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박 대통령 측과 국회 측에 23일까지 최종의견서 제출을 주문함에 따라 탄핵심판 결정은 3월 초에 내려질 가능성이 유력해지고 있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탄핵 찬반 양 진영의 대결은 격화되는 양상이다. 정치인들까지 광장에 뛰어드니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누구나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의사 표현은 헌재 결정이 나오면 따르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헌재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결정을 앞둔 지금은 문 전 대표가 국회의 탄핵소추 전에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과 상황이 달라졌다. 지지율 1위 대선 주자의 촛불집회 참석은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비칠 수 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할 자세도 돼 있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의 법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문 전 대표는 당장 승복 의사를 밝혀야 한다. 시민들도 촛불집회에 참석해 탄핵 촉구를 외치든,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반대를 외치든 헌재 결정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돼 있어야 할 것이다.
위기다. 국론 분열을 넘어서 국민 충돌의 전운마저 감돈다. 헌재에 이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렸다.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헌재는 첨예한 갈등의 순간마다 국민 통합을 이끌어냄으로써 길지 않은 역사에서 신뢰를 쌓았다. 박한철 소장의 퇴임 이후 헌재는 8인 재판관 체제라는 비정상적 상황에 있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7인 체제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지연작전을 펴고 있으나 헌재는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전까지 가능한 한 8인 체제에서라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친절하게 듣고, 빠진 것 없이 대답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재판관의 덕목으로 꼽았다. 모순된 요구 같지만 헌재는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헌재는 2004년 국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탄핵소추했을 때 “탄핵 결정을 할 것인지는 단지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 여부가 아니라 그 위반 사항이 중대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더 이상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는지에 달려 있다”고 천명했다. 대통령 탄핵 결정의 유일한 판례다. 헌재가 이번에도 국론 분열을 최소화할 길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