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지난주 열린 대구사회혁신포럼에 시민 토론자로 참여했다. 대구시와 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가 마련한 토론의 장에서 시민 200여명이 관심 있는 의제를 선택해 제안자의 발제를 듣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금속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건강 문제, 노숙인 자립, 베이비붐세대 일자리, 걷기 힘든 도시 등 일상 속 문제들이 테이블에 올랐다.
그 가운데 ‘대구를 떠나는 청년들’ 테이블에 먼저 앉았다. 이 의제를 내놓은 청년 참가자의 발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대구의 인구는 21년째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2015년 통계상 떠나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20대와 30대로 나타난다. 해마다 대구를 떠나는 청년이 약 8000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서울·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으로 간다. 서울로 떠난 청년들의 경우 10명 가운데 9명은 ‘일자리가 없어서 떠난다’고 했는데, 대구·경북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12%로 사상 최고치를 나타낸 것만 봐도 그 이유를 짐작하고 남는다는 것이다. 지역 국립대를 졸업한 한 20대 청년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생활하고 결혼까지 생각하면 월 급여가 200만원은 돼야 하는데 여기선 그런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 다들 수도권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작년 대구에서 투자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차린 28살 청년은 지난 6월 서울로 회사를 옮겼다고 한다. 지역에서 기반을 다져나가고 싶었지만, 투자자문 서비스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정당한 보수를 받기 어려웠고, 정보교환과 교육받을 기회도 제한적이라 성장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공유사무실을 쓸 수 있어 오히려 임대료 부담이 줄었고, 매출도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청년은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서울 지사를 두고 본사는 다시 대구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나고 자란 곳이니까 이곳에서 일하고 살고 싶은 거죠. 여기서 능력을 발휘해서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다음 주제로 수도권에 집중된 사회구조로 발생하는 지역문제를 다루는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실질적 자치 없는 허울뿐인 지방자치에 지역발전이 발목 잡혀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시민들은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지역 균형발전의 틀을 다시 짜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떠나는 지역 청년들의 짠한 이야기와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바람을 주고받은 바로 그날 난데없이 ‘광역서울도’가 등장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도를 포기하겠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써가며 서울과 경기, 인천을 하나로 묶어 초강대도시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규제를 철폐하고, 초강대도시로 국가경쟁력을 키우며 지방자치도 함께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진부한 ‘아랫목론’이다.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집중적으로 아랫목을 데웠지만 수십년이 지나도 윗목에선 여전히 발이 시리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따듯한 아랫목으로 꾸역꾸역 다가갈 수밖에 없고, 차가운 윗목을 지키는 이들은 전해지지 않을 온기를 포기할 수 없어 기다리는 처지다.
‘떠나는 청년들’은 그날 14개 의제에 대한 시민 공감도를 측정하는 투표에서 가장 공감하는 이슈로 뽑혔다. 그만큼 청년들이 떠나는 지역에 사는 시민들의 박탈감은 컸다. 지방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앞세워 청년들을 붙잡아보려고 하지만, 수도권 집중의 거대한 흐름을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슴으로 공감하지 않더라도 정치인이 이런 지역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무리한 노이즈마케팅을 하는 배경에는 수도권 중심의 성장을 꾀하는 세력을 표로 계산한 정치적 셈법이 깔린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청년들이 나고 자란 곳에서 살면서 일하고 다음 세대를 키우는 건 순리다. 청년들이 순리대로 살아도 ‘이번 생은 망했다’고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일상을 꾸려갈 수 있었으면 한다. 지역 균형발전의 목표는 또렷하다. 떠난 청년이 돌아오는, 청년이 살고 싶은 지역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