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비우고, 잊고, 체념할 줄 알아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8. 25. 10:19

비우고, 잊고, 체념할 줄 알아야
이시형 박사(세로토닌문화원 명예이사장)

여러분 실연 해보신적 있죠?
그것도 짝사랑의 애달픔도 별 다르지가 않습니다.
실연의 아픔이란 건 때로는 죽고 싶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하는 이야기는 체념 할 줄도 알아야 되겠다.는 주제입니다.

떠난 연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올 이유가 없어요. 이성적인 판단을 해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깨끗이 체념해야합니다. 그래야지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은 “야 그건 순수하지가 못하다”
여러분 가끔 소설에는 떠난 연인을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그 환영과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더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이고 문학이지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일단 떠난 사람, 괜히 때로는 원망하고, 미워도 하고, 이빨을 갈고 그러면 자기만 다칩니다.
이것은 연인을 위해서도 그럴 수도 없고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딱 생각해 보고 “아, 이 여자가 아니다. 돌아올 여자가 아니다. 돌아올 남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체념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전 정신과 의사니까요, 가끔 떼인 돈 때문에 속상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을 받기 위해서 심지어는 정말 엉뚱한 사람을 고용을 해서 때로는 그 고용한 사람이 오히려 나쁜 사람이 돼서 돈 받아 달라는 사람을 협박을 하고 아주 어려운 곤경에 처하는 이런 경우도 저는 들어봤습니다.

소송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도 얼마 안되는데.
여러분 판사들은 그런 이야길 합니다. “제발 소송은 하지 말아라.” 여러분 한국사람들은요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할 줄을 모릅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이건 완전히 오기죠.
그렇게 되면은 거기에 들어가는 정신적인 충격이나 그 부담은 물론이고 당장 경제적으로도 감당을 하기 힘든 것이 소송입니다.
“오죽하면 저 녀석이 내 돈을 떼어먹었을까?”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래도 또 빌려준 내가 형편이 낫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고 체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김선규씨라고 내가 참 존경하는 후배의사가 한분 계십니다.
이 분은 40대 초반에 직장암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수술하러 갔더니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온 몸에 암세포가 다 번졌습니다. 겨우 통변만 할 수 있게 암 덩어리만 떼어내고 그냥 닫아버렸어요.
이 분도 모든 걸 체념했습니다. 병원도 물론 닫고. 그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참나물 먹고 물 마시고 죽을 날만 기다린 것이죠. 모든 걸 체념을 하고..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죠? 죽질 않는겁니다.
1년이 지나 2년이 지나 이제는 가족들도 오면은 “아, 당신 아직 안죽었네.” 그러고 농담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얼굴이 점점 좋아져갑니다. 다시 돌아왔더니, 여러분 이 분을 외과전문의가 보면은 귀신이 살아 왔다고 그러겠죠.
암 세포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의 결론은 정말 기적적인 생활을 했던 것은 “자기가 정말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기 사촌 동생도 직장암으로 똑같이 수술을 받고 형하고 함께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이분은 몸은 지리산에 와 있는데 마음은 증권시장에 가 있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한잔, 기분 좋다고 한잔,
결국 그 동생은 아깝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의 진단은 “동생은 마음을 비우질 못했다.”였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비운다는게 참 쉽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현재 이 분은 의사면서도 ‘암협회’ 회장이 아니고 ‘암환자협회’ 회장으로 지금 활약 중에 있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후배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또 완전히 잊을 것은 잊고 체념할 것은 체념해야지, 그 무거운, 정말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그 스트레스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가 있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집념도 좋지만 때로는 체념 할 줄도 아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