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화평케 하는 자! (마 5: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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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강)           화평케 하는 자! (마 5:9)

 

 

  팔 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1-4 복은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말합니다. 그리고 5-8 복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이웃을 향한 자세를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자세는 무엇인가?
  ⑴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욕심을 비우고 겸손한 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⑵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죄 때문에 애통하는 단계가 지나면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애통하는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죄 때문에 애통하셨습니다.
  ⑶온유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는 다스려진 인격, 훈련된 인격, 길들여진 인격, 조절된 인격을 의미합니다. 말씀으로 길들여진 인격, 성령의 다스림으로 길들여진 인격, 이런 인격의 소유자들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그 대표적인 인격이 모세입니다. 민12:3절을 보세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할/
 ⑷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십시다.
  ▶두 번째로 성도가 이웃을 향한 자세는 무엇인가
  ⑴이웃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⑵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하나가 되고 이웃을 향한 마음이 하나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오늘 제 칠 복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십니다. ◀제목 소개!▶

 

  인류의 역사는 단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역사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사가에 의하면 '지난 4천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해는 겨우 268년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24:7-8절에서 감람산에서 말씀하시기를 '세상 끝날 까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대개의 전쟁 국들은 그 전쟁의 명분을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명분을 내세웁니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만의 전쟁이 아니라 종교관계가 있고, 민족관계도 있고, 경제 관계가 있어 복잡합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작은 전쟁이 있습니다. 교인과의 개개인의 증오, 시기, 질투심 때문에 믿음의 도량이어야 할 교회 안에서도 극과 극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경, 저 구경,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을 시키는 자가 있고, 싸움을 구경하는 자가 있고, 그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과 저 사람간에 이간을 붙여서 싸움을 자주 충돌케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 잘 싸운다. 더 싸우라'고 부채질하면서 구경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말립니다. 이 사람을 가리켜 '화해 자'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화평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화평의 반대는 불화요, 분쟁입니다. 불화와 분쟁의 결과는 피차 서로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큰 비극도 없습니다.
  사람이 폭풍우를 겪어봐야 잔잔하고 맑은 날씨가 얼마나 귀한 가를 알 수 있듯이 불화와 강풍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얼마나 좋고, 고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평화의 사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 검은 대륙 아프리카 선교에 힘썼던 리빙스톤이 그의 약혼자 메리 양에게 쓴 편지 속에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평화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하여 싸우는 일만은 제외하겠습니다.'
  스웨덴의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던 노벨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문명세계를 건설하는데 크게 이바지했지만, 다이너마이트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면서 죽을 때 유언하기를 '자기 소유 공장 15개 전부를 팔아 그것으로 기금을 만들어 인류를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되 세계 평화를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의 유언대로 1901년부터 그가 세계를 떠난 12월1일을 기하여 스웨덴 국왕이 친히 세계적으로 조사하여 이에 합당한 자에게 상을 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노벨 평화상입니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이 됐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 세계의 핵무기 비축량을 감축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 것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할/

 

  ▶오늘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황금률인 '팔 복'가운데 그 일곱 번째 복을 주고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여기 '화평케 하는 사람'은 원어 적인 뜻은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평화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평화를 누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소극적인 의미에서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 이 세상을 보다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화평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창1:2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나의 형상을 따라 내 모양대로 내가 사람을 만들어야지.'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왜 '우리'라고 하셨을까요? 이 사실을 놓고 어떤 신학자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해석을 했습니다. 굉장히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본래 혼자 계시지 못하고 본성적으로 더불어 존재하시는 신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아독존으로 만족하시지를 않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살기를 기뻐하시는 인격자라는 것을 '우리'라는 말  속에서 표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라는 말씀 속에는 삼위의 하나님을 존칭하고 있지만 화평을 설명하기 위해 신학자가 그렇게 말한 말씀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자기 품을 떠나 이미 원수가 되어 버린 인류를 친히 찾아 오셔서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자기와 화목하자고 하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시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하나님의 이미지를 문 밖에 서서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로 묘사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많은 자식들로부터 사랑 받으시고 자기도 또 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십니다. 자기가 그런 분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들 때도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인간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과 똑같이 더불어 함께 사랑하면서 교제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등 돌리고 원수 짓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려고 한 본래 인간의 실존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의 인간을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평화를 깨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원수지게 만들고, 서로 상처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하고는 닮은 데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사탄의 아들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원래 하는 짓이 가르고 나누고 미워하고 원수 짓게 하고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 우리 조상을 유혹한 후에 하나님과 원수 지게 만든 것이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평을 깨는 자입니다.

 

  ①화평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는 '살롬'이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이고, 영어로는 '피스'입니다. 이 말은 우리말 성경에는 '화평, 화목, 평안, 평강' 등으로 평화를 조금씩 다른 어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근본 뜻은 다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인사법은 '살롬'입니다. 이 인사 속에는 '평화 자'란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인사 속에는 '당신에게 나쁜 일이나 악한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는 당신에게 선한 일,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뜻도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살롬이란 말은 '분쟁이 없는 것' 뿐 아니라 그 속에 '더 선한 것들을 베풀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는 말입니다. /할/

 

  ▶성경에서 말하는 화평이란 크게 네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⑴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입니다. 롬5: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할/
  ⑵모든 사람과의 평화입니다. 히12:14절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또한 롬12: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이 없다는 것은 쉽게 표현하면 전쟁입니다. 전쟁은 서로 피곤한 일입니다.
  ⑶믿는 형제와의 화평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음이 생각나거든 재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마5;23-2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⑷우리 마음속에 평안입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야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아멘!/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신앙인도 마음의 평안을 못 찾아 한때 고민한 흔적이 있습니다.
 롬7:19-25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싸움, 영과 육의 싸움의 탄식입니다.

 

  ②왜 우리가 화평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⑴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을 십자가를 통해 하나로 만들어 화해 시켜 주신 분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최대의 역할이 화평의 역할이며 우리 또한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고후5:17-18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너희의 화목제물이 되었으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과는 정반대로 오늘 우리의 역사와 현실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며 화해가 아니라 분열이며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며, 용서가 아니라 분노가 가득 차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렘17: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선지자는 탄식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거짓되고 부패된 심령으로는 절대로 평화의 사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고 씻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받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평안의 출처가 어디서 옵니까? 시29: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할/
  먼 훗날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사9:6절에서 예언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바울은 롬15:3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그러니까 화평의 근원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⑵중생한 사람의 인격적 특성이 화평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는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갈5: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⑶화평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절대 필요한 요소입니다.
  히13:20절에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사9: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롬14: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⑷우리가 갈 천국이 평화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 하늘에는 평화가 넘쳐 나는 곳입니다. /믿/할/
  성경에서 평화란 말이 400여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각 국의 여론조사에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가장 많은 대답이 '평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평화는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가 이 화평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③그러면 어떤 사람이 화평케 하는 자입니까?
  ⑴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형틀을 보면 수평과 수직이 있듯이, 복음을 전하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화목하게 되고 수평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사랑으로 함께 이어집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면 그 진리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과 원수된 자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가정에 평화가 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피스 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이 세상에 화평케 하는 자의 모범을 찾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십자가는 위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해서이고, 아래로는 땅에 화평을 이룬 증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평의 주인공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후5:18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할/
  인간은 원래 에덴동산에서 평화스럽게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으므로 에덴동산의 평화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에서 마귀의 자녀로 죄의 종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평이 깨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원망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들의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일까지 행했습니다.
  ㉢생활의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심령에 저주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에덴을 상실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생을 향한 큰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3:16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한 요일2: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할/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대신 담당시키시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는 평화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은 마음속에 영접하고 구주로 믿고 살게 되면 깨어진 에덴의 동산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 사이에 평화가 옵니다. 각자의 마음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화신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것이 됩니다. /아멘!/
  ⑵섬기는 자가 화평케 하는 잡니다. 사람은 누구나 섬김을 받고 존경을 받고 싶은 본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섬기라, 먼저 대접하라'고 가르칩니다. 마7: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렇다면 남을 섬기는 자세는 어떤 것인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자기를 낮추면서 남을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빌2: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말구유에 태어나셨고 목수 노동자로 생활하시다가 복음 전파하실 때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도 하셨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남을 섬길 줄 압니다. 남을 섬기는 자가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남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편 입장에 나를 세우는 것입니다. 빚진 자의 편에서는 것, 매 마진 자의 편에서는 것, 병든 자의 편에서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나를 세울 때 그때 비로소 그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보면 이해부족에서 오해가 생기고 미움과 증오가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상대방을 이해하셨습니다.
  세리 삭개오를 만났을 때도,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수가성의 여인을 만났을 때도, 문둥병자, 38년 된 병든 자, 굶주리고 배고픈 자를 만났을 때에도 주님은 그들을 진지하게 이해를 하셨습니다. /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남을 위해 일할 수 있고, 화평을 이를 수 있습니다. /믿/
  ㉢구체적으로 봉사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소유할 것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돈, 지식, 직위, 권력, 기술 등 무엇이나 좀 가지게 되면 우쭐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소유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소유했기 때문에 더 많이 봉사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있어야 베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다 재물의 복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소유에 파묻혀 소유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유했기 때문에 소유를 통해 더 많이 봉사하겠다는 자세입니다.
  85년 뉴욕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 그 1위가 인도의 '테레사' 수녀가 뽑혔습니다. 그녀는 54개의 나병 치료소를 설치했으며 47만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었으며, 20개의 고아원을 세워 1,600명의 어린이를 돌봐주었으며 23곳의 숙소를 마련하여 3,400명의 굶주린 자를 돌봐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질 때, '이 상은 나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일 해온 수많은 동료와 봉사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나는 그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그분이 인류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신 것처럼 보잘 것 없는 나의 시간과 정성을 이웃을 위하여 내어 준 것뿐'이라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섬기는 미덕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위대성이 어디 있습니까? 높은 지위에 있습니까? 많은 재산을 소유한 것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가진 것 가지고 이웃과 사회, 인류를 위해 얼마나 봉사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섬기는 자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입니다. /할/아멘!/
  ⑶어떤 자가 화평케 하는 자입니까? 감사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불평, 불만, 원망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사고를 치고 맙니다.
  마음에 불평과 불만, 원망이 쌓이게 되면 마음에 평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부정적이 되고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와 보람을 잃어버리면 의욕상실증에 걸리게 됩니다.
  또 이런 사람은 마귀에 종이 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에 감사보다는 한 가지 먹지 말라고 한 과일 하나 때문에 불안이 많았습니다. 이때 마귀가 역사 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감사가 있는 곳에 성령께서 더 크게 역사 하십니다.
  눅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었을 때 모두를 기뻐하며 돌아갔지만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육신의 치료뿐만 아니라 영적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잃어버린 자들을 향하여 '그 아홉은 어디로 갔느냐?'고 찾으셨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마음에 평안이 있고, 인정이 있고,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있습니다.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입니다. 바울은 골3:15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할/
  ⑷피스 메이커가 되려면 서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한번 금이 간 사이는 피차 용서하지 않고는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골3: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어떤 이유 때문에 마음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갈리게 되면 지체하지 말고 피차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아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물론 잘못한 쪽이 먼저 와서 용서를 빌면 쉽겠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화목하기를 힘써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나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피해를 주고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잘못했다는 소리 한 마디 하지 않는, 정말로 쳐다보기도 싫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먼저 찾아가서 그를 먼저 용서해 주고 서로가 마음의 담이 높이 쌓이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굉장히 힘드는 일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할/ 너무나 큰 용서를 받은 우리이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누구 보다 더 많은 용서를 해야 합니다. 용서는 단순히 시간과 함께 잊어버리는 망각의 행동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나도 용서해 주려는 모방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내가 용서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형제가 나에게 잘못하면 몇 번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7번 정도면 됩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용서를 했으면 용서했다는 그것으로 머물지 말고 더 자주 만나서 위로하고, 더 가까이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피스 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멘!/


  ④이제 결론은 나와 있습니다.
  ⑴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과 화평을 이루는 비결은 순종의 삶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삶입니다. 그리고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가장 귀한 것은 이제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전도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해줘야 합니다. /믿/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전도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 명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⑵이웃과의 화목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먼저 화목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분파를 절대 허락지 않습니다. 예수의 사람으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남을 절대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또 절대로 나쁜 말을 전달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말을 다 빼고 나쁜 말만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의 사신입니다. 분쟁, 불화, 갈등이 있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이 들어가면 화목은 이루어야 합니다. 성 '프란시스'의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할/
  ⑶내 자신과의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인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 속에 평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내 자신이 불안하면 큰일납니다. ▶내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평화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비를 몰고 오듯, 성령은 언제나 평화를 몰고 옵니다. /아멘!/
  276명이 타고 가는 배가 유라굴로 라는 큰 태풍을 만났습니다. 모두가 불안에 떨었습니다. 짐도 다 버렸습니다. 사공들은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만은 평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벧전5: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마귀는 평안을 빼앗아 버립니다.

 

  ⑤이제 본문의 마지막 화평케 하는 자가 받을 복은 무엇입니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면 그 사람은 수지맞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인정해 주시니까 가는 곳마다 형통한 축복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⑴절대적인 보호를 받게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된 축복은 절대적인 보호입니다. 보호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⑵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벌써 천국 열쇠를 받은 자들입니다. 마16: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할/
  ⑶형통의 복을 받게 됩니다. 시122:6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할/ 형통이란 히브리어에 보면 '일이 잘된다, 번창해진다, 안전하다, 견고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화평합시다! 또 네 이웃들과 화평합시다. 그리고 내 자신과의 화평도 중요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할/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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