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한국 사회가 불안하고 또 사람들 얼굴에도 짙은, 우울한 그림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이것은 경제적인 불황이 아니라 거기에다가 우리 자신의 마음 상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목표 지상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은 과정이 중요한 것인데요.
얼마나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생각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부정도 저지르고, 심지어는 사기도 치고, 억지와 물의들이 빚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지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빨리하는 것은 좋지만 수순을 밟아서 순리대로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게 ‘금년 10월까지 지어야 한다.’라는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향해서 우리는 온갖 무리한 수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러니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면 바탕이 흔들리는 사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저는 선진국의 정의를 이렇게 합니다.
선진국이란 목표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나라, 이런 사람이 대우를 받고, 이런 사람이 성공을 하고, 이런 사람이 존경을 받는 사회이어야, 이것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다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당신이 미국에서 무슨 공부를 했느냐?”고 묻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정말 목표보다는 하루하루의 삶에 얼마나 충실하게 잘 살아가느냐, 저는 이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잠이 안 오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찾아온 환자가 있었어요.
검사를 해 보니까 나이도 얼마 안 되는 양반이 심장도 그렇고, 위장 등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습니다.
“당신, 나이도 얼마 안 되는 양반이 왜 이렇게 되었소?” 그랬더니 “제가 정신과 박사님께 바른 말 해야겠지요. 제가 젊을 때 사업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친구들, 동창들에게 많은 돈을 빌렸습니다.”라고 합니다.
근데 이분의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제가 떼어먹지 않았지만 갚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화가 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입니다. ‘이크! 빚쟁이인가 보다.’
여러분, 이런 생활을 이 양반이 하다가, 나중에 빚을 다 갚았어요. 이제는 누가 찾아올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누가 노크만 하면 ‘아! 형사가 왔나 보다.’ 하고 달아날 준비를 하는 겁니다.
노크, 형사, 달아날 준비, 이렇게 이 사람의 뇌 속에는 이런 회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몇 십 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는 빚쟁이가 찾아올 일도 없고, 형사가 따라올 일도 없지만, 그런데도 몇 십 년을 이 사람이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그런 회로가 머리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신피질에서 “자도 괜찮아, 올 사람도 없어.”라고 타일러 보지만 허사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자율신경부조증’이라고 합니다. 내가 의지로 “하지 마라.”라고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마라.”라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분의 결정적인 취약점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양반도 ‘나도 어딘가 취직해서 술도 한잔 사고, 그렇게 잘 살아보겠다.’라는 생각을 했겠지요.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형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상처뿐인 영광 아닙니까?
잘 살게 되었지만 과정이 충실하지 못해서 이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좀 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