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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고백[예수님의 율법해석의 특이성,십자가의 의미]/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22:18

070404 백부장의 고백(15:33-39) 성금요일예배

성경본문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첫 부분을 보니까 거기에 해모수가 등장합니다. 원래 신화 속에 주몽의 아버지로 나오는데 그 드라마에서는 해모수가 눈이 멀어가지고 동굴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장성한 아들 주몽을 만납니다. 그러나 서로는 잘 모릅니다. 시청자들만 애가 탑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저 실마리가 어떻게 풀려 나갈까. 그런데 확실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주몽과 해모수는 헤어져요. 그 모든 일의 열쇠를 마음에 간직한 채 눈먼 해모수는 사라집니다. 시청자들이 그 해모수의 연기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래가지고‘완소해모수’뭐 이런 표현을 붙였어요.‘완전 소중 해모수’다. 너무‘안습하다’이거지요. 눈물난다 이거지요. 사실은 그건 허구거든요. 허구를 놓고도 눈물이 핑 돌아가지고 안습하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거보다 더 원통한 사건은 역사 속에 얼마든지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남이 장군을 아실 것입니다. 조선시대 세조 때 인물입니다. 그는 태종 이방원의 외손자에요. 17살에 무과에 급제를 했어요. 나이 스물에 벌써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 때 그 두만강지역에서 여진족과 전쟁이 있었는데 남이가 출전을 해가지고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세조가 너무 기뻐서 그에게 벼슬을 주었습니다.‘병조 판서를 제수하노라.’국방부 장관이 된 거예요. 스물다섯에. 그 남이의 시조를 아시지 않습니까.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에 있는 모든 돌은 칼을 갈다가 다 달아 버렸고,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 물은 말 먹이다 보니 다 말라 버렸다.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남자가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뒷날 누가 그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영웅호걸의 풍모가 풍겨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그런 시조이지요. 그러나 젊은 나이에 너무 잘나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견제하고 비판했습니다.“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성질이 거칠고 사납습니다.”그래서 세조가 그 직을 거두었어요. 해임시켰어요. 세조가 죽고 그의 아들이 열아홉에 왕이 되었어요. 이게 바로 예종이에요. 예종은 왕이 되기 전부터 남이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혹시라도 왕위를 넘보지 않을까. 어느 날 밤에 혜성이 떨어졌는데 어떤 사람이 왕에게 고자질 합니다.“제가 지난밤에 숙직을 했는데 남이 옆에 있었는데 떨어지는 혜성을 보고 남이가 말하기를 저것은 필시 옛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 이렇게 풀었습니다. 임금님 이건 틀림없이 그에게 역모가 있습니다.”이렇게 무고를 했어요.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남이를 두려워했던 임금은 그 말을 듣고 그를 잡아 들여라. 그리고 그의 죄를 낱낱이 밝혀라. 고문하게 됐어요. 이걸 국문이라고 그러지요. 남이는 꿋꿋하게 버팁니다.‘누군가 나를 모함했겠지. 이 위기를 잘 벗어나서 나중에 다시 한 번 공을 세우는 기회가 올 때 이 억울함을 다 풀어 버리리라.’그러고 버티고 버텼는데 아, 글쎄 이 주리를 트는 게 너무 심해가지고 다리가 부러졌어요. 참고 참던 남이가 그의 꿈이 깨지자 절망합니다. 분노합니다. 그래서 임금이 네 죄를 다 고하라고 말할 때에 그는 자기가 뒤집어 쓴 죄를 시인합니다. 그러면서 말을 합니다.“제게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저 영의정 강순과 함께 역모를 도모했습니다.”영의정이 깜짝 놀라가지고 얼굴이 시퍼렇게 됩니다. 임금이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남이가 다시 말합니다. 저 사람과 같이 도모했습니다. 드디어는 임금이 영의정도 잡아서 죄를 밝혀라. 팔십 노인을 문초를 하니 어떻게 되겠어요. 그 고문을 못 이겨서 나도 그랬습니다 라고 죄를 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어요. 죽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영의정이 묻습니다.“아니, 네가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아무 죄도 없는 나를 끌고 들어가느냐.”남이가 말합니다.“왜, 당신이 죄가 없단 말이요. 내가 아무런 죄가 없음을 당신이 번연히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하는데 어찌 그게 죄가 아니란 말이요.”그들은 같이 죽었습니다. 남이는 스물여덟에 죽었어요. 여러분 원통하게 죽은 사람들 넋을 위로한다고 무당들이 남이를 부르지 않습니까. 얼마나 원통하게 죽었으면.

그런 것으로 이야기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보다 더한 거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셨을 때 거기에는 음모가 있었어요.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십자가 처형의 모든 일을 집행하던 빌라도의 부하였던 백부장이에요. 예수님이 갈릴리로부터 시작해서 유대 온 지역을 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시고 많은 이적을 베푸셨을 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군이 그걸 가만 놔두겠습니까. 정보를 다 수집하고 있었어요. 그걸 빌라도에게 보고했던 사람이 바로 백부장이에요. 기록에 의하면 이 사람의 이름은 마르쿠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실무를 집행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되어진 모든 일을 가장 종합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뒤에 숨어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에요.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율법을 해석하셨는데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셨어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백성들을 꽁꽁 묶어놓고 그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썼는데 주님은‘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특별히 안식일 계명을 바리새인들과 달리 해석하셨어요.‘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했어요. 그들이 꾀를 내다가 누구하고 손을 잡았느냐, 평소에 서로 원수같이 지내던 헤롯당들과 손 잡고 함께 예수님께 나아가서 질문을 합니다.‘로마 임금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게 옳습니까. 틀립니까.’만약에 예수님이 로마 가이사에게 바쳐라 그런다면 그거는 바리새인들의 올무에 걸려드는 거예요. 그러나 만약에 바치지 말아라 그러면은 헤롯당들이 그를 로마 군대에 고발하게 될 거예요. 꼼짝없이 걸려드는 올무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간 거지요.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 그들뿐만 아니라 사두개인들도 나아왔어요. 사두개인들은 주로 제사장과 결탁된 그룹이에요. 이 사람들은 아주 세속적인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부활도 안 믿고, 영도 안 믿고, 내세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믿는다 하면서 제사장이 되어서 종교적인 지도자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이 나와서 부활에 관한 물음을 던져요. 여기 7형제가 있습니다. 맏이가 어떤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법에 따라서 이번에는 그 동생 둘째가 형수를 데리고 살아야 되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고 또 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7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살다가 죽었는데 부활이 있다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안가고 시집도 안가고 다만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되느니라. 사두개인들은 모세5경만 성경이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말씀하세요. 출애굽기에 부활에 대해 뭐라고 말했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이 완패를 당했어요. 말로는 안 되겠다. 저를 죽여야 되겠다.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하는 것입니다. 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메시아라고 좇아 다니는 무리를 보면서 그렇지 않아도 로마의 지배에 가장 극렬히 저항하는 유다 사람들인데 저 인물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를 제거해야 되겠다. 죽게 된 거예요.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이제 십자가에 매어 달리게 됩니다. 여러분,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 형벌을 받지 않아요. , 그건 가장 참혹한 형벌이기 때문에. 인간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 시키는 형벌이에요. 십자가에 달기 전에 먼저 채찍질을 하게 됩니다. 서른아홉 대 채찍질을 하는데 그 채찍 끝에는 뼛조각이 붙어 있어요. 또는 쇳조각이 붙어있어요. 이것으로 서른아홉 대 매를 쳐서 등을 다 찢어 놓는 거예요. 피를 다 쏟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기진맥진한 죄수로 하여금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끌고 올라가게 하는 거예요. 이미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십자가를 끌고 올라 갈 때, 이미 반죽음이 다 되었기 때문에 끝내는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 가실 수가 없어서 올라가는 도중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갔지요.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 때에 옷을 다 벗겨요. 벌거벗기는 거예요.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을 주는 거지요. 못을 박습니다. 손바닥에 그냥 못을 박고 매달면 그냥 쭉 찢어져 나가니까 손목에 못을 박고 발등에 못을 박고 그러고도 그냥 매달면 사람이 축 하고 쳐지니까 이 엉덩이 받침대가 있어요. 매어 달릴 수 있도록. 진이 다 빠져서 죽도록. 그날이 안식일 전날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시체를 매다는 법이 없기 때문에 죽기를 기다리다가 다리를 꺾습니다. 다른 죄수들은 다 다리를 꺾었지요. 다리를 꺾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폐를 압박해서 곧바로 죽게 되는 것이지요. 두 죄수의 다리를 꺾고 나서 가운데 예수를 보니까 이미 숨이 끊어 졌어요. 군병들이 판단하기에 이건 다리를 꺾을 필요도 없구만 죽었구만 그리고 창으로 허리를 찌른 거지요.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그래도 마지막으로 죄수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고통을 조금 덜어 줄 수 있도록 귀부인들이 와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합니다. 이건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거절했습니다. 그 아픔을 그대로 다 받으시기로 작정하시고 마취제를 거절하셨어요. , 이 모든 과정을 백부장이 지켜봅니다. 그런데 이 고통 속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것을‘가상칠언’이라 합니다.“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쪽 편 죄수가 예수의 그 모습을 보고‘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릴 때에 뭐라고 말합니까. 오늘 저녁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선포 하셨어요. 이 모든 것을 백부장이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이 다가온 것을 보고 말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홀로 남게 된 어머니를 기억하셨어요. 그리고 이제 죽을 순간이 왔습니다. 그 때 외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시편 22 1절 말씀이지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죄인으로서의 부르짖음이지요. 그리고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돌아 가셨어요. 백부장은 로마 장교였으므로 아주 냉철한 사람이지요. 그 모든 되어지는 일을 보고 말합니다. 진실로 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여러분, 십자가 사건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오늘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에요. ,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 예수님뿐만 아니라 그날도 예수님 옆에 죄수들이 있었고 십자가에 죽은 사람은 많아요.

〈스파르타쿠스〉라는 영화를 옛날에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원래 스파르타쿠스는 노예였지요. 예수님 이전 150년 전에 존재했던 인물이에요. 그는 노예였어요. 노예 검투사였어요. 노예반란을 일으켰어요. 수 만 명의 노예들이 대 탈출을 시도하는 거예요. 로마군과 큰 전투를 벌인 거지요.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서 그들은 대패하고 수백 명이 붙들렸어요. 그러니까 로마의 지도자들이 다시는 노예들이 도전하지 못하도록 수백 명을 로마 성으로 들어가는 아피아가도 양 옆에 수백 개의 십자가를 세우고 매달았어요. 그 얼마나 참혹해요. 십자가 형벌은 많이 있었습니다. 얼핏 예수님도 그런 십자가 형벌을 받았던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 그 사건 중에 하나로만 이해하면 안돼요. 마틴로이드존스라는 목사님은〈십자가〉라고 하는 그의 책에서 십자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그만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귀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를 그토록 귀하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므로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고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내가 내 인생에 하나님자리에 앉아서 살아가려고 하는 그 본성, 그것이 죄요. 그 결과는 방황하게 되는 거지요. 세 번째는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 거룩하신 하나님의 그 눈으로 볼 때, 이 죄는 조금도 용납할 수 없기에 그 대가는 참혹한 십자가가 될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에게 이 진노를 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는 것이지요. 이 의미를 잘 이해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