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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롬11:36-12:2) / 서대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11. 30. 07:44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5,18주일 설교)| 말씀………설교원고모음

서대장 | 조회 257 |추천 0 | 2014.05.17. 10:46 http://cafe.daum.net/cgsbong/21mg/7981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롬11:36-12:2

주신 말씀 롬11:36-12:2절을 중심으로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선포되는 메시지를 통해 큰 은혜의 시간 되기 원합니다.

로마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제1-11장의 교리부분과 12-16장의 실천부분으로 나누게 됩니다.

로마서는 1-11장에서 기독교의 기본교리에 대해 기술하고 12-16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맞는 올바른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리는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심장과 같은 것이죠.

심장에서 대동맥과 정맥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쉬지 않고 뛰며 인체 곳곳을 생명의 피가 영양을 공급하고 있듯이 교리와 실천이 제대로 결합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뜨거운 심장이 바로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자비하심인 자비와 은혜대로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성도들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사랑의 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값으로 나를 사서 살게 해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되게 하시고 천국을 상속받은 하나님 자녀 삼아 주셨음을 깨닫게 될 때마다 늘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내가 일할 수 있고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사랑임을 고백하며,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며 주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주님의 주권 사상과 영광 사상으로 무장하라(11:36)

본 절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 되시고 그것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그것의 목적지가 됨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이는 (Ό΄τι)로 ‘왜냐하면 ~ 때문이다’라는 뜻으로 1-11장까지 제시한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전치사 έκ를 사용하여 우주와 만물이 그 기원을 하나님께 두고 있음을 분명히 제시하므로, 만물 우주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하나님 주권 사상을 분명히 제시한 것입니다.

말미암고 δια 디아는 소유격을 지배할 때에 수단 방법 방편 매개의 뜻을 가지고 있어 ‘~로 말미암아. ~에 의해서, ~로 말미암아 등으로 번역되어 하나님께서 만물의 동인임을 알게 합니다.

우주와 만물이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운행되고 유지되고 만물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말도 목적격을 지배하며 어떤 물건이나 또는 그 근처로 들어가는 동작을 나타내기에 만물이 역사의 성취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최종목표인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기원이 주에게 있고, 경영은 물론(勿論) 말할 것도 없이 즉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며, 마지막 결론도 즉 주께 돌아감이라 합니다.

하나님만이 시작의 원인이며 과정의 경영이시며 끝이 결말나는 결론임을 분명히 함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즉 하나님의 작정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만물에 대한 주권이 있으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류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것이므로 인간은 다만 그분을 찬양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이 만물의 기원이며 만물의 동인이고 만물의 최종목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교리편을 마감하면서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므로 영광은 하나님께 영원토록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므로 우리의 살고 죽는 것과 우리 인생 여정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함이 너무 너무 당연한 것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성도의 유일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도 때로는 세속적인 번영을 간구할 수 있고,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바랄 수도 있지만 최종적이고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 영원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소망이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싸우고 환난과 고통과 승리와 성공 속에서 항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불과같이 뜨거워 왕성한 신앙생활을 할 때에나 심지어 시험에 들어 낙심할 때도 이러한 소망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0:11“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한 것에서 그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소망이 계속적인 성장을 거쳐 성도의 신앙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과 같은 보조를 맞추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하는 최고의 신앙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6절 말씀은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소망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아주 사소한 것부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축원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이며 소망이 되어 점차 성장하고 자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성숙하여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동인이 되고 고백이 되기를 축원 합니다.

어떻게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요?

 

둘째로 우리 몸 을 산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라.(12:1)

구약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 화목제 등을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12장 1절에서 신약교회의 예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나 말씀묵상이나 선행이 아니라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입니다. 예배를 바로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고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선민으로 택함을 받고 구원의 칭의가 시내산에서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구원은 적에게서 생명을 건짐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병의 치료입니다.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올때 뒤에는 군대, 앞에는 망망대해가 있을 때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민족을 건너게 한 것이 구원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칭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교제가 시작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 열납 하십니다.

흠 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성도의 삶이 구별되고 성화되어가는 과정 거룩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영성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 예수의 영이 내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찬양 기도 말씀을 통해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1절에서 구체적으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합니다. 구약에서 죽은 짐승의 시체로 제사했지만 이제 신약의 예배는 살아있는 내 몸을 성도의 몸을 즉 성도의 삶을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통해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배는 우리에게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얼핏보면 인신제사를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드리는 인신제사를 기뻐하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에서 흠없이 죽은 동물의 시체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제사와는 그 성격이 다른 죽은 제사가 아닌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체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몸이란 사람의 인격 전체 삶 전체 즉 지정의 전인격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산제사는 성도의 인격과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며 나누고 섬기며 배려하는 일체의 사랑의 행동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 몸을 드려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이 첨가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하여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하여 산 제사로 어떻게 드릴 수 있나요?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 없는 물질만능주의(맘모니즘:mony) 이기주의(에고이즘:me)란 우상을 사람마다 가슴 속에서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하나님 없는 인간본위의 악한 풍습과 타락한 생활방식을 좇아 사는 세대를 가리킵니다.

유병언일가가 잠적해 버립니다. 사이비는 죄의식이나 책임감이 없지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아 타락하고 사치한 생활을 합니다.

다음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과 말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에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인격과 자비의 품성으로 변화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성령 사역과 말씀 사역인 줄 믿어야 합니다.

영적 예배란 구체적인 삶 전체 속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세상의 타락한 시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로서 날마다 삶과 전인격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εύάρεστον)는 말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accept)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으실 만한 구별된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 줄 믿습니다.

거룩한(άγίαν) 예배란 내가 드린 예물이 도둑질이나 사기나 부정한 재물이 아니라 땀흘려 일한 정당한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산(ξώταν) 제물로 드리라 합니다.

즉 자기본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본위의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별되고 온전한 삶을 산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제사장 된 자들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주의 면전에서 코람데오의 삶을 사는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삶을 산다는 것은 먼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늘 하나님의 전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제사하고 분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헌신한다는 것은 가정도 직업도 팽개치고 교회봉사나 전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삶을 산다는 것은 중보자적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백성들이 죄를 범하면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며 또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은 범죄에 빠져 있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중보기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 몸을 제물로 하여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우리 예수님께서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하신 예배 즉 전인격과 삶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되 흠과 점이 부족함이 없는 온전하고 거룩한 구별된 삶을 통해 예배하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어떻게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요? 

 

셋째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2)

성도의 삶 자체가 거룩한 제사가 되기 위해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합니다.

2절에서 예배의 목적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예배의 목적인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내적 본성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만 비로소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종노릇하던 과거 나의 모습이 악하고 성품이 비열하였습니다.

지난 세월 아니 어제의 일만 되돌아보아도 어리석고 못된 것 뿐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서 나서 마귀의 자녀로 마귀와 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태로는 결코 하나님을 위해 산 제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그리스도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우리의 성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일평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기만 하면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변화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우리의 변화의 종착지입니다.

이 변화가 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무조건 힘쓰고 애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수러의 늪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고 힘쓰고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듯 한번 죄의 늪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의 완악한 성품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죄인된 우리 인생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만 가능한 줄 믿습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완악한 선품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분히 다다르도록 돕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더욱 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속에 꽉 채워져 있는 나의 자아와 더러운 욕심 음란한 정욕을 성령의 인도에 따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청종하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을 슬퍼하시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탄식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변화를 위해 더욱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2절 말씀처럼 세상은 결코 성도의 스승이 될 수 없으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시대정신이나 세상의 행태들을 따르거나 모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은 마귀가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음란가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쾌락과 거짓과 우상 숭배가 난무하는 곳입니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교묘하게 사람들을 미혹하고 죄악에 빠지게 합니다.

진리를 부정하고 도덕에 둔감하게 하다가 결국 죽음의 길로 몰고 갑니다.

세상을 좇아가던 발길을 돌려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성도는 변화를 받아(μεταμορφόω) 즉 모양이나 외형이 아닌 본질 자체, 어떤 사물의 본질적 요소가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해서 변화를 받으라는 것은 외양이 아니라 본질적 요소의 변하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바르게 살고자 하면 바로 이와같은 사람의 본질적 요소인 속사람의 근본적 변화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인 누스(νούς) 즉 마음을 갱신함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반드시 경험해야만 할 마음의 갱신을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있는 내면의 갱신은 삶을 놀랍게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몸은 모든 정욕의 더러움에서 깨끗해지고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더 이상 육체의 본성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며 성령의 은사로 깨끗하게 될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고 온전합니다. 이 자세가 성도가 자기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해 실행해야할 최종적인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고 온전하십니다. 비록 세월호의 참극일지라도...

우리 인간은 고통과 슬픔에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결코 선하신 분이라고 하지 않지만, 우리의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면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켜 주심 없었던 때는 없었던 것입니다.

비록 절망할 수밖에 없는 악한 상황 속에서도 선하고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더 깊은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고난에 대해 때를 따라 돕는 분이십니다. 단지 우리가 바라는 선 바라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선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때에 돕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궁극적인 선을 가장 적합한 때에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며 그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내하고 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주님의 주권 사상과 영광 사상으로 무장하라(11:36)

둘째로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12:1)

셋째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2)

하나님께서는 우리로부터 우리의 삶 전체를 제물로 드리는 살아있는 예배를 받기 원하십니다.

구약에서 5대 제사법을 통해 향기로운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신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변화를 받는 성도의 삶인 산 제사 즉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