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성탄절}인자가 온 것은/마 20;26-2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20. 11:55

{성탄절}인자가 온 것은/마 20;26-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오늘은 기쁜 성탄절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탄절 아침에 거지로 변장하고 성도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였습니다. 한 가정도 목사님을 반겨주는 가정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마굿간 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를 우리는 영접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7순을 맞았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어머니는 위장이 나빠서 매운 음식을 못 먹었습니다. 치아가 나빠서 고기도 못 드셨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고기를 맵게 그리고 맛있게 요리하였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도 못 드시고 자기들만 배부르게 먹으며 어머니 7순을 즐겼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생일입니다. 예수님 생일을 예수님을 중심으로 지내야 합니다.

 

장 개석은 생일마다 금식하였습니다. 사실 생일은 자기를 낳으려고 어머니가 해산의 고통을 당한 날입니다. 늘 어머니에게 감사하면서 금식하며 어머니를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온 세계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의 아들 즉 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인성을 강조하는 겸손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이 땅에 온 목적을 <인자가 온 것은>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 저기에서 가르치시면서 종종 <인자가 온 것은>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직접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인자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이유를 오늘 본문은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면 세 가지 은혜가 주어집니다.

 

1. 표시가 납니다.

섬기는 사람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166기 성막 쎄미나가 광주에서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많아도 그 중에 한 여자 목회자가 눈에 들어 났습니다. 시간마다 강대상에 물과 수건을 갖다 놓습니다. 식당에 가면 나보다 먼저 가서 내 식탁을 준비합니다. 방으로 들어오면 차를 이미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목사님들이 많아도 이 분 얼굴을 제일 먼저 익히게 되었습니다. 섬기는 이는 표시가 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기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다 드리고 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다 성도들이 다 돌아간 후 교회에 혼자 남아 청소하시는 권사님이 계십니다. 돈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댓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늘 화장질 청소를 깨끗이 한 후에 가정으로 돌아 가십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천사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어느 교회 이야기입니다.

종탑이 높았습니다. 종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을 치는 줄이 없었습니다. 그 종에 대하여 전설이 대대로 흘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에게 가장 감명깊은 헌금을 드릴 때 이 종은 저절로 울린다는 전설이었습니다. 그 종소리를 그리워하고 궁금해하면서 사람들은 열심히 헌금을 드렸습니다. 부자들은 많이 드려 보았습니다. 왕도 와서 자기 왕관을 예수님에게 드리기도 하였었습니다. 어느 분은 땅을 수천 평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분은 보석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성도는 끼고 있던 결혼 반지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계속 흐르면서 사람들은 그 전설이 틀린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성탄절이었습니다. 성가대 찬양이 끝나고 헌금시간이었습니다. 헌금을 하는 데 종이 은은히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가 헌금 드릴 때 종이 울렸는 지 보았습니다.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이 교회에 오다가 눈위에 쓰러진 사람을 병원으로 실어 가느라고 형이 예배에 참석하지 못 하였습니다. 동생만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동생은 자기 헌금을 드리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 한 형을 위하여 헌금을 드리는 데 종이 울렸습니다.

형을 위하여 대신 드리는 그 헌금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있는 형도 아름답습니다. 그를 생각하는 동생도 아름다운 모습니다. 형대신에 헌금을 드리는 그 헌금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섬기는 물질이었습니다. 남을 섬기는 헌금을 주님이 기뻐하신 것이었습니다. 섬기면 표시가 납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눈에 뜨이게 되어 있습니다.

 

2.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섬기는 자는 그 모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됩니다. 섬기던 그 분이 없어지면 표가 납니다. 아쉬움이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평생에 많은 사람을 보아 왔는 데 맡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치고 악인은 없었다.”

 

영국의 왕 죠지 6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쓸 때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현재와

지난 생애에서 얼마나 남에게 봉사하였느냐 얼마나 헌신하였느냐를 보면 된다.”

 

영국의 언론인 마가릿지(Malcolm Maggeridge)는 영국에서 이름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인도 칼타코에서 일하고 있는 마더 테레사 수녀를 취채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3일간 테레사 수녀가 하는 일을 자세히 보며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3일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25년동안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였던 “하나님은 없다”라는 무신론을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모른다. 그러나 테레사가 저렇게 섬기며 봉사하며 사람들을 사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저런 열정이 나온 근원이 있을 것이다. 무슨 힘으로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알아 보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어 보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남을 섬기는 것은 남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입니다. 남을 섬기는 자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섬기는 사람이 있는 단체, 섬기는 사람이 있는 교회는 신선한 바람이 불게 되어 있습니다.


3. 섬김을 받게 됩니다.

섬기면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인생은 부메랑입니다.

섬기면 섬김이 옵니다. 대접하면 대접이 옵니다. 미워하면 미움이 없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쳐로 알려진 장 기려 박사는 우리 감리교의 자랑스러운 장로님이십니다. 의학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된 후에 한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던 거룩한 장로님 의사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고침을 받고 나서 돈이 없으면 밤에 몰래 도망가라고 하였던 분입니다. 그의 집안에 가훈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 가훈은 이것입니다.

 

“주안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고 주안에서 손해보며 살아라.”

 

하나님은 너무나 약삭바른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직스럽고 주안에서 손해 보려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봉사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덕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는 80회 생일을 맞아 이렇게 인사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80년 살아 오면서 기뻤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결혼후 첫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너무 기뻤습니다. 두 번째 기쁨은 손 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일등을 하였을 때 민족적인 감정으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었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기쁨은 아들 낳은 기쁨보다 컸습니다. 손 기정의 우승이 주는 기쁨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장 장로님은 오직 예수로 남을 섬기며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섬기는 기쁨을 가장 큰 기쁨으로 알고 지내셨습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더 크게 보셨습니다. 소유보다 나눔을 더 보람으로 알고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에 두목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지도자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이로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섬기러 오셨습니까?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기러 오신 분이십니다.

대속물은 구약의 소, 양, 염소, 비둘기같은 제물을 말합니다. 대속물이란 헬라어로 <뤼트론>이라고 하는 데 이는 ‘해방하다’‘결박에서 풀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속물인 짐승을 대신 죽임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대신 죽이는 동물을 대속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대속물로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속물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대속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란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온 인류의 대속물 즉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이 필요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에게 구원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 찬송은 모두가 같이 불러야 할 찬양입니다. 우리도 지옥으로 가는 영혼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생명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빈 라덴을 잡아 처참하게 사형시키기를 바라고 있다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70억의 사람들이 다 빈 라덴을 미워하여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의 사상과 행동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 녀석도 내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이 세상 사람 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도 예수님만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대속물로 오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나를 위하여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알고 싶으면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영수증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대속물로 자기 몸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풍성케 하려고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마귀가 도적입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옵니다. 그래서 마귀가 오면 불행하여집니다. 에덴 동산에 마귀가 제일 먼저 왔습니다. 세 가지를 빼앗아 갔습니다.

안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평안과 안식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그러나 마귀는 평안한 안식을 빼앗아 가는 악령입니다.

우리 마음이, 가정이, 회사가, 어떤 때는 교회가 평안하지 못 하고 불화와 고통이 있으면 마귀가 평안을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안식을 빼앗으려고 옵니다.

 

그리고 부요를 빼앗아 갔습니다.

에덴 동산의 부요함으로부터 추방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의 궁극의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고기에게 맛있는 미끼를 주는 낚시꾼의 마지막 목표는 생명을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이같이 마귀는 우리의 안식과 부요와 생명을 빼앗아 가는 못된 존재입니다. 마귀는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는 것은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임재하신 곳에는 항상 부요가 넘치게 됩니다.

후라이보이 곽 규석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셨습니0다.

그가 예수믿게 된 동기를 살아 있을 때 직접 들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고 말았습니다. 당시 5천만원 지금으로 말하면 5억쯤 되는 돈이었습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서 일본으로 도망가서 숨어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날라 왔습니다.

“선생님 고민하지 마시고 교회나가 예수믿으세요.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그는 그 편지를 구겨 쓰레통으로 던지며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이 판국에 교회가 다 뭐야. 마음이 편해야 예수도 믿는 것이지.”

그런데 며칠 후에 또 편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편지 읽어 보셨나요? 고민하지 마시고 교회나가 예수믿으세요.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는 또 꾸겨 휴지통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흥 또 같은 편지로군!”

이렇게 몇 차례 편지가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교회가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중얼거렸습니다.

“사업이 망한 것은 망한 것이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보아서라도 교회 한번 가볼가?”

그리고 교회에 간 것이 예수를 영접하는 첫 날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신학교로 인도되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과 더불어 풍성한 은혜를 누리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잃어 버린 자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섬기고 대속물로 죽으시고 마지막에서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내가 잘 알고 있는 순복음 신학교 학장이신 김 문수 목사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입니다. 교회에서 자기 아들을 비롯한 고등학생들 몇 명이 모여 성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아들이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신매매단에 붙들어 섬으로 끌려 갔을 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섬마다 다녔습니다.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하염없이 찾아 다녔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불량배들에 끌려 갔을 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혹시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매맞고 미친 사람이 되어 거리에서 헤메고 있지 않나 하는 아픈 마음에 이 거리 저 거리를 하염없이 다녀 보았습니다.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거냥 지나친 적이 없었습니다. 혹시 아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눈물입니다. 말하다가도 울고 눈시울을 적십니다. 차라리 죽은 시체라고 발견되면 땅에 묻고 나면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예언자가 이북으로 끌려 갔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교회를 잘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을 돌려 보낼 것이다’라는 생각에 수원에 가장 큰 교회를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문을 잠그지 않고 자는 아버지의 심정은 눈물로 맺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러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들의 남편 때문에, 당신들의 자녀들 때문에, 당신들의 이웃 때문에 문을 잠그지 않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한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가우스라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새벽이었습니다. 온 식구들을 잠에서 깨웠습니다. 할머니는 콜라병과 종이 그리고 콜크 마개를 200개씩 준비하여 두었다가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온 식구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알리라고 하셨다. 이 종이에 말씀을 써서 콜라 병속에 넣고 콜크 마개로 막아라.”

온 식구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성경 구절과 예수님 말씀을 일일이 200잘 적었습니다. 그리고 병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콜크 마개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차를 타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콜라 병을 파도에 실려 바다속으로 넣었습니다. 그 후 할머니에게 감사하는 글이 수없이 도착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온 편지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편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자녀가 11명입니다. 가난하게 근근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량은 바닥이 났습니다. 절망속에 죽으려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강과 붙어 있는 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얼어 있었습니다. 빠져 죽으려고 얼음위로 올라가서 얼음을 깼습니다. 깨진 얼음 사이로 콜라 병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이상하여 집어 보았습니다. 그 속에 종이가 보였습니다. 꺼내 보았습니다.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모든 산 자들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나는 이 말씀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이 편지를 드립니다.”

성탄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오신 순간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0-14)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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