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벗어야 새로 입을 수 있습니다! (엡 4:17-2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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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야 새로 입을 수 있습니다! (엡 4:17-27)

 

  한 해가 가고, 또 새 해가 오고 있습니다. 새해가 된다는 것은 참 신선한 기분이 듭니다. 사실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 신선함 때문입니다. 한해를 지루하게 사는 것 같다가도 연말이 되고 새해가 되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납니다.
  한편으로는 후회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교차됩니다. 사람이 때로 후회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후회한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바른 길을 찾게 되고 발전이 있게 됩니다. /아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서는 모두 6장으로 되어있습니다.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는 1-3장이고, 후반부는 4-6장입니다. 전반부는 이른바 '교리면'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하나님의 예정과 예수님의 구속과 성령님의 보증으로 나누어서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엡2: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물론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래서 4장에서 '부름의 합당한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4-6장은 '실천면'입니다. 1절에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에베소서의 실천 편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오는 새해에는 신선하게 시작하여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기를 축원들입니다. /할/ ◀제목 소개!▶

 

  사람에게 여섯 개의 감옥이 다 있다고 합니다. ⑴자기도취의 감옥입니다. 자기 잘난 줄 알고 교만의 감옥입니다. 공주병 왕자 병에 걸린 감옥이라고 합니다.
  ⑵비판의 감옥이라고 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단점 약점만 보고 비판하는 겁니다. ⑶절망의 감옥입니다. 항상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불평불만만 하는 감옥입니다. ⑷과거 지향의 감옥입니다. 자꾸 옛날 생각하고 옛날 좋았다고 지난날을 생각하는 겁니다.
  또 ⑸선망의 감옥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고 남에 것만 귀하게 생각하고 남의 것만 자꾸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겁니다. ⑹질투의 감옥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공연히 배가 아프고 자꾸 헐뜯는 이게 모두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기독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종교입니다. 심령을 살려주는 종교입니다. 심령을 새롭게 하는 종교입니다. 심령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옛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 몇 가지 새로운 각오를 하고,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제목이 주는 주제처럼,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을 입자'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주께서 지어주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먼저 벗어 버려야 합니다(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해가 되면 벗어버릴 것이 많습니다. 먼저 남루한 생각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쓸데없는 고집도 아집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태의연한 생활도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날에 고통스러웠던 기억들과 악몽 같았던 일들도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서운했던 점, 오해, 원망, 미움 등을 모두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들을 모두 가슴에 안고 새해를 맞이하면 새해가 아니고 묵은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습을 좇은 생활입니다. 이것들을 모두 벗어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존재입니다. 신생아는 세상에 태어날 때 탯줄을 잘라야 합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헌옷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당장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중생 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린 아이로 태어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신앙적으로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래서 하나, 하나 예수를 닮아 장성해 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옛 습관, 옛 사고방식, 옛날의 살아가던 모습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벗어버릴 때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닮아가게 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벧후1:4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기 '벗어 버리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잘라 버리라, 수술해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수술은 환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도 수술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올해가 다 가고 있는데 아직도 내년 예산안의 심의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민단체에서 저렇게 아우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은 아프고 어렵지만 더 소중한 것을 얻고 더 귀한 건강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수술할 환자입니다. 수술을 미루면 안 됩니다. 수술해야 할 것을 찾아서 빨리 수술해야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아멘!/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수술해야 할 곳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도 수술 받아야 합니다. 저도 여러모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옛사람이 썩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수술 받아야 합니다.
  ▶17절을 보면 '이제부터는 이방인의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18절부터 수술 받아야 할 부분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17절에 '이방인의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허망하다'는 '텅 빈 것, 의미가 없는 것'을 뜻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그 허망하다는 것은 '방향이 없고 목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잘 살기 위한 수단, 잘 살기 위한 방법들이 참 많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가치가 없고 무의미한 것들을 향해서 달려나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의 새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우리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향하여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코코넛 나무 밑에서 토끼 한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쾅하고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려서 자다가 깜짝 놀란 토끼는 난리가 터진 줄 알고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토끼가 허둥지둥 뛰는 것을 보고 숲 속에 있던 여우가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에는 사슴이 그 모습을 보고 달리고, 멧돼지가 달리고 늑대도 달립니다. 모든 짐승들이 달리니까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도 따라서 달립니다.
  결국 산중에 있던 모든 짐승들이 달립니다. 이유도 모르고 한 참 달리다가 이제 숨이 차고 기진맥진했을 때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서 뛰는가?' 그러자 원숭이가 '나도 몰라 늑대가 뛰어서' 늑대는 '멧돼지가 뒤는 것을 보고' 결국 토끼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그 산 속에서 무슨 날벼락이 일어났는데, 내 이 코도 한방 맞았어.'
  결국 토끼가 자고 있던 곳에 가보니 잘 익은 코코넛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풍자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②수술 받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⑴18절 '총명이 어두운 사람'은 수술환자입니다. '총명'이란 말은 '이해를 잘 해서 깨달아진 마음'입니다. 총명이 어두워졌으니 이해하는 것이 소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한마디로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교재하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형상이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영성이 무너지고 파괴되어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혜가 없어졌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언서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 때, 나 자신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믿/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의 원리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살면서 물을 먹어야 합니다. 새는 하늘에서 창공을 날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땅에서 뿌리를 받고 자라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창조의 원리를 떠나면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할/
  그러니까 여기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시14: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해야 합니다. 총명이 어두운 사람, 영안이 어두운 사람, 수술환자입니다.
  ⑵수술환자는 18절에 '마음이 굳은 사람, 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복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길가와 같은 마음의 밭은 아무리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도 씨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먼저 마음의 문이 열려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심어집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계십니다. 계3: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은 나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은 모시어 드리는 것입니다. 귀하신 손님이 오시면 문 밖으로 뛰어나가 모시고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주님을 그렇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아멘!/
  ▶또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양심이 마비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죄가 죄인지 감각이 없게 됩니다. 죽어버린 영혼이요, 죽어버린 양심입니다. 살아있는 심령은 예민합니다. 주의 말씀을 분별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뜻을 분별하며 성령이 나에게 역사하는 것을 늘 경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닭이 울자 주님이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뛰어 나가 심히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우는 성도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범죄 후에 눈물이 있는 사람은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울지 않는 자가 문제입니다. 가롯유다는 울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아무 감각이 없는 자입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 감각이 없는 화인 맞은 양심은 성령의 불로 수술을 받아야 살아납니다. /믿/아멘!/
  ⑶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는 19절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가 없고, 성령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세대는 어떻게 삽니까? 자기가 원하는 모든 더러운 욕심을 저마다 행하고 삽니다.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실패를 보고, 욕심 때문에 혈연을 끊고 욕심 때문에 신앙을 떠나는 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약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사탄은 우리에게 욕심을 주고, 욕심은 우리에게 죄를 주고, 죄는 우리에게 사망을 준다는 말입니다.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명예욕, 출세욕, 물질 욕, 성욕,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돈이 많이 있다고 다 갖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가 다 쓰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욕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친구 하나 못 만나고 쓸 것 하나 더 못쓰고 옷 한 벌 더 입어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영국 속담에 '바다는 물이 부족하다고 늘 불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늘 그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욕심이 있는 한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③수술 받아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신앙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⑴배우는 삶입니다(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인품, 품성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지 못하고는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제1단계는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⑵듣는 삶입니다(21).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할/ 새사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는 삶입니다. 그에게서 듣는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십니다.
  ⑶가르침을 받는 삶입니다(21).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예수 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순종이 나옵니다. /할/

 

  ④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22)
  ⑴유혹의 욕심을 벗어 버리라! 여기 '유혹'이란 '나쁜 쪽으로 나를 이끌어 가려는 손짓과 몸짓 그리고 말을 의미'합니다. '교회 가자, 예수 믿자, 바로 살라'는 말은 유혹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분노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동생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살고 있던 롯의 처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통제하지 못한 탓으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헛된 욕심과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여기 욕심이라는 단어는 중립적인 의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욕심이 좋은 의미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거룩한 욕심은 신앙의 진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욕심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욕심이라는 단어 앞에 유혹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옛 사람이 따르던 욕심은 죄로 유인하는 그릇된 욕심입니다. 유혹은 시작이 달콤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비참하고 불행합니다. /믿/할/
  ⑵썩어져 가는 구습과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사람에겐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옛것이나 옛날로 돌아가고픈 본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습관을 무 자르듯 절단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라고 했지요? '수술해 버리라, 잘아 버리라'는 말입니다.
  ▶수술하고 잘라 내려면 아픔이 따라야 하고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결단입니다. 자기와의 싸움도, 내내 마시던 술을 끊는 것도 결단해야 합니다. 저도 예수 밖에 있을 때 술꾼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술도 결단하니까 끊어졌습니다. /믿/
  내내 피우던 담배를 끊는 것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자기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노력하고 결단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한잔 술이나 한 개비의 담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요, 거룩하고 존귀한 자입니다. 그래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습관들이 있습니다. 나쁜 버릇도 있고, 옳지 못한 생각도 있고, 옳지 못한 고집이나, 자존심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버리고 끊으라는 말입니다.

 

  ⑤이제 벗었으면 입어야 합니다(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⑴무엇을 입어야 합니까?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앞에서는 벗으라고 했고, 뒤에서는 입으라고 했습니다. 옷을 벗고 입는 것은 정상인만 가능합니다. 정신병자는 길거리에서도 옷을 벗고, 여름에도 오버코트를 걸치고 다닙니다.
  누더기, 옛 습관 나쁜 옷을 벗었으면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옛 것을 그리워하면 안 됩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해 미련을 가져도 안 됩니다. 자동차 운전석 윗면에 거울이 걸려있습니다. 용도는 뒷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백미러'라고 부르는 그 거울은 뒤쪽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로 가기 위해 백미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잘 가기 위해 백미러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 바로 가야 합니다.
  ⑵그렇다면 어떻게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까? 23절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사람은 입는다는 것을 보이는 외형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데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믿/
  여기 심령이란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있지요! 맞는 말입니다. 마음 한 번 모질게 고쳐 먹으면 구습을 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할/
  ⑶그 다음 24절에 보면 '하나님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따르고 내 경험을 따르며 내가 가진 것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할/
  제 아무리 호강하고 사랑 받던 사람이라도 머리 깎고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면 그 시간부터 교관의 호령에 따라야 하고, 군기를 따라야 합니다. 젊어서처럼 제멋대로 굴다가 불벼락이 떨어집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심령의 변화가 되어야 하고 그 다음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가다 보면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 가게 됩니다.
  ⑷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인격 가운데서 두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격의 초점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그분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 새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의로운 사람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할/ 주님은 새 사람이 되는 비결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비결은 갈2:2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기에 조목 조목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은 부정적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부활을 위한 죽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예수 죽음! 내 죽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은 나의 생각과 주장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활동을 잠시 멈추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과 욕망의 흐름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과 내가 원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자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을 경영하셔서 깨어진 인생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내 스스로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죽음 뒤에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옵니다.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그 분이 나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계획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주시겠다는 보증입니다. 따라서 이 죽음은 부활을 위한 죽음입니다. 위대한 결과를 위해 나의 가진 적은 것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넘쳐 납니다. 왜?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놀라운 능력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것처럼 새 주인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더니 이제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새 주인으로 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가셔서 여러분 마음과 생각과 계획을 다스리시고 나의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포기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내가 나의 실패와 잘못과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적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받으셔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분은 새 주인이 되셔서 새롭게 여러분의 인생을 운영하십니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 안에 거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값으로 사신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살아있는 내 육신을 말합니다. 내 몸은 일도 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병들지 않은, 하나님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나를 건강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내 육신을 드려서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도록 축복하시고 내가 오늘 내 발로 교회를 찾아오게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다가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줍니다. 사랑하면 나를 다 바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깨닫는 것만큼 나의 사랑을, 내 삶을 그분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적게 느끼면 적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희생하신 그 사랑에 우리가 깨어있을 때는 내 뜻을 주장하지 않고 날 사랑하시는 그분에게 나를 맡길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이것은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한다고 하면서 희생하지 않으면 가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믿음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이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예수 능력! 내 능력! /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사람은 겉 단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 속옷을 입고, 새 양복을 입고, 새 화장품으로 단장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속 사람, 심령,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은 인간의 정신이며, 영은 하나님과 교재하고 성령님을 받아 드리는 인간의 가장 높은 부분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면 축복은 그냥 임하게 됩니다. 요한 사도는 요삼1: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할/


  ▶메이크업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피부 미용에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질 것,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할 것, ㈂자기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미움과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거나 근심과 걱정을 품으면 화장이 잘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무리 외제 화장품이라도 자기 피부에 맞지 않으면 피부에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화장도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할/
  새사람은 마음이 달라지는 부분, 생각이 변한 사람입니다. 쓸데없는 욕심도 버리고 시기와 원망도 버리고 믿음을 깨뜨리는 근심, 걱정도, 불평불만도 버리고 순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나는 것이 곧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2:5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또 '새 사람을 입으라'의 원 뜻은 '새 마음을 품으라'입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뜻을 품고 새로운 생각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 생활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뜻과 꿈과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새 생각과 새 꿈은 새로운 세계를 열게 합니다. 사람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꿈을 품고 살아가면 그 꿈과 계획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경은 '꿈을 가져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네가 채우리라'는 약속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⑸이제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함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결단이 있어야 되고 현실로 따라야 합니다. 또 인내도 있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출발하고 기도로 끝마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지금 무엇이 안 된다고 절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역사하십니다. /아멘!/할/

 

  ⑥이제 벗고 입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25-27)
  ⑴거짓을 버리고 참말을 하라!
거짓말은 습관 중에서도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 나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방인의 특성이기 때문에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거짓말하기를 특별히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아덴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했고, 애굽에서는 코를 베고, 귀를 잘라 내는 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회의 문제가 거짓말을 너무나 많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루 종일 생활하고 집에 돌아와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 종일 우리가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평상의 대화 중에 거짓말을 구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하게 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도 주게 되고, 속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할수록 늘고 습관이 됩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게까지 됩니다. 진실성이 결여됩니다.
  거짓말을 자주 하게 되면 이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서 사람이 진실성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와도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행입니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하던 속어 가운데 '뻥'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실컷 어떤 말을 진지한 척 지껄이고 난 후 '뻥'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네 가지로 결정이 됩니다.
  ㈀캐럿(carat)입니다. 캐럿의 클수록 비싸고 좋은 것입니다. 1캐럿과 10캐럿은 그 값과 질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모양(cut)입니다. 누가 어떻게 디자인해서 잘랐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값이 달라집니다.
  ㈂컬러(color)입니다. 어떤 색깔의 빛을 발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완벽한 즉 순결도 입니다. 흠이 있으면 아무리 캐럿이 커도 값이 안 나가고 흠이 없으면 값이 비쌉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가치는 진실에 있습니다. 여기 '참된 것'은 진실을 의미합니다. 제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인품이 좋고 경륜이 높고 인기가 있다고 해도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가가 되면 정치가 온통 권모술수의 온상이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기업가가 되면 모리 협잡에 앞장을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반대되는 거짓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그 인격과 신앙과 삶이 거짓되기 때문에 나옵니다. 진실한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계22:15절을 보면 '거짓말하는 자들은 지옥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거짓을 멀리 해야 합니다. 이제 믿음 안에 새 사람이 되었으니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요8:44절에 보면 '마귀가 바로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짓을 버리라'는 말은 '단번에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 말 자체가 부정과거형으로 되어 있어서 한번 버리는 것이 아니고 단번에 영원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은 현재형으로서 '계속해서 그렇게 말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참된 말을 하는 것은 새사람이 된 증거입니다. /아멘입니까?/
  ⑵분을 내어도 죄는 짓지 말라! 사람이 살다가 보면 분을 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실수하기 가장 쉬울 때입니다. 혈압이 있는 분은 분을 내면 결정적으로 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분을 내다가 혈압이 올라서 죽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사람이 분을 내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말을 막 하게 되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을 낼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더디 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될 수 있는 데로 분을 삭이라는 말입니다.
  분에는 두 가지의 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사로운 분입니다. 이것은 감정 문제로 분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같은 분은 내지 않을수록 좋으며, 내되 더디 내는 것이 좋으며, 냈다 해도 오래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분을 오래 품으면 마귀가 틈을 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의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분노입니다. 이것은 죄와 불의를 목격하게 될 때 일어나게 되는 분노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시니 그곳에 장사꾼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예수님은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상을 뒤집어엎고 모두 내쫓았습니다. 이것은 혈기가 아니고 의분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이 하는 짓을 보고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가 간절히 기도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두 태워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분입니다. 이준 열사가 헤이그 만국회의에 가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연설을 하다가 의분이 일어나서 그만 자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열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26절에서 말하는 분은 이 같은 의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분을 말합니다. 26절에서 '분을 내어도'라고 한 말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뒷말이 중요합니다. '분을 낼 수는 있으나 죄는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아멘!/
  가인이 동생에게 분을 품었습니다. 여기 까지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분을 오래 품었고 풀지를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침내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닭이 알을 오래 품고 있다가 병아리를 부화하듯이, 사람이 마음에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인 사건을 보면 모두 분을 오래 품은 결과 발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내지 말라고 했고, 부득이 내게 되더라도 오래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⑶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끼여들기의 명수입니다. 부부사이도 헤집고 들어와 이간질하고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대수롭잖은 말 한마디로 형제와 이웃 사이를 갈라놓고 시비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넘어간 것은 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이 조건, 저 조건을 내어놓고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으로 물리치고 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은 의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에 의한 사소한 분노를 의미합니다. 분을 품게 되면 선한 사람도 잔인하게 됩니다.
  가인은 분을 다스리지 못해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성도들에게 빈틈을 찾아내어 분을 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정은 다스리지 못함으로 마귀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언서에서 '지혜로운 성도는 노하기를 더디 한다.'고 했고, '화목하기를 힘쓰라'고 당부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불 신앙적으로 살았던 모든 구습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벗었으면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살라, 또 의롭게 참되게 거룩하게 살라, 거룩, 죄와 상관없는 삶,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 /아멘!/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사람의 옷을 입었으면 새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고 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한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반듯이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2009년 12월 27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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