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를 배우자!(부흥하는 교회) (행 2:42-47)
김연숙씨가 쓴 『흔들리는 신앙, 붙들어 주소서』라는 글에 22년 동안 미국 이민 교회에서 108번 교회를 옮긴 장로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년에 약 5번 정도,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냅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답니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 등 108개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그의 장례식이 문제였습니다. 이유는 그가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기 전 108번째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 주님 앞에 108개 교회의 허물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를 펴놓는다면 주님이 보시고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주님은 그 사람의 허물이 적힌 수십 권의 노트를 던져 주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상향의 교회, 완전한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상향의 교회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사모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입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죄인의 공동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16:18절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磐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陰府)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예수님은 이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는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충성하는 것은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반면 교회에 대항하고 훼방하는 것은 예수님께 대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세상에는 저주가 많고, 악한 마귀 사탄의 유혹이 많고, 여러 가지 불행이 닥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음부의 권세, 사탄과 마귀의 권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교회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자 기도한 지 열흘 만인 오순절 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함께 능력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숨거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자, 3천 명, 5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가는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창립되는 이 교회가 바로 초대교회처럼 든든히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을 알아보자!
1. 배우는 교회입니다(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주의 종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고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배우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삼대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자!'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성령을 바로 알고 믿을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설교시간이 중요합니다. 이 시간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자의 준비입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말씀으로 준비해서 전할 때 심령이 새로워지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배우는 자, 가르침을 받는 자의 태도가 좋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얼마나 겸손한 자세인가?
예수님은 그이 공생애 가운데 제일 먼저 하신 일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배웠으면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배우는 자의 자세는 겸손해야 합니다. 사실 교만한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고개를 숙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정말 겸손히 배웠습니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사도들에게 배웠습니다. 사도들의 전직은 무엇입니까? 가난한 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려 생계를 유지했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무엇이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지금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베드로를 불학 무식하다 했지만 그가 성령 충만하여 가르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 박사입니다. 즉 율법 박사입니다만 그들은 예수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디서 나셨고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아는 정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를 체험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를 바르게 고백했느냐의 문제입니다.
12년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에만 손을 대어도 나을 줄 믿어 손을 대었습니다. 이 때 놀라운 사실이 벌어진 것은 예수님에게 능력이 나타나 12년 괴롭히던 병에서 깨끗이 놓임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아는 것과 앎의 수준이 다릅니다.
이 믿음의 여인은 예수를 체험하여 안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를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체험해야 합니다. 은혜를 체험합시다. 능력의 예수를 체험하여 확실히 배우고 압시다.
2.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입니다(42).
"서로 교제하며" 교회라는 헬라어 원어는 "코이노니아"로 많이 알려진 단어입니다. 이는 '교통, 연합, 동거, 동업, 친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과 교제가 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 형통을 바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神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物통하고, 물통하면 형통한다"는 말입니다.
3.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소원이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교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화평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핍박을 이기기 위하여,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기도는 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 부르짖으라는 말은 땀을 짜며 눈물을 짜며 피를 짜고 생명을 짜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초대교회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진심으로, 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분명히 응답이 있습니다.
렘29:12-13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눅22:44절을 보면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기도하셨습니다. 애쓰고 힘써 기도하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골4:2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새벽 기도가 시작되었답니다.
당시 장로였던 '길선주 목사'님은 성령의 불이 임해서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던 장로님 한 분과 함께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두 사람은 밤새도록 기도하고 새벽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하니까 마음이 기쁘고 능력이 생기고 사명감이 불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회가 열리던 날 "앞으로 전성도가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게 하자"고 건의를 했답니다.
이 건의가 당회에서 통과되어 그때부터 교회에서 400명의 성도가 모여서 새벽 기도를 하고 기도의 불길이 일자, 평양 전체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1907년도에는 한국에 전국적으로 부흥운동의 불길이 일어났다고 교회사는 밝히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는 평신도, 장로를 통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 기도 하지 않는 장로들이 많답니다. 권사,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새벽 기도를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부르짖는 사람을 통해서 응답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영국의 웨슬리 운동, 미국의 부흥운동,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과 같은 큰 부흥운동의 불길도 모두 기도를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업한 지 7년만에 우리 나라의 카오디오 수출 1위를 달성한 '글로리아 전자'의 사장, 김귀형 장로의 간증입니다. 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몸이 불편합니다. 그런데 저는 장로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기 원하는데, 제가 축복을 받아야 남을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시편 1편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저도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악한 사람의 꾀를 좇지 않겠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겠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겠습니다'
기도해서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징조가 있습니다.
①'두려움'이 옵니다. 43절"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퍽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경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 있는 신령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영적 권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모름지기 교회에 들어올 때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닙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전5:1절에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그렇습니다. 발 한 번 딛는 것도 삼가는 두려움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경건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②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납니다(43).
지금도 기사와 표적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납니다. 기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끝나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잠잠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요.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행3:6∼8). 그 후로는 사람들이, 사도 베드로가 가는 곳마다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행5:15-16).
막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고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세워지는 이 교회가 바로 이런 이사와 기적을 나타내는 귀한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기도하는 사람이 헌금하고 구제합니다(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通用)하고 또 재산(財産)과 소유(所有)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必要)를 따라 나눠주고"
초대교회는 자발적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사랑의 구제를 했습니다. 사랑의 손길이 여기저기서 넘쳐 났습니다. 우리도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마지못해서 헌금을 할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물질과 정성, 몸과 마음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 돌릴 때, 하나님께서 더 크고 풍족하게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6:19-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盜賊)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4.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46).
초대교회 교인들은 날마다 교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배우려면 학생은 학교를 매일 가야 합니다. 우리도 온전한 신앙을 가지려면 교회에 매일매일 나가야 합니다.
히10: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習慣)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여야 뭐가 되도 됩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모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죄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새벽 기도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수요일, 금요일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구역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주일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먼저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실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이리 빼먹고 저리 빼먹으면서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한다고 그 사람의 믿음에 불이 붙겠습니까, 기도가 되겠습니까, 응답을 받겠습니까?
전깃불이 켜지려면 전깃줄이 있어야 하고, 수돗물이 나오려면 수도관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기도에 불이 붙게 되고, 찬송이 뜨거워지며, 예배를 통해서 믿음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큰 역할을 합니다.
①교회는 사랑의 보금자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주는 자가 됩니다.
②영적인 목욕탕의 역할을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습니다.
③영적인 잔치를 배설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④영적인 병원의 역할을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병을 고침 받고 건강을 얻습니다.
⑤영적인 휴식처입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에 평강과 안정을 느낍니다.
⑥영적인 학교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만약에 한국 근대 역사에 기독교 100년 역사가 없었다면, 교회가 없었다면 한국이 어떻게 될 뻔했겠습니까? 한국이 지금까지 안전하고, 그래도 이만큼 축복 받고 잘된 것은, 다 교회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교회에서만 모인 것이 아니라 가정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가정예배의 정감 넘치는 풍경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여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47).
"하나님을 찬미하며." 교회는 찬양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성전에 모여서는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히13: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찬양이 뜨거운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오늘 세워지는 이 교회가 찬송이 살아있는 제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초대교회는 칭찬 받는 교회입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이 교회가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부흥되는 교회이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결론을 행9:31절에서 찾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부흥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이 다섯 가지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①초대 교회는 평안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우선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곳입니다. 그러면 초대 교회가 어떻게 그토록 평안할 수 있었는가?
본문을 보면,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 앞에서 초대 교회가 평안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사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사울이 본시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교회를 몹시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자가 아니고, 교회를 허는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종이 되었고,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담대하게 나아가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과 사귀기를 원했지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그를 믿어주지 못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저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지? 교회 안까지 들어와서 또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저러나? 왜 우리를 몽땅 잡아가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사울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었습니까?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믿어주었습니다. 그의 과거를 따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왔습니다. 사울을 대신해서 사울의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사울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의 모든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사울에게 있었던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모르게 교회를 비난할 수도 있고,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과거의 사울처럼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허는 일에 열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힘써 교회를 지키고,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바나바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용납해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따지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나를 용납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 사람의 과거도 묻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용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변화시킨 하나님이 왜 그 사람인들 변화시키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의 과거를 자꾸 들추어내면서 흉보고 헐뜯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교회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바나바와 같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놀라우신 평강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할 것입니다.
②초대 교회는 든든히 서 나아갔습니다.
사람이 너무 평안하면 해이해지기 쉽습니다. 영적으로 느슨해지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든든히 서 가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잠자는 교회가 아니었고, 살아있는 교회, 역사 하는 교회, 힘있는 교회, 권세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얼마나 핍박이 많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믿음 위에 굳게 섰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산정현 교회를 신축하고 나서 헌당예배를 드릴 때 이러한 세 가지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①이곳은 하나님이 계신 전이 되게 해 주세요!, ②이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해 주세요!, ③아무리 수가 많아도 바람 한 번 불면 다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가 모인 곳이 아니고, 수야 얼마가 되든지 간에 알곡들로 채워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세요!
쭉정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고, 반석 위에 든든히 서 있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이 교회가 주 앞에서 든든히 서 나아가는 귀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③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주를 경외함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권세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알았습니다. 그 두려움은 경건한 두려움이요, 신령한 두려움입니다. 코람 데오(Coram Deo), 곧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라는 신전의식에서 나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경배 드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올라와야 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돌아간다." 이와 같이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④초대 교회에는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영이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성령의 위로하심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벙어리 신자가 아니고, 담대하게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가운데 첫 번째인 사랑이 풍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⑤초대 교회는 놀랍도록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제일 끝 부분에 보니까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믿는 자의 수가 삼 천명으로, 오 천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수는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말하자면 초대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평안했습니다. 든든히 섰습니다. 주를 경외했습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이 함께 했습니다. 놀랍게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아름다운 초대 교회의 모습이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오늘 설립예배를 드린 이 교회가 이루어나가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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