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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인격! 욥의 신앙! (욥 1:1-5)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고난 받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며 그 고난에 나도 함께 동참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기간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건의 삶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할/ ▶'존 트랩'이라는 분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7가지 주의사항'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굉장히 공감이 되고 마음 깊이 생각하게 해 주는 말씀이기에 소개합니다. ⑴복 자체보다 복을 주시는 분을 생각하라! 사람들은 나타난 것만 보고 그 배후를 보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만을 좋아하지 복을 주는 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도 습니다. 그래서 복 자체보다 복을 주시는 분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출처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히6:14). ⑵왜 복을 주시는가를 생각하라! 그렇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복을 주시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⑶복을 받은 후에는 은혜를 잊지 말라!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도, 신앙생활 하는데도 아주 필요한 자세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우리나라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스승의 은혜, 이웃의 은혜, 친구들의 은혜도 있습니다. 이런 은혜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복을 받은 후에는 은혜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⑷복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시험이 온다는 것도 잊지 말라! 시험은 성공한 사람에게 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옵니다. 높이 올라간 사람에게 오고 유명해진 사람에게 옵니다. 그리고 기도 많이 한 사람에게 오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오고 전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고 복을 받으면 사탄이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그것을 뺏으려고 온갖 방법으로 방해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은 후에는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⑸복을 받은 후에는 교만해지기 쉬운 함정이 있음을 두려워하라! 실패한 사람에게는 교만할 여유도 없습니다. 생긴 것이 좀 모자라는 사람은 교만해질 용기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은 자랑할 내용도 없습니다. 교만은 성공한 사람에게 오고 은혜 입은 사람에게 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 오고 가진 사람에게 옵니다. 그래서 복을 받은 후에는 교만해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⑹복을 받은 후에는 더 겸손해야 주어진 복이 머물러 있다는 것도 기억하라! 성공하고 많이 소유하게 되고 이름이 좀 알려지면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어 집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칭찬하고 떠받들고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교만해지게 되고 나타내게 됩니다. 교만은 그렇게 해서 오게 됩니다. 그렇게 교만해지면 그 주어진 은혜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릇에 담겨진 물이 엎어지는 것과 같이 사람이 교만하면 순간에 이루어진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은 후에는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⑺복을 받은 사람의 사명은 더욱 무겁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당연한 말입니다. 배운 사람은 역할이 더 커집니다. 가진 사람은 사명이 더 커집니다. 먼저 믿은 사람은 더 할 일이 많아집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은혜를 입고 살아가십니까? 복중의 복은 예수를 알고 믿고 살아가는 복입니다. /믿/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우리들을 일찍 부르시고 은혜주시고 자녀 삼으시고 제자 삼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적인 삶입니다. /할/ 이 사명의 삶을 바로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 되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열쇠요, 사탄의 입을 막는 자물쇠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통로입니다. /아멘!/ 새뮤얼 차드위크는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행사에 안심한다. 그래서 넘어지게 하고 무력하게 만들고 세상에 묻혀 아주 특색 없이 그냥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에 조소한다. 그렇지만 사탄은 우리가 기도할 때 떤다.'고 했습니다. 스코트란드의 종교개혁자 죤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민족 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지레 겁부터 먹고 불가능을 말하는 것은 기도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해결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당부하신 것입니다. /할/ 두 번째는 나 자신을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독특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느 부흥사 지망생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아브라함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네가 아브라함같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아들을 바칠 수 있느냐' 듣고 보니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나를 모세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사람을 죽을 수 있느냐' 그것도 할 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니엘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가 사자굴 속에 들어갈 수 있느냐'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듣다 보니까 이 사람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소리쳐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누구처럼 되란 말입니까?'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누구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너는 너처럼 되라' /할/ 나는 누구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처럼 달란트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달란트이고 사명입니다. 그것을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고유한 사명, 몫, 달란트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갈 때는 작아집니다. 무력해집니다. 아주 보잘 것이 없습니다. 왜소해집니다. 용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할 때는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놀라운 기운이 주어집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살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려고 힘을 모으면 이것도 가능합니다. 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할/ 오늘 본문 1절에 우스 땅에 욥늘 소개하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하소 있습니다. ◀제목 소개!▶
욥은 고난의 대명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욥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돌이키는 자'입니다. 욥이 살았던 시대가 언제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개 아브라함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학자들은 욥기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욥이 나이가 대략 60살쯤 되었으며 그 후 약 200살까지 살다가 세상에 떠났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가 살고 있던 우스라는 땅은 지금의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욥기는 매우 깨닫기 어려운 성경 가운데 하나로 불리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욥을 한번 진단해 보겠습니다.
1. 욥의 인격, 욥의 신앙을 알아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욥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인격을 평가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욥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면 사단 앞에서 그를 두 번이나 칭찬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할/ 2:3절에도 똑 같은 내용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욥의 인격을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말씀하셨고, 그의 신앙을 일컬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칭찬은 아브라함도 못 들었습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인격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을 멀리하는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여기 순전하다는 말은 자기의 내면, 양심 상태를 말한 것이고, 정직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하여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의 인격은 한마디로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말은 욥이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를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시종일관 순수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끝까지 오염되지 않았고, 변함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욥이 그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디서 증명할 수 있습니까?
①그의 부(재산)와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욥은 굉장한 갑부입니다. 어느 정도로 부자였나요? 3절을 보겠습니다.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그는 동방에 사는 사람 중에서 첫째로 손꼽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7남3녀를 가진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지만 재물 또한 아주 많았습니다. '양이 7천이요' 이것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뜻하는 것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고대사회의 이야기라서 쉽게 감히 잡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소위 재벌이라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몇 조원의 재산 액수를 보면서 우리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100, 1000 단위의 숫자는 '풍부하다, 완전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의 숫자로 보기보다는 대단히 많은 것을 묘사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욥은 굉장히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재력은 소유하고 있는 가축의 숫자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욥이 이와 같은 엄청난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1절에서 우리는 그의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1절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욥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욥이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의로운 생활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가 얻는 재물은 의로운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욥이 부자가 되기를 소원했기 때문에 갑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욥처럼 부자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욥처럼 의롭게 살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재물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시112:1-3절을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어떤 자에게 약속하셨는가? 하나님은 경외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부와 형통은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8:21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부와 형통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안겨주시는 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부자로 잘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가난을 비화시켜 낭만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 복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저 북한이나 소말리아의 비극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 나라들을 복 받은 나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달동네에서 찌들도록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복 받은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가난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가난을 몽땅 저 주셨습니다. 고후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했다고 하면서 부자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안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은 심령의 가난을 말합니다. 마음에 욕심이 없고 교만이 없는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가난과 부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의로운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은 축복이요, 악한 자가 누리는 복은 저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의로운 자는 그 재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은 그 재물을 가지고 죄악 속에 살아갑니다.
②욥의 위대함은 '재물의 복을 받았다.'는 그것에 머물지 않고, 그는 어떠한 경우라도 믿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추호도 변질시키지 못했습니다. 막대한 재산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욥은 끝까지 자신을 지켰습니다. 욥23:12절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욥의 신앙의 위대함을 또 발견했습니다. 욥이 얼마나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매일 먹는 음식보다 매일 먹고 즐기는 것보다 더 앞세웠다고 했습니다. 욥31:24-25절을 보면 더 기가 막힌 말씀이 나옵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 언제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던가?' 무슨 말입니까? 쉽게 표현하면 욥은 자기가 모아 놓은 금 덩어리를 앞에 놓고 '너만 있으면 내가 살 수 있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창고에 가득 쌓아 놓은 재물을 보면서 또 들판을 가득 덮고 있는 양떼들을 바라보면서 '저것들이 있는 이상 나는 든든해' 라고 한 번도 기뻐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돈 때문에 교만해지고 재물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여러분 지금 돈 없다고 낙심하시지 마십시오, 욥처럼 의롭게 순전하게 정직하게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 복을 받을 때 절대 교만하지 않고 욥처럼 더더욱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또 욥을 보겠습니다.
③욥은 그 재물을 관리하는 면에 있어서도 순전하고 정직함이 그대로 들어 났습니다.
사실 돈을 벌기보다 잘 쓰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돈을 버는 데는 지혜롭지만 쓰는 데는 바보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공 욥은 버는데도 지혜자요, 쓰는데도 의로운 사람입니다. 욥31:16-20절을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 또 나옵니다.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에게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를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모태에서 나온 후로 과부를 인도하였었노라 내가 언제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게 된 것이나 빈궁한 자가 덮을것이 없는 것을 보고도 나의 양털로 그 몸을 더웁게 입혀서 그로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는 가난한 자, 과부,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막대한 재물을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욥 혼자서 호의호식하며 즐기라고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욥은 자기의 도리를 분명히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에게 재물을 주신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물을 흩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고 그들을 볼보며 살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④욥의 순전함은 재산을 다 잃어버린 다음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욥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는 비극을 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욥1:21-22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얼마나 멋있는 신앙입니까? 그러니까 보세요! 그의 순전하고 정직함은 부를 얻는데 서로 입증되었고, 부를 누리는 데서도 입증되었고, 부를 잃어버리는 데서도 입증이 된 것입니다. 재물은 잃어버렸다는 것이 그의 신앙에 조금도 나쁜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경건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무엇을 보십니까? ⑴변함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를 보십니다. ⑵변함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는가를 보십니다. ⑶변함 없이 헌신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⑷변함 없이 감사하는지를 보십니다. /할/ 욥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열 가지 역경을 인간의 정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변화론 적으로 말하면 욥은 드디어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욥42:5절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의 곤경이 바로 큰 믿음을 산출한 것입니다. 욥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장로교의 대부 칼빈 선생은 병이 얼마나 많았는지 약 50가지가 넘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칼빈이 지나가면 종합병원이 지나간다고 수군거리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명한 신학자가 되고 스위스를 개혁해서 오늘의 부강한 선진국이 되는 거국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곤경을 돌이켜 큰 믿음의 복을 주시려고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곤경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119:67절에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또 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곤경을 돌이키시는 분이십니다. 시80:7절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85:4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아멘!/ 하나님이 돌이키시면 질병도 치료받습니다. 무너진 사업도 회복됩니다. 막힘도 뚫리고 묶어진 것도 풀립니다. /아멘!/ 여러분 올해에는 우리 모두 욥처럼, 물질의 복을 받읍시다. 복 받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생활을 힘쓰면 물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
2. 욥의 가정을 조명해 보고, 우리들의 가정도 배워야 합니다.
욥은 참으로 순전하고 정직한 신앙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디에 가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의 가정생활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네 가지 기능이 확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경제적 기능입니다. 가정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는 교육적 기능입니다. 자녀들을 잘 키우고 교육에 성공해야 합니다. 셋째는 오락적 기능입니다. 가정 안에는 웃음과 즐거움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넷째는 종교적 기능입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적 기능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일치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이 네 가지 기능을 가장 잘 하고 있는 가정을 찾아보았더니 욥의 가정이었습니다. 욥의 가정은 명문 가정이었고, 동방 최고의 가정이었습니다. 욥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경제적 기능도 교육적 기능도 있었습니다. 욥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⑴모이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희들은 남매다. 10명은 생일 때마 다 모여야 한다. 빠지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회의 모습입니다. 공동체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⑵즐거움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모일 때마다 잔치를 하여라. 오는 형제들을 정성껏 대접해라' /할/ 천국의 모습입니다. 잔치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천국의 삶이 잔치하는 삶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할/ ⑶성결 교육을 시켰습니다. '잔치를 마치고 나면 꼭 잔치하는 동안에 혹시 죄를 짓지 않았나 점검하라.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한 사람에게 한 마리씩 따로 따로 제물을 준비해라' 자기를 돌아보고 정검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⑷하나님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절대 안 된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라'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고 사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아멘!/ 욥의 가정은 이렇게 교육이 철저한 가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현대 가정은 좋은 가구와 시설을 갖추고 살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가보면 TV가 새롭습니다. 가구들이 으리으리합니다. 집집마다 나름대로 화려하게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집이 좁아서 한 방에 여러 식구들이 살았습니다. 한 이불을 덮고 이쪽에 머리를 두고 저 쪽에 머리를 두고 가운데에서 발이 포개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각각 자기 방이 있어서 각자 다른 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다릅니다. 출근시간이 다릅니다. 서로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전화도 한 가정에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로부터 누구한테 전화가 왔는지 집안 식구가 다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각자 전화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언제 무슨 전화가 왔는지도 모릅니다. 옛날에는 편지가 누구한테서 왔는지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각자 E-mail ID가 있어서 누구한테서 어떤 편지가 오는지 가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은 만족한 데 정신적인 생활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가족끼리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모여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할/ 유대인들은 안식일 저녁이면 다 모입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를 드립니다. 이를 '합달라' 예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율법 공부, 대화, 식사를 합니다. 이를 안식일 음식이라고 말하는 데 안식일 음식은 잘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 아이들이 안식일 음식을 먹고 싶어서라도 안식일을 기다리게 됩니다. 안식일 음식을 잘 만들어야 축복이 있고 안식일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 가정의 기능 중에 중요한 기능은 오락적 기능입니다. 가정은 즐거워야 합니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가정으로 돌아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나의 집 내 집뿐이리' 이렇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기능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기능은 종교적 기능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동체입니다. 욥의 가정은 일 년에 12번 잔치를 하였고 매 잔치 후마다 한 명에 번제 한 번씩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정의 기능 중에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천재 교육을 시킨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학교에 다녀오기만 하면 말했습니다. '귀여운 손자!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 할아버지는 옛날에 공부해서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모른단다. 할아버지에게 설명 좀 해 주겠니?' 손자는 그 날 배운 것을 할아버지에게 다 설명을 해 줍니다. 첫 시간에 배운 것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배운 것을 다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1,000원을 주면서 말합니다. '잘 배웠구나!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이다. 어떻게 써야할까?' 그러면 아이가 '십일조 드리고요, 남을 도와주고요 나머지는 저금할래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매일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듣고 돈을 주고 돈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손자는 학교에서 할아버지에게 가르치려고 공부를 잘 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에 올라가 할아버지에게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여 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강의를 잘 했습니다. 그래서 천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 이 가정에는 경제가 있습니다. 교육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종교가 있습니다. 이런 가정이 명문 가정입니다. /할/
▶욥의 신앙교육을 배워야 합니다. 다시 본문을 4-5절을 보겠습니다.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7남 3녀가 있었습니다. 그 자식들이 장성하여 각자의 생일이 되면 형제들은 자기 집에 초청해서 생일잔치를 합니다. 부유한 생활을 했으니까 그 잔치가 얼마나 풍성했겠습니까?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춤추며 좋아했겠지요? 자녀가 10남매였으니 아마 한 달에 한번 꼴로 잔치가 열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자녀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는데 아버지 되는 욥이 그때마다 어떤 행동을 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보십시다. 욥은 잔치가 끝나면 그 다음날 10남매를 불러 놓고 자녀수만큼 열 번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욥은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재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제사장이 되어서 자녀들을 위해 차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제사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욥은 가정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아들들이 그렇게 장성했지만 그들에게 제사를 맡기지 않고 손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라 때마다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5절 끝에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자기 혼자 의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전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욥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의 차원 높은 교육 방법입니다. 이런 욥의 신앙교육은 자녀들이 보면서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이시로구나!' 그들은 자연히 그의 아버지처럼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는 자는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살아갑니다. 의로운 자는 하나님이 자동으로 복 주십니다. 욥은 자기가 어떤 심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있는 사람인가를 자녀들에게 무인 중에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욥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교육을 자녀들의 가슴속 깊이 심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에게 위대한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준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것을 물려주는 것보다 낫습니다. 믿음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믿/ 오늘 우리가 욥처럼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정예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앉혀놓고 자녀 하나하나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욥처럼 자식들을 위해 무엇인가 행동으로 보여 주는 부모가 되십시다. 할/ 욥은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입니다. 욥이 다 망했습니다.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고난도 그런 고난이 없습니다. 그런 고난 중에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21절에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할/ 어떤 사람은 자기 기분에 맞아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잘 되어도 영광, 못되어도 영광, 이것이 욥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뭐라고 하십니까?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인생의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할 때도 겸손하다가 부자가 되면 교만해집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난할 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면 그 영광 자기가 차지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십시다. ▶미국의 '헷센 포드' 목사의 목회 일화입니다. 그가 섬기는 교회에 가난하지만 진실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장차 교회의 큰 기둥 같은 일꾼이 되라고 늘 기도했습니다. 그가 어렵게 빵공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개업식 날 곱빼기의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사업을 하면서 감사로, 십일조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십일조가 끊어졌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수입이 많아지니까 액수가 많아서 아까워서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은 가난하게 살아야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군요, 이제 당신이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가난한 복을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때 그는 즉시 회개하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다 잃어버렸어도 욥이 잃어버리지 않은 것 세 가지 때문에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⑴내일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14:7절에서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나무를 잘라도 그 옆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욥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 잘렸어도, 다 잃었어도 다시 돋아 날 수 있다는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산에 가면 종종 벌목한 현장을 보게 됩니다. 나무를 베고 나면 그 밑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들 통하여 주신 말씀도 이 말씀입니다. 사6:13절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욥은 다 잃었어도 내일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⑵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의 고백을 보세요! 욥23: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할/ ⑶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일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을 잃지 않았고 기도를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욥이 그런 곤경에서 돌이켜 큰 축복이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욥42:10절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할/ '욥에게 곤경을 돌이켜 갑절의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욥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믿/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못 주어 주시려고 몸부림을 치시는 분이십니다. 히6:14절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나쁜 것은 복으로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할/ 다윗은 13년 동안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면서 별의 별 곤경은 다 꺾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전무후반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버린바 되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 곤경은 하나님이 돌이켜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곤경은 우리들을 어떻게 합니까? ⑴우리의 신앙은 키우는 것이요 우리의 인격을 완성하는 지름길입니다. 사람들은 역경을 통하여 완성된 나를 만나게 됩니다. 마치 뜨거운 용광로를 통하여 쇠가 완성되는 것과 같습니다. ⑵곤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역경의 장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모세는 홍해라는 역경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나는 고래뱃속이라는 곤경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위대한 신앙가인 '죤스 프레빈' 박사는 '인간의 한계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⑶곤경은 축복입니다. 욥은 역경을 역경에서 끝나지 않고 축복으로 끝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입니다. 이 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섬겼다는 말입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은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할/ 우리가 욥처럼 하나님을 바로 섬기면 이런 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0년 2월 28일 대예배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