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불신을 넘어 확신으로(막 16:9-14) / 이규왕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3. 25. 16:21

불신을 넘어 확신으로/(막 16:9-14)

 

설교 : 이규왕 목사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세상에는 우리 기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나라마다 종족마다 제 각각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들 가운데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종교가 선한 윤리적인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종교는 인간에게 선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설령 그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기독교가 여타의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몇 가지를 반드시 믿어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1) 첫째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말하는 알라와 다르고 여호와의 증인이 말하는 유일신과 다릅니다.
2) 둘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가 없으시며, 완전한 인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속죄의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3) 셋째는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되 우리의 육신과 본질적으로 다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진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이성으로 이해되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믿는자보다 믿지 않는자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진짜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성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입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의 삶을 볼 때 부활을 믿는 자 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을 불신의 가족이나 이웃에게 전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설령 오늘 내가 그와 같이 연약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알고 보면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한 때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한 때는 우리들처럼 믿음이 연약한 상태였음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그같은 모습을 통해서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라도 하면서, 교회 안에서 나름대로 직분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확신이 없는지 그 원인과 대안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1.부활에 대한 예언과 약속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꾸며낸 허황된 이야기나 조작된 소설이 아니라 일찍이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 여러 곳에 부활에 예표와 예언들로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이 때가 됨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1) 다윗의 예언
(시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이는 다윗이 자신에 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로서 그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면서 미리 내다보고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같은 시편의 말씀을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2:25-28절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행 2:25-28)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 에스겔의 예언
(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겔 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는 물론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예언한 말씀이지만 또한 그 상징 속에 미래에 그와 같은 부활이 있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3) 이사야의 예언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는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말씀으로 때가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그 예언의 말씀을 다 이루심으로 당신이 구약에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눅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 증거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리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는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사로의 가정을 방문하셔서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심과 그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하게 될 것을 비로소 처음 말씀하셨습니다.
(요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기서 부활이라는 말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과는 차별화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지만 결국 늙고 병들어 다시 죽은 다음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말은 그와 달리 썩을 것이 변하고 죽을 것이 변하고 천한 것이 변화된 영광스러운 부활인 것입니다.
(고전 15:42) ”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


베드로가 예수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 고백을 한 후부터 예수님은 비로소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것도 한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고 여러 차례 반복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와 같은 부활이 주님의 죽으심 후에 일어나게 될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눅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렇게 부활하시는 까닭은 당신 혼자서만 영생하시기 위함이 아니라그 부활을 믿는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 증표로 부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은 설령 죽임을 당하신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부활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렸어야 합니다.

2. 불신하는 제자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한지 사흘이 되는 날 새벽에 평소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신대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날에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1)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이 들려 고통을 겪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이 고쳐 주신 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지나자 제일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사람입니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막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여기서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라는 말은 너무나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와 그이 일행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남달리 특별하였음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처럼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은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라 시신의 악취를 감소하기 위해 향유를 바르기 위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그의 일행은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역시 연약한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의 일행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에 이를수록 떨쳐 버릴 수 없는 큰 걱정 한 가지는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굳게 막은 큰 돌문을 어떻게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를 것인가? 하는 것을 서로 걱정하였습니다.


(막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여기서 그러나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에 도착하였을 때 누가 그들보다 먼저 도착했는지 이미 예수님의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일등을 하지 못하고 이등을 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막 16: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여기서 ‘심히 크더라’는 말(sfavdra+++, mevga")은 대단히 라는 말과 크다는 두 말을 겹친 강조법으로 돌문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열고 들어갈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덤에 들어가 보니 자기들이 기대했던 예수님의 시신은 간곳이 없고 흰옷을 입은 낯선 청년이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막 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여기서 ‘보고’라는 말(ei[dw)은 확실한 경험을 나타내는 말이고, ‘’놀라매‘라는 말(ejkqambevw)은 매우 놀라다는 뜻입니다._
물론 그 이유는 그 여인들이 찾는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자리에 낯선 청년이 앉아 있으니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흰옷 입은 청년이 막달라 마리아의 일행에게 그들이 찾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여인들이 찾은 무덤이 비판자들의 말처럼 빈무덤을 예수님의 무덤으로 착각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이라는 정확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의 일행은 예수님의 시신을 보러 갔다가 실수가 아니라 전혀 예상 못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최초로 목격한 영광의 증인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부활하셨음을 증언한 청년은 막달라 마리아의 일행들에게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2) 제자들의 불신


예수님의 제자들은 삼년을 하루 같이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날에도 제자들은 모여서 울고 있었습니다.


(막 16: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여기서 ‘슬퍼하며’라는 말과, ‘울고 있는’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동 분사 현재 능동형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목격하고 천사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한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슬퍼하였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막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한 두명의 제자들만 그렇게 불신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들은 낙심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이 여기신 예수님은 친히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만나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막 16: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3. 예수님의 책망과 불신의 원인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와 같이 믿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세상에 머무시면서 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믿음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막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듣고 배우고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눈으로 여러번 목격하였고 부활하실 것에 대한 여러 차례 말씀도 들었으면서도 정작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믿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마음이 완악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머리의 좋고 나쁨이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불신에 가득찬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부활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풀어주시고, 또한 성경 말씀을 믿어지게 하고 깨달아지게 하는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신 것은 제자들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만민을 구원하는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여러 가지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을 때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기는 고사하고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했을 때 제자들은 슬픔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을 넘어 확신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사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은 아무리 부귀권세를 다 거머쥐고 있을지라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인간을 구원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려고 독생자를 보내어 사망의 근본원인이 죄 문제를 십자가로 해결해 주시고 인류 최대의 난적인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인간이 제일 두려워 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을 불신하는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십일 동안 지상에 머무시면서


1) 부활에 대한 성경 예언을 풀어서 부활하실 수밖에 없는 사실을 가르치시고,
2) 말씀을 깨닫고 믿어지게 하는 진리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확신의 사람들로 변화시키셨습니다.
3) 그리고는 불신을 너머 확신의 사람으로 변화된 제자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약속하신 대로 권능을 부어주셨습습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불신으로 가득찼던 베드로가 확신의 사람으로 변하여 복음을 전하였을 때
1) 행 3장에서는 성전 미문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났는가 하면,
2) 행 9장에서는 욥바에서 믿음으로 선행과 구제를 많이 베풀다가 죽은 도르가라는 여인을 ‘다비다야 일어나라’ 소리쳐 불러 살아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부활의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행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주님은 오늘도 불신과 회의에 가득찬 우리를 확신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은 자기처럼 불신하고 의심하는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서 부활의 복음을 증거할 때 자기가 받은 주께 받은 은혜와 경험을 간증함으로 더욱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하는 부활 신앙은 단순히 머리로 알고 외워야 하는 교리가 아니라 믿는 대로 구원을 얻고 믿는 대로 부활하는 생명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 아침에 사랑하는 성도들도 불신이 변하여 확신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해주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가운데 진리의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는 은혜와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버리지 않고 살려 두신 이유가 부활의 복음을 땅끝까지전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불신을 넘어 확신의 사람이 되어 이제 이후로 부활의 복음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나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이방사람들게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과 결심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이 약속하신 능력이 삶에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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