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 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도신조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심을 자세히 정리 해주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부분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죽으심]이 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환상적으로 잠시 나타나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인생의 죄를 담당 하시고 십자가로 돌아가신 역사상의 인물이었습니다. 못 박혀 피를 쏟으시고 물까지 쏟으신 육체를 지니셨던 분입니 다(마27:50). 요19:34‘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1.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심 빌라도는 유다 사마리아 에돔을 다스린 로마의 다섯째 총독(주 후26-36)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사형 받을 죄인이 있으 면 총독에게 구형받도록 청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요19: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 냐’(요18:31)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죽으셨다는 말은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 님을 직접 죽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의 문장에서는(파돈타 에피 폰티우 필라투, 스타우로덴 타) παθοντα επι Ποντιου Πιλατου, σταυρωθεντα 로 되어 있는데, 본디오 빌라도에게, 라는 말의 ‘에게’는 에피(επι)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빌라도 앞에서, 빌라도의 권세의 근거로, 이런 뜻입니다. 빌라도는 고소당한 예수님을 쳐다볼 때 죄가 도무지 없어 보이 고 메시아라 한다하니 더욱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죄가 없어보 이면 양심대로 판단해줄 일인데 백성들의 원성을 들을까봐 결 국 예수를 죽도록 내어주고 말았습니다(마27:24,요19:16). 그의 아내가 말리기도 했습니다(마27:19). 그러나 그는 하나님 이 주신 직위를 잘못 수행했습니다(롬13:). 그것이 빌라도의 무 서운 실수였습니다. 출23: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 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지금도 여전히 교회사회는 각종 판단해야 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물론 조직체의 임원진 구성에 총회장 선거에 특히 불법성이 부 각되어 해마다 각 교단총회는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참으로 개 탄할 일입니다. 불신자들이 신경 쓸 일들인데 말입니다. 돈 정치라는 말도 안 되 는 일이 교회 내부에 일어납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형벌 받아 마땅합니다. 2. 십자가로 돌아가심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으로 돌아가심을 일반 사회적인 사건으로 본다면 흔히 일컫는 여론몰이로 죽으신 것입니다. 심판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완전한 불법 판단이었습니다. 1) 타락한 영혼의 눈으로 메시아를 구별 못해 고소함 혹시 귀를 열고 겸손하게 들었던 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 닫고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종교가 외식되 어 악한 정신이어서 하나님의말씀을 바로 전하면 세례요한이든 누구든 다 죽이려 드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 이 이단으로 보였습니다. 가령, 예수께서 속죄 주로 오셨고 죄를 사하실 권세를 지니신 분 인데 그들에게는 오해가 되니까, 막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바울을 핍박하던 자들의 말에,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24:14 ‘..이단이라 하는 도..’) 2) 정교유착으로 죽임을 당하시게 함 로마 치하에 살던 그들은 특히나 종교가 타락하면 정치와 연결 되어 특수 계층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살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회적 악에 대한 지적으로 인해 로마의 정치적 탄압이 심화될 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요19: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 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 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본래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하니까 세속 의 왕을 요구했던 것이고 그래서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삼상12: 12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 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3)정상적인 판결이 못됨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형 집행은 판결이 옳지 못하고 불법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행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 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 려 못 박아 죽였으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가 완전한 판단이란 것이 잘 없습니다. 현 한국정치도 불분명한 사법적 판단들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고사가 아닌 예정된 대속의 희생 예수님의 죽으심을 소위 일반 사회 상식으로 사고사(事故死)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유대사에 그런 판례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 있는 상황으로 이해해야 합니 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언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1)구약 예언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사53:4-6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 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 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 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 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심판자시고 사람의 죄에 대한 대가로 구약시대는 사람 대신 짐승의 희생으로 피를 흘려야 했었습니다. 그것이 형식화 되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셔서 짐승의 피 대신 영원한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2) 죄에 대한 희생제사는 구약과 신약 필수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 할 때 교육을 통해 적합한 사람 을 만드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에 대한 희생 제물이 필요 했고 이에 독생자를 희생키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면서 예수님 을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은 철학이나 도덕 수준이 아니고 오히려 종교적입니다. 예수께서는 속죄 제물로 세상에 오셨고 대속의 죽으심을 받으셨 는데, 어느 동네 나셨어도 그렇게 억울하게 보이는 죽음을 당하 셨을 것입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 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 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요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롬3:25,요1서 2:2)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로 돌아가셨으니 이 제 우리가 바라보고 알아야 할 사항은 우리 죄를 스스로 해결하 려 말고 주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고 속죄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속죄 법입니다. 더 이상 천주교처럼 마리아가 중재 역할을 한다거나 어떤 새로운 율법적인 행위 규칙은 구원 얻는데 아무 효험이 없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속량을 받아야 합니다. ----------------------------------------------------------------- 출처:사이버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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