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번역선교의 선구자 윌리엄 캐머론 타운센드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선교지 현지인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이다.
성경은 선교사들처럼 안식년도 필요없고 외국인이라고 배척받는 일도 없다."
전문적인 성서번역 사역의 길을 열었던 '위클리프 성서번역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의 설립자,
윌리암 캐머론 타운센드(William Cameron Townsend, 1896-1982)가 남긴 말이다.
20세기 성경번역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성경번역선교회(WBT/SIL)의 설립자 윌리엄 캐머론 타운센드다.
그는 강한 확신과 뛰어난 지도력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1893년 대공황으로 경제가 한창 어려운 때인 1897년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한 그는 가난으로 찌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생신앙자원운동(SVM)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917년 한 대학 친구와 과테말라로 떠난 후 50년 이상의
선교사역을 계속했다.
그는 초기에 중미에서 성경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가 맡고 있던 넓은 시골 지역에는 20만명 이상의 칵키퀼 인디언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스페인어 성경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 지내며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지자 그 부족들에 대한 사명감을 느꼈다.
그러나 원주민의 반응은 더뎠고 오히려 반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날 한 인디언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네 신이 그렇게 똑똑하다면서 우리말도 모릅니까?"
이말은 그가 그후 13년을 칵키퀼 인디언을 위해 헌신하게 했다.
그의 당면과제는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이요 그 다음은 그 언어를 글로 옮기는 것이요 결국에는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그는 1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애를 쓴 끝에 1929년 마침내 칵키퀼어 신약성경의 번역을 완료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선교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후대에 평가되고 있다.
내지선교-해안선선교를 이어 미전도종족선교 시대를 여는 시발점을 만든 것이다.
그는 학생자원운동이 낳은 또 한명의 젊은이 도날드 맥가브란과 함께 아직 복음이 미치지 않은 미개척지대가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타운센트는 미전도 종족을 발견했고 맥가브란은 동질 집단이라고 부른 좀더 보편적인 범주를 발견했다.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이후, 19세기에 이르렀을 때 성경은 모두 34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19-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서번역의 열기는 뜨거워졌다.
19세기 동안에만 500개의 새로운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으며, 20세기에는 성경의 주요 부분이 1,000개의 새로운
언어로 번역되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볼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500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추정되는데, 이 중 신약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1/3 정도이며, 신구약 성경
전체가 번역된 언어는 700여개 언어뿐이다.
미복음화지역의 언어 중에서 3%만이 신구약 성서가 모두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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