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1974년 <별들의 고향>을 시작으로 1995년 <천재선언>에 이르기까지 무려 19편의 장편영화를 극장에 걸며 수많은 한국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감독에게서 나온 반성은 영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선>은 그가 <천재선언> 이후 19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으로, 명실상부 21세기의 한국 기독교 극영화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현대 한국기독교인의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는 통찰력과 교회문화에 대한 이해가 비판적 관점에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신앙의 훈련을 겪으면서 체득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신의 고유한 영화 언어로 풀고 있는 것이다.

 

 

 

69세의 나이에 기독교영화로 감독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이 사건이 왜 중요한지는 그가 한국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알아볼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영화사-開化期에서 開花期까지>의 뒤편에 실린 ‘인물 찾아보기’에 수록된 감독들 가운데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은 신상옥 감독으로서 총 13페이지에 걸쳐 그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이 바로 이장호 감독으로 11페이지에 이른다. 임권택 감독의 이름이 언급된 9페이지보다 많다. 흥미롭게도 이장호 감독은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배창호 감독 또한 이장호의 조감독 출신으로 한 시기를 풍미했는가 하면, 그 뒤 이명세 감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감각의 멜로드라마를 펼침으로써 알게 모르게 ‘신상옥-이장호-배창호-이명세’라는 한국영화계의 보기 드문 라인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장호는 <낮은데로 임하소서>(1982)로 통한다. 이청준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인 안요한 목사의 삶을 다루면서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었던 장애인과 도시빈민을 향한 사역의 필요성을 보여준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장호 감독의 신앙생활은 이 시기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이 영화로 표현된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회비판적 시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제작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화는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해석과 표현에 있어서 감독 자신의 신앙적 언어를 충분히 숙성시켜 스크린에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선>은 다르다. 숙성된 신앙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을 낳았고 하나님 앞에서의 반성은 새로운 창작의 열정으로 승화되었다. <시선>을 보고 이장호 감독을 생각할 때마다 메가폰을 든 머리 희끗한 모세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기독교영화계의 리더로서 새로운 출발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 듣는 메시지

 

 

 

<시선>은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샘물교회 선교봉사단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일본의 역사소설가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는 배교에 대한 신앙인의 갈등을 접목시킨 영화다.

 

통역을 겸한 현지 선교사 조요한(오광록)은 목사와 장로 부부 그리고 네 명의 남녀로 이루어진 선교봉사단의 안내를 맡고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오지에서 이슬람 반군에 의해 납치되자 죽음의 위협 앞에서 선교단원들의 실상과 신앙은 그 밑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유 장로(박용식)는 함께 동행한 자신의 부인 송 권사(김민경)에게 평생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음이 밝혀지고 송 권사는 선교여행이 끝나는 대로 한국에 돌아가 이혼할 것을 결심한 상태였다. 유부남인 상태에서 다른 선교단원과 바람을 피우며 임신까지 이르게 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납치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는 현지 선교사 조요한의 과거와 현재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겉으로는 선교사지만 그는 한국에서 온 선교단을 인솔하며 현지식당에서 커미션을 받는 등 적당히 뒷돈을 챙기는데 주저하지 않는 세속적 인물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배교자인 줄로만 알았던 조요한이 이번에는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흘리며 순교하는 반면, 다른 선교단원들을 살리기 위해 구 목사(남동하)가 배교에 이르는 모습에 있다. 이것은 관객이 예기치 못했던 뒤바뀐 역할이었다. 세속적인 선교사는 이슬람 반군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반면에 구 목사는 영화 초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았지만 영화는 그 반대로 간다. 조요한의 순교와 구 목사의 배교. 그러나 하나님은 순교의 시간에도 배교의 순간에도 침묵하셨다.

 

 

혼자 순교하기로 결심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는 일이다. 앞의 조요한의 배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구 목사의 배교는 철저히 타인(교인)과 하나님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감독은 이를 ‘거룩한 배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역사소설 <침묵>에서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의 표시로 예수님의 형상이 그려진 동판을 발로 밟고 가는 것을 명령받는다. 영화 <시선>에서 이슬람 반군은 한국의 구 목사에게 성경책을 칼로 난도질하면 다른 인질들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성경책을 찢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애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를 단순히 종이에 쓴 손 글씨로만 여기지 않고 가슴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는 모습에서 배신의 행위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침묵하셨기 때문에 배교를 한다고 하지만, 배교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침묵은 긍정의 언어인 셈이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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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저서 《감성세대의 영화읽기》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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