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평창겨울올림픽

[스크랩] 당신이라면 좋겠습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6. 8. 05:27


당신이라면 좋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도착했지만 바로 근처에 있는 월내역으로 갔습니다.
마침 열차가 미끄러지듯 정차하고 있었습니다.
타고 내리는 이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역무원 아저씨가 묻습니다.
"
누구 마중나오셨나 봐요?"
"
아닙니다. 그냥 지나는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난날의 내 추억을 마중나온것 같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역을 나와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철로 위 육교에 올라가봅니다.
여전히 파란 육교의 계단 조금, 언제나 보아도 아련하게 느껴지는 철조망,
그리고 철길위에 드리워진 제 그림자도 함께 담습니다.
제가 사실 월내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육교 때문입니다.
여기에 올라가면 하늘도 보이고 바다도 보이고 철길도 보입니다.
가끔 지나가는 기차도 보이고 마을 이곳저곳 골목도 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 육교위에 다 있답니다.



바다쪽 마을로 걸음을 옮겨 봅니다.
이곳의 골목은 꼭 미로같습니다.
저같이 길눈이 좀 어두운 사람은 딱 헤매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상관없답니다.
이렇게 빛을 따라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눈 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지니까요.



푸른 바다를 따라 방파제까지 나가봅니다.
빨간 등대와 닮은 빨간 티셔츠를 입은 꼬마를 만났습니다.
미끼를 바늘에 끼우며 혼자서 척척 해내는걸 보니
퍽 대견합니다.
저는 언제나 혼자서도 잘 해낼수 있을까요.
지난날에 사로잡혀 혼자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저를 보니
퍽 한심합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예전엔 낚시라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은 조금 관심이 생깁니다.
오랜 기다림과 그 기다림 끝에 맛보는 기분이 어쩌면 사진과 닮아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낚시로 낚은 물고기는 요리를 해 먹든 다시 놓아주든 이내 사라지는 반면,
사진으로 남긴 추억은 버리고 지우려해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겠지만...



이제 날이 점점 저물어 가는것 같습니다.
빛은 약간 더 은은해지고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지는 시간입니다.
돌아가기 전에 육교에 한번더 올라갔다 오기 위해
다시 철길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올라가기 전에 육교를 한번 담아봅니다.
지는 해를 뒤로한 실루엣이 그다지 이쁘지는 않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페인트가 벗겨진곳도 많고 철조망은 삐뚤빼뚤 합니다.
하지만 이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늘 저렇게 서 있는 저 육교가 저는 참 좋습니다.
지난 추억들이 모두 이쁘지는 않지만

내 안 어느 한곳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는것처럼...



육교위로 올라가 저 멀리 바닷가와 마을을 바라봅니다.
조용하고 평온합니다.
이 육교위에 올라 함께 바라보았던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오늘은 혼자입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겠지요.



멀리서 기차가 지나갈 때 울리는 신호기의 소리가 들립니다.
기차가 빠르게 다가와 속도를 멈추지 않고 육교 아래를 통과합니다.
저 기차는 이 월내역에서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눈길 한번 주지않고 추억하나 남기지 못한채.
어쩌면 저는 행복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의 많은 추억이 있으니까요.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왔습니다.
'
월내'... 이름이 참 이쁘지요?
'
달의 안' 이라니...
내 추억이 가득한 이름마저 이쁜 그곳에서 돌아가려 하니 왠지 섭섭해집니다.
하지만 오늘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고 다음엔 또 어떤 추억이 생길지 생각하니 문득 설레기도 합니다.


내 지난날의 추억이 가득하고 앞으로도 또 다른 추억이 쌓일 그곳,
다음에 또 누군가와 함께 다시 오게 된다면 바로

당신이라면 좋겠습니다.

  

- ‘낡은 일기장중에서 -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