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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검은 대륙의 여선교사 - 메리 슬렛서(Mary Slessor)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8. 11:07

검은 대륙의 여선교사 - 메리 슬렛서(Mary Slessor)

 

스코트랜드, 1848~1915)


메리 슬렛서는 그녀의 자립적이고 동시에 대담무쌍한 행도으로 인해서 당대의 전설적이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지금의 나이제리아에서 용감하고 기운차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리밍스톤에 의해 선교의 관심이 자극되었다. 1876년 그녀는 해안도시 카리바로 갔다. 이 주요 도시는 영국군의 주둔, 본토민의 미신적이고 야만스런 행위 그리고 노예 매매로 인해 가중되 부패상이 특징적이었다.

메리는 본토민의 언어, 사고, 습관을 익혔다. 얼마 후 그녀는 기존적인 선교 기구를 벗어나 사람들 가운데에서 거주했다. 그녀는 아주 적은 수입으로 살았는데 그렇게 해야만 본국에 계신 어머니를 부양할 돈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목격한 바 비인도적인 사회 습관과 투쟁했다. 그들은 쌍둥이를 낳으면 살해하거나 죽도록 방치하였고 산모도 추방하거나 죽여 버렸다. 메리는 이 신생아와 산모를 구함은 물론 그들이 피할 집까지 마련했다. 그녀는 조직자라기보다는 개척자형이었으므로 내륙 깊숙히 더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런 일은 여자로서는 아주 위험하며 또 전례가 없는 포부였다. 선교사로부터 허락을 얻은 뒤 그년는 오코용가 유역의 '사람잡이 야만인' 부락에 집을 지었다. 언어에 대한 재간, 부락민에 대한 인간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며 압도력 있는 개성으로 그녀는 사람들 가운데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산모와 신생아를 구출하는 일 및 건강하게 회복되도록 돌보는 일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사람들에세 예배를 보아주었고 그들을 가르쳤으며 복음을 전했다. 그녀는 또 논쟁거리의 중재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노력이 인정을 받아 그 지역의 부영사로 임직하라는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았다. 그 당시의 영국 제국은 여성에게 판결권이 있는 직책을 맡기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 과업을 유능하게 처리했다. 그녀는 그 당시 풍습으로서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아내 넷과 준비해 놓은 포로 네명을 죽여서 그의 무덤에 던지는 등 인간의 생명을 앝잡는 행위를 구축하기에 힘썼다. 1894년에 그녀는 정부 보고서에 "인간의 생명을 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이들만큼 공포에 싸여 지낸 부족은 없습니다." 라고 기록했다. 그 후 영국 군대는 더 많은 지역을 개방시켰다.

54세가 되었을 때 오코용에서의 임부가 끝났음을 느끼고, 그녀는 이투시에서 일하려고 더 깊숙히 들어갔다.

삶이 끝날 즈음에 그 지역의 모든 마을에는 기독교 교사가 있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일하다가 죽었다. 영국 정부는 그녀의 업적을 알기 때문에 박애사업에 종사한 그리스도인을 위해 준비한 '예루살렘의 성 요한 훈장'을 수여했다. 메리 스렛서는 특이한 인물 -- 까다로운 빅토리아 시대에서도 자유분망한 여인 -- 이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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