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민15:37-41
주신 말씀 민15:37-41절은 쉐마제3부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달린 옷 술을보고 여호와의 계명을 생각나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따라 범죄 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계명만 지키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준다 합니다.
요즘 가슴이 탁 막혀 멍멍합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연인에게 국가기밀과 국가원수의 동정을 유출하고 헬스트레이너가 행정고시합격 후 20년이 되어야 올라갈 수 있는 3급행정관이 되며, 기업들을 옥죄어 800억에 가까운 자금으로 미륵(미르+k)에게 공납하고 ....국기가 문란해도 해도 해도 너무한 지경 때문입니다.
어느 신문 사설에 [부끄럽다]는 제목이 있었는데 내 가슴에는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는 국군통수권을 가지고 있기에 국가안보와 국리민복을 위해 이 정권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대통령을 포함해서 인간이기에 잘 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이미 터져버린 잘못을 변명이나 증거인멸로 국민을 기만하려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을 진솔하게 시인하고 거국중립내각으로 여야가 합력하여 이 정권이 잘 매조지할 수 있도록 여야가 협력해야 합니다.
공의 즉 하나님은 잘못에 대해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감찰하사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하나님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그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유일하신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영세교 즉 불교의 각성과 기독교의 성령강림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합하여 만든 최태민 칙사(무당)의 최면술과 심령술에 빠진 사교에 흘린 리더쉽 일지라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버지가 나라를 세우고 대통령은 가업이며 청와대는 우리 집이라는 독선적인 불통의 틀을 벗어버리고,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즉 페인트나 칠하고 벽지나 바르는 리모델링이 아니라 처음부터 틀을 확 바꾸는 거듭남이 필요한 때입니다.
독재자의 딸을 공주님하며 지지하던 보수주의자도 좌빨이라고 선거철마다 종북타령으로 결정타를 맞는 진보주의자들도 지금은 이성을 회복해야합니다.
모든 국민들도 비난하고 울분에 빠져 분노하지 말고 침착하게 이 난국을 타개하는데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사 공의를 베풀어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시고 사랑으로 문제를 선하게 해결하실 줄 믿습니다.
어떻게 공의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되실까요?
첫째로 하나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라. (37-38)
둘째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보라(39-40)
셋째 전체의 하나님 개개인의 하나님이심을 믿으라(41)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로 하나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라(37-38)
37절 말씀은 모세가 임으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절대적인 명령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따라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38절 말씀에서 [옷단 귀에 על־כנפייבגדיהם 알 카느페 비그데헴]는 ‘그들의 겉옷들의 가장자리위에’ 라는 뜻으로 비그데(בגךי)는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옷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네모서리가 있는 사각형천으로써 어깨에 걸쳐 입도록 된 외투를 가리킵니다.
술(ציצית)은 가장자리장식, 술 장식 이라고도 하며 겉옷의 가장자리에 두르는 꽃모양의 장식을 말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여덟 개의 실을 한데 묶어 이를 다시 다섯 개씩 묶어 만들었다 합니다.
이렇게 옷 끝부분에 장식된 술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도록 상기시키는 일종의 교육보조재료로 사용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매일의 삶속에서 자신이 항상 입고 있는 옷에 달린 술 장식을 볼 때마다 여호와의 계명을 생각나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에 따라 범죄 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계명만을 지키고 따르도록 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곧 잊어버리고 마는 망각하는 존재요 ,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단 귀에 술을 달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범죄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의 길을 가게 하시어 복 주시려는 의도에서 주신 규례라는 것입니다.
앞 단락 32-36절은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내용입니다.
고의적으로 안식일을 범한 사람이 자신의 죄의 대가로 사형에 처한다는 것 즉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에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 자신의 백성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청색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는 말은 술의 뭉치들을 단단히 묶어 떨어지지 않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청색끈의 염료는 지중해 바다에서 잡은 조개껍질에서 채취한 귀한 색상입니다. 최순실과 최고의 리더쉽이 오방낭 복주머니 어쩌구저쩌구 한 것도 무당들이 말하는 오방사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청색은 동방의 정색으로 목성에 속하고 청룡 적색은 남방의 정색으로 화성에 속하고 주작, 황색은 중앙의 정색으로 토성에 속하고 황웅, 백색은 서방의 정색으로 금성에 속하고 백호, 흑색은 북방의 정색으로 수성에 속하고현무, 위와 같이 청, 적, 황, 백, 흑색을 정색 또는 '오방정색'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청색염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안에 성막을 덮는 청색천을 염색하는데 사용한 귀한 염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 끝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써 그들의 고귀한 백성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청색끈을 달라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임을 늘 기억하면서 그에 합당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청색끈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끈으로 묶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 복장을 통해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일종의 신앙고백이며,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표시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범죄하여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면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하다 헌신하다 정수하다 라고 여러번 말씀드립니다.
세상과 구별된 깨끗하고 정갈하게 살며, 이웃과 하나님에게 헌신하며, 항상 미혹하는 부패와 탐욕의 욕구와 더러움을 걸러내는 거룩한 길을추구하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성도들이 하나님과 완전히 구별된 표지를 가지라 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천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우리도 신천지가 이단임을 알지만 조직 안에서 끈끈하게 맺어진 정과 사랑 때문에 빠져 나오지 못한다 합니다.
이단인 신천지도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하는데 성도들은 서로 미워합니다.
옷단에 술을 달고 청색끈으로 묶어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표를 확실히 하여 즉 성도가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와 자매를 온전히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될 것입니다.
요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표지는 오직 사랑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만이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해주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된 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면 화해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함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줄 만큼 서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둘째로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라(39-40)
39절에서 욕심을 좇지( זנים조님)말라는 말은 간통하다는 말에서 유래한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난 영적상태를 육체적인 간음이라는 범죄의 상태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겨 영적 간음을 행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눈의 욕심을 좇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음(לבב레바브)은 인간의 인격의 기능을 표현하고, 눈(עין 아인)은 인간의 내적 생각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마음과 눈이 자신의 인간적인 욕심인 정욕에 이끌려 좌지우지 된다면 그것은 감각적인 기관의 타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종국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겨 영원한 죽음이라는영적 파탄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40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옷단에 술을 다는 목표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엘로힘(אלחים)이라 하지 않고 너희의 하나님이란 뜻의(레로헤켐)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친근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해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물로 삼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가 거룩한 자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바뀌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루어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39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단에 술을 달게 하신 이유가 그들로 하여금 그 술을 보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방종케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좆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각을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나게 하는 옷단의 술에 집중시킴으로 그들로 하여금 헛된 것을 보고 허탄한 욕심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옷단에 술을 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그 생각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것 더러운 것을 보면 음란한 생각을 하게 되고 더러운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창가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이 쉽게 성적으로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위대한 왕 다윗이 옥상에서 이웃집 아내의 벗은 몸을 보고 음욕이 일어 간음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밧세바를 왕궁에 불러들여 간음하게 되고 그 남편을 간접 살인하는 죄를 짓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데 왕이라는 자가 한가하게 이웃집 여인네 속살이나 들여 다 보고 있었다니 결론은 뻔합니다.
이처럼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거룩한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만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토브( טוב)즉 천지를 창조하시고 좋아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음란하고 사악하고 폭력적인 것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음란하고 사악한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거룩한 생각을 하고 아름다운 것 거룩한 것 선한 것만 보고 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오직 우리 눈을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악하고 음란한 세상풍조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고정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순간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구별되고 헌신하고 정수된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될 줄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의 하나님이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라 (4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세 번을 중복해서 강조합니다.
키아즘에서 AA' BB'C는 C가 핵심이며 강조점입니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라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이라는 말입니다.
즉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어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너희 즉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옛 사람의 모습을 변화시켜 가야할 뿐 아니라,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끊임없이 내 삶에 개입하셔서 나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는 여호와만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나의 하나님을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찬양하기 원합니다.
여기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삶과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셔서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향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 하실 때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하나님임과 동시에 개개인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개개인이 가진 사소하고 작은 문제까지 개입하시어 머리 털끝 하나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빠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적 경륜을 일으키시는 큰일도 행하시지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도 그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살해하려는 이세벨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다가 피곤에 지쳐 쓰러져 낙심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그를 위로하시고 목마름과 굶주림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자상한 하나님이십니다.(왕상 19장 1절~9)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연장을 탄원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해 그림자를 10도나 뒤로 물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인 동시에 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시기에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살아가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어지러운 최순실게이트 사이에서 한 가지 뉴스가 눈에 띕니다.
성모교회에서 예수님을 사흘간 안치했던 예수님의 무덤을 수백 년 만에 다시 발굴한다고 합니다.(60시간동안) 최신 과학기술과 생명과학기술로 새로운 사실이 발굴되어 발표될지 이스라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주적 역사적 사실과 내 개인의 작은 문제까지도 하나님 편에선 다같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가 바로미터 잣대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순간 사소한 문제까지도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라(37-38)
둘째로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라(39-40)
셋째로 우리의 하나님이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라 (41)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항상 주님 면전에서 살아간다는 코람데오 신앙으로 주의하고 조심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행위로 구원 받을만한 자가 없음을 아시고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삶의 행위대로 상급을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이 민족을 하나님께서 이 위기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구원의길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서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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