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한 아들의 어머니·여섯살 혁규와 아빠…
3년전 세월호를 탔으나 아직 찾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들. 그림 박재동 화백
세월호가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3월 23일, 배를 탔으나 아직 내리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은 1073일째 애끊는 기다림을 시작했습니다. 깊은 바닷속 보이지 않지만 거기엔 사람이 있습니다. 단원고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학생, 단원고 고창석·양승진 선생님, 여섯살 혁규와 아빠 권재근씨, 이영숙씨…. 가족의 품으로 모두 돌아갈 때까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9명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드립니다.
자료: 4·16 연대
“지금쯤 그대는 좋은 꿈 꾸고 있겠죠. 나는 잠도 없이 그대 생각만 하죠. 그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지만 항상 마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많이 힘든 그대. 힘이 든 그댈 안아주고 싶어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중)
자료: 4·16 연대
자료: 4·16 연대
“옷 입고 들어와 갖고 문 열더니 엄마 나 안 보고 싶었냐고. 그래서 제가 은화를 끌어안고 한참 울었습니다. 엄마가 너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고. 엄마가 너 정말 사랑한다고. 둘이 끌어안고 한참 울다 가더라고요.” (엄마 이금희씨 ‘한수진의 SBS 전망대’ 인터뷰. 2015년 4월16일)
▶관련기사: [경향신문] 미수습자 은화 가족 “아직도 세월호에 사람 있다”
▶관련기사: [한겨레] “2년의 기다림, 머리카락 한 올까지 그대로 돌아오렴”
자료: 4·16 연대
자료: 4·16 연대
“나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면 견디고 견딜 테니 제발 가족 품으로 돌아와줘. 기다리는 것밖에 못해 미안해. 다시 만나면 절대 헤어지지 말자…” (고 교사 아내의 편지 <문화일보> 2014년 6월13일)
자료: 4·16 연대
자료: 4·16 연대
“여태껏 안 나오는 것 보면 어머니는 저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안 나오는 것 같거든요. 좋은 모습만, 기억만 아들에게 남겨주기 위해서 그런 거 같아요. 이제 겨울이 오고 어느 순간이 되면 수색도 끝날 테지만 끝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일 힘든 사람은 어머니 당신이니까요.” (이영숙씨 아들, <미디어오늘> 2014년 9월3일)
자료: 4·16 연대
남현철 학생 아버지가 2014년 참사 뒤 팽목항에 가져다 둔 기타.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사진기록단 제공
2014년 5월 박영인 학생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주지 못한 축구화를 마련해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썼다. 광화문TV 갈무리
“배 안에서 우리 도와줘서 고마워. 보고싶다…” 조은화 학생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친구의 편지. 2015년 10월 세월호 자원봉사자 임영호씨 페이스북 갈무리
세월호 참사 직전 찍은 가족사진 속 허다윤 학생.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2014년 4월16일 찾기로 돼 있었다. 광화문티브이 화면 갈무리
2015년 2월 양승진 선생님 아내 유백형씨가 2015년 2월14일 세월호 침몰 지점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선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2016년10월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존치교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됐으나, 교실엔 아직 떠나지 못한 유품들이 남아 있었다. 미수습된 고창석(단원고 교사), 양승진(단원고 교사), 남현철(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2학년 6반), 조은화(2학년 1반), 허다윤(2학년 2반)의 책상과 걸상. 안산/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4년 9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단식농성장에 9명의 실종자 가운데 가장 어린 권혁규 어린이를 기억해 달라는 펼침막이 세워져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