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397

축사- 이길섭교수 정년퇴임을 즈음하여

축사- 이길섭교수 정년퇴임을 즈음하여 축사 이길섭 교수의 정년퇴임을 축하합니다. 나는 스스로 너무 오래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 교수의 부친과 내가 동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 이 교수는 나를 많이 존경해서 내가 덥석 치기를 부려 한남대학교 총장에 출마했을 때 그는 물신양면((物神兩面)으로 나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그 은혜를 갚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하나님께 크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1980년 숭전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뒤 바로 고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석사를 마치자마자 25살의 약관으로 숭전대학에 교수직으로 들어와 40년을 근속하다가 지난 2021년 은퇴하였습니다. 지금 25살이면 취직도 못 하고 방황할 땐데, 물론 이수만 교수의 큰 사랑과 배..

국민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장로신문 특별기고>

국민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장로신문 특별기고> 국민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음성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국민의 뜻, 국민의 목소리를 분별해 듣고 국민에게 충성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너무 목소리가 다양하고 집단 이기적이어서 분별하고 따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분노한 군중이 길거리에 나와 외치면 거기서 어떤 뜻을 찾아낼 것인가? 군중의 목소리는 그중 가장 저급한 지능 집단의 목소리라는 말도 있다. 지상의 음성이 아니고 하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갑자기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드미르 젤린스키 대통령은 그때 무슨 음성을 들었을까? 러시아의 표적 1순위가 대통령, 2순위가 그 가족이어서 모습도 드러내지 않던 그는 미국과 서방 각 나라가 망명을 권고하며 항공편을 제공하겠다고 했을 때 그들을 ..

19머 8908 - 수필

19머 8908 - 수필 은혜추천 0조회 4122.03.08 14:57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19머8908 은 내 차의 등록번호다. 기아 로체인데 2007년 9월에 등록했다. 며칠 전 아내를 태우고 미장원에 가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나왔는데 지상 쓰레기 처리장에 큰 트럭이 쓰레기를 가뜩 싣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려는데 꽝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 차의 앞 범퍼를 긁은 것이다. 나와서 보니 그 차는 둔탁한 앞 범퍼가 약간 긁히고 내 차는 약해서 앞 범퍼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차의 운전석에 앉았던 젊은이가 나와 난감한 표정을 하고 같이 일하던 친구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했다. 차가 긁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정도로 보험회사의 직원을 부를 생각이 없어 적당히 합의하고 보상하..

보내는 아픔, 남아 있는 부끄러움- 수필

보내는 아픔, 남아 있는 부끄러움- 수필 은혜추천 0조회 8322.02.28 11:39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수필 보내는 아픔, 남아있는 부끄러움 나와 아내는 둘이 사는데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유학을 마치고 완전히 대전에 안착한 때가 1985년이었는데 그때 자녀들은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또 학위를 마치고는 거기 남아 직장을 갖고 있어서 우리 둘은 얼굴만 바라보고 살고 있었다. 3남 1녀였는데 남들은 명절에 손자들을 본는 것이 기쁨이라는데 우리는 그러지도 못했다. 다행히 형제들이 서울과 인천에 살고 있어서 봄·가을에 모란공원의 부모님 묘소를 찾아 형제 가족끼리 추도예배 드리고 회식하는 것이 기쁨이었다. 후에 딸 내외가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자 가끔 그들을 만나는 것이 낙이었다..

은희의 결혼 선언 - 단편

은희의 결혼 선언 - 단편 은혜추천 0조회 8221.08.27 08:56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은희의 결혼 선언 “아빠 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 생겼어.” 이것은 맏딸 은희의 폭탄적인 선언이었다. 요즘 서른한 살이면 노처녀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혼담이 뜸했었고 이제 딸 결혼도 못 시키고 늙히는가 하고 걱정하고 있던 때였다. 그녀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만 해도 집적대는 애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애들은 상대도 안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면서 그들 남편의 소개로 여러 남자를 만났으나 너무 신중해서인지 미지근한 상태로 있어서 모두 나가떨어졌다. 대학원을 마치고 잠깐 회계법인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외국인을 비롯해 구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같이..

은희의 결혼 선언 - 단편

은희의 결혼 선언 - 단편 은혜추천 0조회 5021.08.27 08:56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은희의 결혼 선언 “아빠 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 생겼어.” 이것은 맏딸 은희의 폭탄적인 선언이었다. 요즘 서른한 살이면 노처녀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혼담이 뜸했었고 이제 딸 결혼도 못 시키고 늙히는가 하고 걱정하고 있던 때였다. 그녀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만 해도 집적대는 애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애들은 상대도 안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면서 그들 남편의 소개로 여러 남자를 만났으나 너무 신중해서인지 미지근한 상태로 있어서 모두 나가떨어졌다. 대학원을 마치고 잠깐 회계법인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외국인을 비롯해 구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같이..

노인과 늙은이

노인과 늙은이 은혜 추천 0 조회 16 21.07.22 16:30 댓글 0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cafe.daum.net/seungjaeoh/J75F/226?svc=cafeapiURL복사 게시글 본문내용 노인과 늙은이, 한국장로신문- 아프리카의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아프리카에 어떻게 그런 속담이 생겼을까는 궁금하지만, 많이 생각하게 하는 속담이다. 노인의 죽음은 그가 알고, 사랑하고, 체험했던 한 시대의 생생한 체험이 사라지는 것으로 도서관까지는 아닐지라도 큰 손실이다. 역사는 후세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해서 남길 수 있을지라도 살아 있던 허다한 무리의 증언만큼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

4통 88 은혜 나누기

4통 88 은혜 나누기 은혜 추천 0 조회 4 21.04.20 08:31 댓글 0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cafe.daum.net/seungjaeoh/J75F/225?svc=cafeapiURL복사 4통 88의 소감-사순절을 마치며 신문 편집 때는 눈에 확 띄는 기사의 타이틀 뽑는 것이 제일 힘 드는 일인데 우리 목사님은 타이틀 뽑는 귀재인 것 같습니다. ‘시·찬·감 노트’(시와 찬송 그리고 감사 노트), ‘4통 88(4복음서 통독, 88장)’ ‘1,5,3(요21:11) 묵상’ 어떻습니까? 사순절에 이 4통 88은 우리에게 귀한 선물입니다. 사 복음서를 통독하는 동안 매일 말씀 속에 마음에 꽂히는 한 구절을 찾아 적는 일, 키 워드가 되는 5, 단어를 찾아보는 일,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나쁜 ..

믿음의 유산- 에세이 [오승재 장로]

믿음의 유산- 에세이 은혜 추천 0 조회 26 21.03.08 17:11 댓글 0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cafe.daum.net/seungjaeoh/J74U/117?svc=cafeapiURL복사 믿음의 유산 흔히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물려줄 재산은 없고 다만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죽고 싶을 뿐이다.” 정말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또는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이번에 훌륭한 한 기업의 회장은 나라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떠날 때는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주어 그 상속세만 해도 10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재물은 유산으로 남길 수가 있다. 상속세만 내면 수혜자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 재산이 자녀들 소유가 된다. 그러나 믿음의 유산은..

삶의 현장 6- 내 선택과 내 책임

우리 가족 이야기 삶의 현장 6- 내 선택과 내 책임 은혜 추천 0 조회 26 21.01.08 16:01 댓글 0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cafe.daum.net/seungjaeoh/TwAb/38?svc=cafeapiURL복사 게시글 본문내용 내 선택과 내 책임 내가 처음 사령관실에 근무할 때는 너무 자유로웠다. 낮에는 자고, 제3 부두에 밤 근무를 나가는 것이어서 아침점호, 조회, 하기식, 저녁점호, 변소청소, 내무사열 등이 없고 밤낮없이 외출하는 편한 군대 생활이었다. 낮에는 자야 하는데 밝은 낮에 늘 잘 수 없던 나는 외출증도 없이 시내를 다니다가 헌병에게 붙들리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관보에 실려도 날 벌주는 사람이 없어 괜찮았다. 그래서 늘 진급에서 누락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