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식사 한번 하며 (요 21;1-14. 2016.4.1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4. 10. 14:38

식사 한번 하며 (요 21;1-14.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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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영학자 워렌 버핏과 식사 같이 한번 하는 데 260만불이라는 이야기는 우리를 경악하게 합니다. 30억입니다. 그래도 줄서 있다는 소식입니다. 30억을 주고 식사 한 끼 한다는 말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점에 들렀다가 워렌 버핏과 함께 한 점심 식사라는 책이 눈에 띄여서 사가지고 왔습니다. 이 책은 그가 3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하버드 대학원 입학 실패담, 코카콜라와 질레트의 대주주가 된 과정'을 들려 주면서 투자방법을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워렌 버핏은 그 책에서 6가지 인생 철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0억짜리 이야기인 데 평범합니다.

 

자신을 행운아로 생각하라.

정말로 사랑하는 일을 하라.

현명한 동료를 사귀어라.

스스로 판단하고 인내하라.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어라.

베풀며 검소하게 살아라.

 

그리고 투자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한끼 식사가 그의 운명을 바꾸어 줍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과 함께 조반 한 끼 먹으면서 사도가 된 이야기입니다. 한번 식사에서 운명이 바뀌는 장면입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정치 자금을 모금하는 이상한 방법을 썼습니다. 백악관에 손님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정치자금을 1억원 가량을 내면 그 방에 하루 밤을 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아침을 먹을 수 있습니다.

백악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대통령과 식사를 한 그 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먼 훗날 우리는 천국에서 분명히 베드로를 만날 것입니다. 그 때 내가 만일 베드로 사도와 천국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이렇게 물어 봅니다.

베드로 사도님! 지구에서 살면서 하루에 세끼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였지요? 일년이면 1000끼 정도 식사를 하였고 60년이면 6만번 밥을 먹었는 데 어느 식탁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그러면 베드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나는 예수님을 3년 동안 생명을 걸고 따라 다녔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맥없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모든 제자들이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운 것이 도적질이라고 고기잡이 어부로 다시 돌아 갔지요. 어느 날 저녁 갈릴리 호수로 고기를 잡으로 나갔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날따라 왠 일인지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3년 동안 고기 잡는 기술이 줄었나 보다라고 생각하였지요. 그 때 어떤 분이 앞에 나타나서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심코 그물을 오른 편에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 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큰 고기가 모두 153 마리였습니다. 이상하여 바라 보니 예수님이 살아 오신 것입니다. 나는 기절할 뻔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미 숯불을 피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조반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나에게 양을 치라고 하시면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후 나는 사도의 직분으로 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조반은 내 생애를 바꾸었지요.“

베드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은 식사가 있습니다.

이제 파나이 섬에 우리 교회는 교회를 320개 세웠습니다.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도 세웠습니다. 신학교도 세워서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신학교 봉헌예배를 드리러 갔을 때였습니다. 나는 40여명 신학생들을 음식점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식탁에는 닭다리가 쌓여 있었습니다. 모두 분위기 좋게 둘러 앉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식사 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눈을 떴습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상위에 있는 닭다리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강 요한 선교사가 내 앞에서 버릇이 없다고 학생들을 막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너무들 가난하여 일년 12달 가도 닭다리 한번도 못 먹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닭다리를 보자 막 말로 미칠 정도로 환장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도리어 강 선교사를 책망하였습니다.

강 선교사! 야단치지 말아라. 네가 잘못 하였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아이들을 초청하면 싫컷 먹고도 남게 닭다리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라. 천천히 먹어도 배터지도록 싫컷 먹는다는 생각을 하게 하여라. 천천히 먹어도 싫컷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여라.”

그리고 그 사건을 마무리 시켰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조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갈릴리로 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그 현장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못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고기가 153마리 잡혔습니다. 그물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물을 끌고 해변가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숯불을 피어 놓고 조반을 준비하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조반을 같이 먹은 후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과 조반을 먹으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식사 한 끼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을 성경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베드로는 조반을 먹으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큰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12)

 

안다고 할 때에 원어는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부활을 주셔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의 운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닙니다. 안 보이는 세계가 더 큽니다. 우리는 겨우 10리까지만 봅니다. 끝없이 넓은 우주를 볼 수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만 소리가 아닙니다. 안 들리는 소리가 더 크고 더 많습니다. 이 공중에 얼마큼 소리가 돌아 다닐가요? 수많은 사람들의 전화 전파가 거미줄처럼 교차되고 있습니다.

부활후에 세계를 볼 수 있으면 인생관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신문사를 찾아가서 부탁하였습니다.

내가 종교를 만들고 싶으니 교주라고 광고를 부탁합니다.”

이 말을 들은 직원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십시오. 그러면 신문에 내 드리겠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야 교주가 됩니다. 부활 후에 세계에 들어가 영원히 살 것을 아는 사람은 인생관이 바뀝니다. 모세는 궁중에서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알고 궁중을 뛰어 나와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바울도 장차 받을 영광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고난을 감수하며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과 식사 한 끼 하면서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죽으면 부활할 것을 알았고 믿었기에 순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돌아 가신 어머니가 살아 내 앞에 오셔서 저 세상 이야기를 하여 주시면 확신이 더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생각하여 이 곳에 삶이 바뀔 것입니다. 이 세상보다 저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한 끼 식사하며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아파하였음을 본문을 통하여 발견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12)

 

 

부활을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감히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말이 많은 제자입니다. 그런데 말도 못 하고 감히 묻지도 못 한 것은 너무나 아팠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감히 묻지 못 하였습니다. 왜 감히 묻지 못 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가요? 베드로의 침묵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충격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보고 감히 묻는 자없이 침묵을 지킨 이유를 가만히 찾아 보면 충격의 감정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죽었던 사람이 살아 앞에 와 앉아 있다는 사실은 경악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3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나셔서 내 앞에 지금 나타나셨다면 나는 감히 말을 꺼내지 못 할 것입니다.

 

놀라움

베드로가 감히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은 놀라움의 감정도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갈릴리까지 오셔서 고기 잡는 현장에 계시다는 것은 충격이요 놀라움이었을 것입니다.

 

반가움

베드로가 감히 아무 말도 못 한 것은 너무나 반가움의 감정도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죽었던 스승이 살아 와 앞에 있을 때에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아픔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감히 묻지 못 하고 침묵으로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픔의 감베드로가 무엇이 아팠을 가요?

 

베드로는 숯불을 보고 아팠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숯불과 연관을 맺은 첫 사건은 요한복음 18장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들에게 붙잡혀서 심문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도망하였고 베드로만 멀직히 서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종과 하속들은 좀 추웠던 지 숯불을 지펴놓고 쬐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18;18)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들이 쬐고 있는 숯불에 베드로도 동참하였습니다. 제자라는 신분을 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고 계신 데 숯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숯불을 쬐고 있지는 않은가요?

민족이 아픔을 당하고 있을 때 숯불을 쬐고 있지는 않은 가요?

남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세상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 가요?

예배시간에 유흥장에 가 있지는 않은가요?

그런데 베드로도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는 데 베드로는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숯불을 피어 놓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숯불을 보면서 양심에 가책이 되어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물어 보지 못 하고 아파하였습니다.

 

이름을 대면 유명한 목사님이 아산 병원에서 암수술 3번을 하고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였습니다. 문병차 병실어 들어섰습니다.

강 목사! 어디 갔다 왔어? 보고 싶었어.”

그는 다 죽어 가는 초췌한 얼굴로 내게 물었습니다. 마침 제주도 집회에 갔다 왔을 때였기에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제주도에 다녀 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억지로 미소를 띠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멜 때 강 목사는 푸른 초장을 다녔구나!”

아직도 이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메실 때 베드로는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숯불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으로 있었습니다. 아파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픔을 당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춥다고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숯불을 보는 순간 베드로는 아파서 감히 말 못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기를 보고 아팠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오늘과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던 밤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능력많으신 예수님을 보고 아팠을 것입니다.

첫 번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53마리를 잡았습니다. 153마리의 고기가 그물의 찢어짐 없이 잡혔습니다. 153마리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알렉산터 퀴리오스 해석

100은 완전수이고 50은 이스라엘 수이고 3은 성삼위일체수입니다. 그러므로 완전을 의미하는 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어거스틴 해석

1+2+3+4+……17=153입니다. 10은 완전수이자 율법수입니다. 7도 완전수이자 은혜수입니다. 일주일은 7일입니다. 무지개 색깔도 7이고, 도레미 음도 7계음입니다. 그러므로 17은 율법수와 은혜수가 합쳐진 묘한 수입니다.

 

(3) 제롬 해석

갈릴리 호수에는 모두 153가지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고기의 대표들을 다 모은 수가 153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해석의 공통점은 완전입니다.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시고 은혜도 완전합니다.

 

첫 번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예수님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나섰는 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도망쳐 온 자기를 보고 아팠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의 주님을 보고 아팠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 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장담하면서 <다른 제자들은 다 떠나도 나는 예수님을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하며 말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역시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살아 나셔서 앞에 계시니 베드로는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미안하고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아팠을 가요?

그래서 감히 묻지 못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조반을 먹으면서 이렇게 아파하면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조반후

베드로는 예수님과 조반을 먹으면서 드디어 놀라운 사도가 되었습니다. 숯불 앞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놀라운 대화입니다. 베드로는 두 번째 사명을 받았습니다. 두번째 사명이 참 사명입니다. 요나도 첫 사명을 받고는 도망하였지만 고래뱃속에서 두 번째 사명을 받고는 니느웨로 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40세에 사명을 받았으니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80살에 가시떨기 앞에서 두 번째 사명을 받고는 참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 사명을 받고는 모두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재사명을 받고는 모두 승리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명이 참 사명입니다.

조반을 먹으며 베드로는 큰 사도가 되었습니다. 조그만 사건 하나가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식사 한 끼 하세요. 워렌 버핏과 식사 한 끼가 운명을 바꿉니다. 30억원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과는 무료로 같이 식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식구로 모실 수 있습니다. 초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오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초청하여 그 분에게 물으십시오. 그러면 말씀하여 주실 것입니다.

 

소원으로 말씀하여 주십니다.

생각으로 들려 주십니다.

환경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던 스텐리 죤스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전도하여도 사람들이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답답하여 탈진상태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왜 쓰러져 있느냐?"

"아무리 전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렸습니다.

"이 사과 나무를 보아라. 햇빛이 그렇게 뜨겁게 비추고 농부가 거름을 아무리 열심히 주어도 7년 되어야 사과를 맺지 않니?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라."

그는 이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 일하여 큰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초청하여 말씀으로 영적인 식사를 하십시오. 베드로는 조반을 먹으면서 대사도가 되었습니다.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독실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한 성도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늘 듣나요?”

그러믄요.”

어떻게 듣습니까?”

당신은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면 확실히 구별하십니까?”

그렇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대답입니다. 우리는 전화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금방 압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그렇게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영적 훈련을 하십시오.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합니다.

한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 온 때가 188545일 부활절이었습니다.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같이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언더우드가 한국 선교사로 오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언더우드가 신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언더우드는 일본 선교사 알트맨스 목사님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는 복음이 아직도 전혀 들어가지 않은 불모지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한국에 복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한국에 들어가라.”

그래서 선교부에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달라고 청원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선교부에서는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한국은 쇄국 정책을 쓰고 있고 외국인을 못 들어오게 하고 죽이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거절이유였습니다. 대단한 신중하였습니다. 언더우드는 수 차례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거절당하였습니다. 요청할 때마다 대답이 있었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라.”

언더우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실망하고 있는 중에 뉴욕에 있는 한 교회가 담임자로 청빙

하였습니다. 언더우드는 선교사로 계속 문을 두드릴 것이냐 아니면 개 교회 목회로 나갈 것이냐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그는 목회하기로 결심을 하고 청빙에 수락하는 편지를 써서 우체국으로 붙이러 갔습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려고 하는 데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한국은 어쩔 작정이냐? 한국은 버려져 있다.”

언더우드는 강력한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우체통에 넣으려던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가지 않고 선교부 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한국으로 선교사로 파송하여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저를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주십시오. 누군가가 한국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선교 사무실에 선교를 후원하러 온 성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만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선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초청하여 영적 양식을 늘 사모하십시오. 조반 먹으며 대 사도가 된 베드로를 기억하십시오. 운명이 바뀔 것입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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