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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6.설교}*영혼을 위한 예수님의 지상 사역/마 9장 35-38절* / 박종태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3. 6. 04:18

{3/6.설교}

 

*영혼을 위한 예수님의 지상 사역/마 9장 35-3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십자가의 길로 불평없이 걸어가시며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며 희생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누가 있어 만약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서슴치않고, 그분은 죄가 만연한 인간들의 영혼이 불쌍하여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요3장16).
이 점에 있어서는 성경의 기록들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대답을 머뭇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누가 있어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했던 일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셨던 일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 말씀은 그분이 하셨던 일들을 참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는 자신의 영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영혼의 중요성을 체험한 한 사람이 영혼을 위한 헌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존재의미, 생에 대한 애착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셨습니다.

 

 

모세도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고 품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슬픕니다. 이 백성들이 금으로 신상을 만드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출 32:31-32)

모세는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백성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정이 넘쳤습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이 구원 받았다는 확신, 그리고 가족과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열정을 품었습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한 영혼을 바로 세우고 책임지기 위한 눈물을 흘려보았습니까? 예수님처럼 인간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신 사랑과 위로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사람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않으니 내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립니다.”(시 119:136)라고 했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과 함께 18세기 위대한 복음 설교가인 조지 휫필드는 설교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조지 휫필드를 보고 “왜 저렇게 잘 우냐”고 했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여러분은 내가 눈물을 흘린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을 위하여 울지 않으니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은 경제적 빈곤 때문에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립니다. 경제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울어야 할 것은 경제만가 전부 아닙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내 자식이 보다 많은 지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자녀의 영혼을 품는 열정과 사랑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기 위해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수께서는 이 지상에서 무엇을행하셨을까요?

 

 

{1},영혼이 중요하기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에 주력하셨습니다."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35절)라는 말씀이 이 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각처에 있던 회당들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으로서는 최고의 좋은 장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예배 때마다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장소를 반드시 회당에만 국한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회당뿐만이 아니라, 거리, 언덕, 산, 바닷가, 가정집 등 그 어디든지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많이 하면서도 예수님을 배운다는 말은 거의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에게 올바른 구원의 길을 가르치셨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분은 분명하게,"내게 배우라"(11:29), "내가....너희도 행하게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장15),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장35절),는 말씀을 누누이 하셨습니다. 그러한 말씀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기회가 있을 때 전도하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먼저는 내 자녀들과 가족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영혼이 중요함을 일깨워 줘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시작하십시오.

 

 

{2},영혼이 불쌍해서 가는 곳마다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전하신 내용 전부가 천국의 복음이었습니다. 실로 그분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4:17)외치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땅위에 머물러계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증언을 하셨던 내용 전부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행1:3), 실상 천국은 그분에게 있어 복음의 내용이 전부이자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핵심적인 목표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전할 말씀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많은 목자들과 교회를 조금 많이 다니고 자신의 믿음이 남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거룩한 분의 뜻을 망각하고 자신들에게 영안의 능력과 예언을 들추기며 사람들을 현혹케 하고 있습니다.

 

 

영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은 한 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혼이 주님 앞에 인도되도록 하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면 성령을 통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사도행전의 복음전도를 보면 항상 성령께서 전도의 문을 여셨습니다.

영혼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구원과 관련을 맺고 관계의 동기를 갖게 합니다. 전도행위가 어떤 방법이 되었든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하는 일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전도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양합니다.

필요한대로 적절하게 사용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시는 일은 공생애 3대 사역으로 오늘의 제자 비전을 가진 자들이 해야 할 영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영혼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인들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됩니다.”(눅 10:5)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해진 사람이 구원 받도록 모든 목표를 거기에 두고 관계를 맺고 생활해보십시오. 성 프랜시스“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는 일만 번의 고통을 당하여도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목자 없는 양은 많은데 이들을 인도할 목자가 없다면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목자 없는 양에게 필요를 충족시켜주었던 것이 그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있었기 때문에 진정 그곳은 이 땅에서 시달림을 당하던 고통과 죽음, 그리고 죄가 더이상 존제하지 않는 지복의 장소입니다.
그런데도 어떤이들은 천국보다도 이 땅에서의 축복을 더 원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장차 가게될 천국에 부끄러운, 교만한, 존재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3},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분이 가는 곳이면 언제나 많은 병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때마다 그분은 저들의 질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이런일은 복음서 전반에 널리 기록이 되어 있는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시느니라"(35절)는 말씀이 더욱 그러한 점을 천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르치심이 천국을 말로서 설명하는 일이라면 병고침은 천국을 실제 몸으로 체험해 보도록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병고에서 벗어나 건강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천국의 기쁨에 대한 산 체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무려 38년 동안이나 한 번도 일어서보지 못했던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곧 자리를 털고서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로 그에게 있어서 이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체험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그토록 많은 병자들을 고쳤던 목적은 그 영혼을 어디까지나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셨던 것이었지, 병을 고치는 일 자체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몇몇 목회자들이 기적과 능력으로 병고침을 한다고 하면서 순수한 성도들을 현혹하는 일이 간간히 메스컴을 타고내립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위하는 일에 신유를 방편으로 썼을 뿐이지 어떤 사람들을 자신들의 능력을 알리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과는 달리 어떤 분들처럼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하며 큰 전단지에 성령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을 자랑하는 자들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신앙은 천국이 아니라 치병종교로 전락을 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사순절기간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기에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병고치는 일들을 하시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에게 천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지금 우리들의 영혼으로 흘릴 수 있는 눈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을 던져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거룩한절인 사순절기간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목회자나 성도들이 되지말고 그분의 희생을 빛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2016년 3월 6일의 주일에 
박종태목사.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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