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송년}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며 내 마지막을 본다./ 창 50;15-2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30. 07:28
{송년}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며 내 마지막을 본다./ 창 50;15-26.
                                                                                                                
어느 덧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송구영신 예배를 이번 주간에 드리고 나면 2017년을 맞게 됩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허전합니다.
저도 2016년도는 무엇인가 생애속에 이정표를 만들고 싶었었는 데 거냥 지낸 것같아 허전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금년도가 특별한 해였습니다.
수도사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확실히 알고 분명히 한 해였습니다. 금년도가 시작되는 1월 1일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관속에 들어가 잠으로 금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날밤을 마지막을 생각하며 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를 금년도 365일 살아가면서 알게 하셨습니다.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이태리 수도원에 가려고 예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고 교회에서 한 달 지냈습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책 1000권 정도 구하여 읽으며 하루 6시간 기도하며 45편 강의를 한 후에 “마지막 번개”를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마지막 때> 쎄미나를 열었습니다. 5기를 마치고, 내일부터 6기를 울산 엘림 기도원에서 하게 됩니다.
많은 목사님들, 성도들이 마지막 때 강의를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의 발자국 소리를 경각심을 가지고 듣게 하여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의 윤곽이 잡히면서 수도원 영성을 한국에 흘릴 수 있게 되는 계기가 금년도에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금년 마지막 주일을 맞아 마지막 때를 명상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개인의 마지막입니다.
 
누구나 마지막이 있습니다. 마지막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의 마지막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의 마지막 때와 야곱의 아들 요셉의 마지막 때가 등장합니다. 야곱의 식구 70명이 애급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에 불만을 품은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 버렸습니다. 애급으로 팔려간 요셉은 파란 만장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객지에서 종살이와 감옥살이 둘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꿈을 잘 해석하여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때 야급의 식구들이 들어가서 요셉의 보호를 받으면 살았습니다. 이사간다고 솟떼어 놓고 3년 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 간다는 것이 400년이 지났습니다. 야곱이 죽었습니다. 요셉도 죽을 때가 가까웠습니다. 마지막 때입니다.
 
누구나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2. 땅의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유황불로 멸망당하였습니다. 폼페이도 화산으로 묻혀 버렸습니다. 중국 스찬성도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일본 센다이도 원자로 폭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땅의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애급땅도 이제 마지막 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고 있던 애급 땅도 10가지 재앙으로 마지막 때를 앞두고 있습니다.
 
 
3. 역사의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종말이라고 말합니다. 말세라고도 합니다. 애급 생활 400년의 마지막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시점이 되었습니다. 반드시 역사의 종말은 찾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겁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그래도 그 동안 방패막이 되어 주셨는 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 가셨으니 자기들에게 복수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몰려 왔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때를 잘 정리하였습니다. 온 형제들이 가나안까지 가서 장례를 치루고 돌아 왔습니다. 형들은 무서워서 직접 요셉에게 말하지도 못 하고 요셉의 마음을 떠보느라고 누군지 모르지만 사람들 보내어 슬쩍 말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지금 아버지 마지막 때를 정리하고 자기 마지막 때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부터 생생하게 보입니다. 요셉을 보면서 우리는 마지막 정리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할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할 일중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고백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지난 날을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에 생긴 일, 사건속에 임재하셨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마지막 때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들이 나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팔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똑똑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자기를 국무총리로 만드셨다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안 계셔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하나님이 주관하신 사건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2014년도에 일어났던 가정의 일, 개인적인 사건, 교회의 모든 것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섭리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가져야 할 역사 해석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던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이었습니다. 본국 후원 교회가 어려워서 선교비가 한 달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한 달 동안 보리죽만 먹으면서 근근히 살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30일 정도 지났습니다. 몸의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본 교회에서 선교비가 제대로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안식년으로 귀국한 그는 힘들었던 그 때를 간증하였습니다. 간증을 듣고난 의사가 다가 와서 병에 대하여 이것 저것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에게 선교비가 제대로 왔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 할 것입니다. 그 병은 30일동안 보리죽을 먹는 처방을 내려야 하는 병입니다.”
선교사님은 의사의 이 말을 듣고 정확하게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습니다. 지날 때는 몰라도 지나놓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을 형들이 미워하게 하셨습니다. 팔게 하셨습니다. 애급에서 종살이하게 하셨습니다. 간음사건으로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꿈을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흉년이 들고 애굽 땅에는 풍년이 들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식구들 70명이 양식따라 오게 하셨습니다. 요셉을 통하여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가족이 들어와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야곱 가정이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것을 이끌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요셉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그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임재하셨는 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제일 먼저 할 것입니다.
 
2. 용서와 사랑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창 50;16-17)
 
 
요셉은 이 말을 전해듣고 울었습니다.
당당하게 자기들을 팔던 형들이 불쌍하고 비굴하여 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생각하고 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종살이하던 아픔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하여 감옥살이하던 아픔이 뼈를 찌르는 것같아서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구덩이 던져 혼자 밤새 울었던 추억으로 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형들이 몸부림치는 자기를 옷을 벗기고 팔아 버리던 장면이 주마등같이 스치면서 억울함에 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말씀을 보면 요셉이 왜 울었었는 지 짐작이 갑니다. 그 동안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고마워서 감사의 눈물이었을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마지막 때에 할 것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생애를 보면 사랑과 용서의 DNA가 계속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형들이 자기 꿈을 무시하였을 때에 한번도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아내가 자기를 모함하여 감옥에 넣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에도 한번도 복수의 감정을 들어낸 적이 없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팔았다가 만났어도 원한의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요셉은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형들을 도리어 위로하고 자녀들을 길러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위로하였더라.” 그리고 “죽었더라”
 
이 두 말이 붙어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앞둔 요셉은 먼저 사랑과 용서였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나면 모두 용서할 수 있습니다. 모두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마지막 때, 땅의 마지막 때, 시대의 마지막 때를 보면서 요셉은 사랑과 용서로 막을 내렸습니다.
 
금년이 지나갑니다.
금년의 마지막 때입니다. 모두 용서하고, 모두 사랑하고, 모두 포용하고 마지막을 맞아야 합니다.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광주 남부 경찰서 구내 식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남자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아 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양 당사자 그리고 양가 어머니가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장면을 조선일보 기자가 보도하였습니다.
서로 원수같은 사이인데 퍽 온화한 분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여고생의 어머니는 오직 예수로 가득차 있는 이였습니다. 종은 어디를 쳐도 종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어머니는 예수님으로 가득차 있는 이였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신앙적으로 해결하기로 기도중에 마음먹었습니다. 몇 가지 조건을 성폭행한 아이와 어머니에게 제시하였습니다.
 
“보상은 반드시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하지 말고 사회에 보상하십시오. 형편에 맞는 액수를 결손아동 돕기 기금으로 기탁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아들을 교도소에 가지 않게 합의서를 써드릴 터이니 다음과 같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담당 형사에게 제출하여 주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잭 캔 필드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어린 시절 순간적으로 일으킨 성충동으로 자녀의 앞날을 망쳐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만 하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합니다.”
사고를 내 아들의 어머니가 기자 앞에서 말했습니다.
“아들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죄를 저질렀는 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배려하여 주신 데 뭐라고 감사하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습을 본 조선일보 기자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딸에게 상처를 준 남의 아들까지 감싸 안고 어떻게든 올바른 길로 인도해 보려고 하는 김씨의 노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지막에 할 일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용서 이야기 하나 더 드리고 싶습니다.
 
국제 정신 분석가 이 무석 교수가 말해주는 용서 이야기입니다.
신학 박사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극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날마다 술에 취하여 살았습니다. 항상 식구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난동을 피워서 하루도 가정이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술 심부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주지 않고 술을 사오라고 호령을 내렸습니다. 가난하여 돈이 없었습니다. 술을 사오지 않으면 그 날은 폭행에 난동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술을 사오라고 하면 빈 술병을 들고 주막으로 갔습니다. 돈이 없어서 문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인이 불쌍하다고 하면서 술병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공짜로 반 병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술병을 받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놈아! 왜 반밖에 없나? 네가 반을 마셨지?”
그리고 마구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프게 맞았습니다. 억울하였습니다. 눈물이 핑그르 돌았습니다. 그 후 아버지를 원망하며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모든 식구가 아버지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버지를 찾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인 아내가 연탄재를 방안으로 가지고 와서 물감과 섞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버려진 연탄재가 좋은 재료가 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쓸모없는 연탄재같은 분이시다. 그러나 내가 오늘 여기에 있기까지는 아버지가 꼭 필요하였다. 아버지가 있기에 내가 있다.”
그는 곧 아버지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홀로 살고 있던 아버지와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용서는 새 출발입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어내는 도끼에 향을 묻혀 줍니다. 향나무를 찍은 도끼에서는 향냄새가 피어납니다. 자
기를 괴롭힌 사람을 용서하며 향기를 묻힐 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됩니다.
요셉은 마지막 시간에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결론은 가나안.
그리고 결론은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일거수 일투족, 때마다 발걸음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고백한 요셉은 형제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창 50:24-25)
 
지금 야곱의 식구들은 애굽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가나안 땅임을 바라보고 요셉은 죽었습니다. 마지막이 어느 곳인지 요셉은 분명히 알고 살았습니다. 지금 자기는 애굽 땅에서 국무총리로 누리며 살고 있지만 이 땅이 영원한 땅이 아님을 알고 지냈습니다. 자기가 묻힐 곳은 가나안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장소를 분명히 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도착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보좌가 있는 하늘 나라가 우리가 마지막 종착역입니다.
 
모세도 마지막 땅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바울도 마지막 땅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우리는 성경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이 식구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갈 때 고센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 땅에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보러 고센 땅으로 달려 갔습니다. 이산가족과의 감격적인 만남이 고센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품에 안고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창 46;30)
 
그리고 요셉은 바로왕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왔음을 바로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창 46:32)
 
 
애굽 사람들은 목축하는 사람을 가증히 여겼습니다. 싫어하였습니다. 동물들과만 사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착하지 못 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사는 안정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고센 땅에서 살았습니다. 고센땅은 애급으로 가지 제일 좋은 땅입니다. 가나안과 제일 가까운 땅입니다. 만일 야곱의 식구들이 고센 땅에서 살지 않고 피라밋이 있는 바로궁전 근처에서 살았더라면 출애급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역사에 사라진 민족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로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습니다. 120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떠날 때 병거 600승을 몰고 도로 잡으러 따라갔습니다. 홍해 앞이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은 건넜습니다. 그러나 바로 군대는 모두 홍해에 수장되었습니다. 만일 바로 궁 근처에서 살았으면 도저히 도망가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야곱도 애굽에 오자 말자 마지막 때에는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바라보며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드워드 분커(Edward Bunker)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미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미스터 블루-변절자의 추억(Mr.Blue: Memorys of a Renegade)’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하였습니다.
분커는 로스앤젤레스에 살았습니다. 5세 때 부모가 이혼을 하여 8세 때부터 아동 보호소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소년원 수감, 탈옥, 정신병원 수용 등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범죄 조직에 가담하고 마약거래와 무장강도 혐의로 검거되었습니다. 최연소 수형자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 그 곳에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초조감 속에서도 글을 쓰는 사형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분커는 그 사형수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아야지.”
그는서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고전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년간 교도소에 있으면서 장편소설 6편과 단편소설 50편을 쓸 수 있었습니다. 41세가 되어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도 미친 듯이 글만 썼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자신이 다시 타락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밤낮 없이 글만 썼습니다. 비로소 그의 글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교섭이 들어오고, 그가 각본을 쓴 영화가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한 시간도, 한 순간도 이제는 헛되게 보내지 않을 꺼야!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것이다.”
감옥에서도 출옥하는 마지막 때를 바라보며 할 일을 꾸준히 한 결과는 축복이었습니다.
 
 
요셉도 마지막 때에 가나안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 50:24-26)
요셉은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을 축복하였습니다. 마지막에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땅 가나안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맹세시켰습니다.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확실하게 맹세를 시켰는 지 400년이 지난 날에 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죽고 약 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야기가 출애급기에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출 13:18-19)
 
단단히 맹세하였다고 모세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400년 유언이 흘렀습니다. 모세가 400년 전에 요셉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유골을 메고 가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확실하게 마지막 땅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영적으로 천국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주일을 맞아 요셉처럼 지난 날을 모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았음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보며 영원한 마지막 때를 바라보는 긴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오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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