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예수님의 기도생활 (마가복음 1: 35-39) / 이동원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22. 05:42

이동원목사_베스트설교100편모음문서-예수님의 기도생활 (마가복음 1: 35-39)| 설교문서

jman | 조회 83 |추천 0 | 2016.11.18. 14:14

 

이동원목사

                                       예수님의 기도생활

 

마가복음 1: 35-39

35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영국의 런던에 가면 웨스트민스터에 관광객들이 가는 곳 말고 그 앞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이라는 교회가 또 하나 있습니다. 유명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캠 벨 몰겐 박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일생을 살아가는, 날 마다를 살아가는 커다란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매일 오후 저녁 무렵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 공원을 산책 하는 것이 삶의 커다란 즐거움 중에 하나이셨다고 합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날 갑자기 딸이 아버지하고 공원 산책을 며칠간 못하겠다고 얘길합니다. 묻지를 말라고 합니다. 얼마나 이 아버지가 서운했겠어요. 그 이유를 몰겐박사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아버지에게 드릴 성탄 선물로 아버지가 신으실 슬리퍼를 만드느라고 시간이 필요 했던 것입니다.


성탄절 날 아침 이 선물을 받으면서 몰겐 박사는 사랑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무 고맙다. 참 고맙다. 이걸 만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그런데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아비는 슬리퍼 선물보다도 네가 나와 더불어 같이 손잡고 산책하는 것이 이 아빠는 훨씬 더 좋단다.


저는 하나님도 같은 마음을 가지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뭘 일한다   고 용을 써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좀 같이 있지 않을래? 저는 주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A.W. 토우져 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예컨대 성가대 열심히 하는 것 아주 좋은 일이에요.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나 그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우린 매우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토우져 박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만간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을 가능성이 많다. 만약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한다면 그 교제에서 얻어지는 충만함 그 안식 그 마음 속의 평안 이것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 다. 곧 우리는 그 일의 의욕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는 말입니 다.


 저는 예수님이 짤막한 생애를 사시면서 그분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미션을 구원의 사역을 성취할 수가 있었던 비결이 어디 있을까? 저는 그분의 기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예수께서도 기도 생활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 어떠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의 기도 생활 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과의 교제의 모범을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과의 교제의 모범,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을까요?

우선 첫째로, 그분이 가지셨던 교제의 열망을 살펴보십시오 교제의 열망 ,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얼마나 그분이 열망하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자 어저께는 예수님에게서는 안식일이었습 니다. 그날은 매우 바쁜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안식일 그 하루를 스케치해 보십시오. 마가복음 1장을 펼치시고 1장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자 안식일날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설교 도중에 사건이 일어납니다 무슨 사건? 예배를 방해하는 귀신들린 사람의 부르짖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주목하 시며 그에게 들어갔던 귀신을 축출하시는 축사 사역을 행하셨습 니다


자 귀신과 대결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일 한번 해보면 에너지가 빠지는 일이에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끝납니다. 회당 예배가 끝납니다. 예수님께는 안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셨습니까? 안드레의 집으로 가십니다. 베드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마가복음 1장 29절을 읽어보십시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 의 집, 안드레의 집이 형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안식을 위해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또다시 사건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분은 안식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이 열병에 붙잡혀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이 그를 위해서 기도합니 다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십니 다.


또다시 예수님은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시면서 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고치셨습니다. 자 이것이 예수님의 그날의 사역에 마지막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사역은 계속됩니다. 해질 무렵 안식일 해가 지는 석양녘이었습니다.


다시 마가복음 1장 3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예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치셨다 이 소식이 퍼지는 것이에요. 아 그래? 그 분이 지금 시몬의 집에 계시다. 이 소식이 퍼지자 병자들이 앞을 다투어 시몬의 집에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자 병자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가? 마가 복음의 기자 마가는 약간의 위트 어린 과장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 있는 이 표현을 주목해보십시오.


 33절을 보시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그랬어요? 33절에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다. 문자 그대로 그 마을 안에 있었던 온갖 병자들 내과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별별 환자들이 총 출동해서 시몬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 왔습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3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자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식일 밤은 저물어 갑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얼마나 바쁜 하루였어요? 예수님에게서 얼마나 피곤한 하루였습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얼마나 피곤한 하루였습니까 그렇게 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의 그날의 스케줄 같은 그런 바쁜 하루를 보냈다고 가정을 하십 시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내가 맞이하는 아침 그날은 특별한 약속이 없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같으면 저 같으면 어떻게 그 아침을 맞이할까요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 아침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어떻게요? 자자 그런데 그냥 자자가 아니겠지요.


 늘어지게 자자.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신 그 이튿날 아침에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은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본문의 시작이에요. 35절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이토록 바쁜 하루를 지내고 나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님은 일어나 기도하시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에 있어서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기도를 의무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특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 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안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기도하시면서 쉬시고, 기도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기도하면서 지나간 하루의 스트레스를 극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도 인간성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스트레스를 우리처럼 경험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가 뭡니까? 요즘 우리가 스트레스 현대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병이 이 스트레스입니다. 누군가가 스트레스를 정의하기를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극에 의해서 내 몸과 마음의 균형 이 깨진 상태다. 아주 잘 정의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내 몸이 내 마음을 따르지 못해요 그래서 나는 허우적거립니다. 그것이 스트레스예요 그래서 예 수님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기도가 스트레스의 처방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기도하시면서 쉬신 것입니다. 자 여러분 아무리 피곤해도 즐거운 일하면 그 피곤이 극복이 됩니다. 예수님 에게 있어서 기도는 즐거운 일이였습니다.


어떤 분에게 있어서 예배는 아주 즐거운 일일 수 있습니다. 예배 드리고 나면 새 힘이 나요? 안 나요? 예배에 오면 쉼이 있죠. 그래서 어떤 분은 벌써 깊은 잠에 들어가셨습니 다. 예배는 안식일 수가 있습니 다. 기도도 안식일 수가 있습니 다. 자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은 새 힘을 얻은 거예요. 새 힘을 얻으신 거예요 자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지나간 날 바쁘게 보냈어요.


 바쁘게 보낸 그 피곤한 하루 잠자리 들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내일 아침 일어나 아버지하고 교제해야지. 저는 이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유명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그의 일지 가운데 남긴 말인데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요즘 내가 바빠진다. 더 기도해야겠다. 우리가 하는 소리와 비슷하죠? 비슷합니까?


요즘 내가 너무 바빠진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 우리의 보통 이런 보편적인 고백과 이 루터의 고백은 얼마나 달라요. 요즘 내가 너무 바빠진다. 따라서 더 기도해야겠다. 다시 말하면 루터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 바쁨과 바쁨이 가져다주는 피곤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와 비전과 힘을 얻는 자리였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루터는 매일 한 시간 쯤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루터는 정말 바빠졌을 때는 두 시간 기도했습니다. 보통 때 한 시간 기도하다가 정말 바쁜 일이 오게되면 그는 더 엎드렸습니다. 두 시간 기도했습니다. 루터는 그의 생에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고자 애를 썼습니다. 두 시간도 넘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그는 기도에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도가 안식이기 때문에 기도가 능력이기 때문에, 기도가 즐거운 것이기 때문에 그는 기도를 사모했습니다. 주님도 기도를 사모했습니다. 아버지와 그의 만남 그것은 내가 육신적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어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더 즐거운 사모함이었습니다. 시편 기자의 이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께서 하셨던 기도의 열망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마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열망이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 여러분과 저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열망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요함 돈을 얻는 것, 돈이 열망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기가 열망입니다. 내 생애서 가장 커다란 열망 , 소원. 인기를 얻는 것 출세하는 것 어떤 사람은 섹스가 섹스의 쾌락이 인생의 가장 집요한 열망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열망은 무엇입니까?


주 님의 열망 주님을 지배하고 있었던 가장 커다란 열망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였습니다. 하나님 만나고 싶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깊은 임재 속에 들어가고 싶다. 나는 깊은 기도를 경험하고 싶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랍고 아름다운 그 임재 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다.


 이 기도의 열망, 얼마큼 저와 여러 분은 기도의 열망을 갖고 있을까요? 오 우리 주님이 가지셨던 기도의 열망 동일한 열망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교제를 위한 주님의 계획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교제의 계획 기도를 계획하셨단 말입니다. 저는 틀림없이 그 피곤한 안식일을 지내고 그 이튿날 아침 일어나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아마 침상에 들어가기 전에 주님이 그 이튿날 아침을 계획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해야지.


그렇습니다. 자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은 기도의 교제를 위해서 주님에게 가장 적합한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의도적인 계획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 언제 기도하셨습니까? 새벽 미명에. 어디에서? 한적한 곳에서.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 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만물이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며 아직도 잠들어 있는 여명의 시각, 장사꾼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는 시각, 술주정뱅이 들의 아우성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치기 어린 놀이 소리도 없는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잠들고 있는 새벽의 미명 이것은 얼마나 기도하기에 좋은 시간이었을까요. 그리고 한적한 곳 그 누구의 방해를 받을 필요가 없는 골방처럼 아늑한 산자락, 산등성 어느 곳에 주께서는 눈여겨 두었던 그 장소를 선택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셨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런 일정한 시간 최적의 시간 자기에게 필요한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갖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 기도의 학습인지요. 또 우리가 본문을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확대 적용해서 예수님은 일생 동안 새벽기도했다. 그러니까 마땅히 해야 한다 글쎄요. 매일 새벽 기도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날 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새벽기도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것입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유익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은 새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감을 얻고 놀라운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벽기도 일을 율법화 시키지는 마십시오 율법화 시킨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 새벽을 통해서 내가 유익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벽기도 안하는 사람을 정죄하지는 마세요.


 어떤 사람은 새벽 기도에 와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면 누가 새벽기도에 안왔나 그 검사하고 다니는 것이 관심인 사람이 있어요. 그것은 새벽 기도를 율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유익이 없어요. 그런 새벽기도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새벽을 활용하십시오 새벽 기도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는 왜 새벽기도회를 강조 안하나?


 우리도 필요할 때 새벽기도회 합니다. 열심히 합니다. 또 하루에 10 시간 이상씩 계속되는 중보기도 사역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또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은 새벽이라는 시간이 아니여도 QUIET TIME에 대한 학습을 통해서 매일 규칙적으로 매일 하 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Q,T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더불어 아름답게 교제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 다.


어떤 경우에는 또 이 새벽기도회 파하고 큐티 파하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어요. 큐티는 좋은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큐티도 율법화 시키지는 마세요. 또 어떤 성도들은 큐티를 율법화 시켜서 큐티 안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돌아다녀요. 그러지 마십시오. 기도는 중요한 것 입니다. 본질은 기도예요. 어떻게 기도하느냐 방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새벽기도회식으로 하 느냐,


큐티식으로 하느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저는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이 더 열심히 새벽기도회 하시기를 바랍니 다. 최근 새벽에 나와보셨습니 까? 새벽에 최근 나와 기도해 보셨습니까 이 동산에서 맞는 새벽, 환상적이에요. 한번 새벽에 나와보세요.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 시간도 좋습니다만 새벽에 이 동산에서 맞는 그 청렴한 공기 속에서 맞는 새벽 저는 여러 분이 새벽기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큐티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방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본질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기도할 때는 자기에게 필요한 알맞은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새벽이 불가능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아이들의 학교 문제, 출근 문제, 직장 문제 때문에 어려울 것입니다. 오후는 안될까요? 오후도 가능합니다. 오전도 가능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시간, 자기에게 필요한 장소를 선택하십시오. 문제는 기도를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획이 습관을 가져다 줄 수가 있습니다. 사랑 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공부시켜보면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근데 공부하는 습관을 갖 게 하려면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공부를 위한 일정한 시간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소를 정하는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은 그에게 좋은 생산성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줄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열망이 있습니까? 기도를 계획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야구 선수 출신으로 예수님을 만난 빌리 썬디 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야구 선수였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근데 그가 교회 나갔을 때 교회 지도자 한 사람이 그에게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자네 신앙 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러면 세 가지를 계획하게. 세 가지가 뭡니까? 첫째, 날마다 15분 기도하게. 그리고 날마다 15분 성경을 읽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야 .그리고 날마다 15분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게. 15분 기도하고 15분 성경 읽고 15분 전도하게. 얼마나 단순한 충고예요. 그런데 이 사 람은 단순한 사람입니다. 제가 언제나 강조합니다마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에요. 복잡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복잡해서 안 쓰십니다.


              단순해야되요. 얼마나 단순하면 15분 기도하고 15분 성경 읽고 15분 전도하라고 하니까 평생 그렇게 했어요. 평생. 그리고 그는 빌리그래함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미국에 전도자로서 부상하기 전에 미국 땅에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큰 각성의 주도적 역할을 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기도의 시간, 그리고 나만의 기도의 장소를 계획하는 일입니다. 주님 처럼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 내 안에 살아계신 그 하나님을 만나 그 하나님으로부터 영감과 능력을 얻기 위해서 주 앞에 기도의 시간을 계획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세 번째로 이 교제의 결과를 주목해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과 교제한 결과 어떤 결과가 이루어 졌는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 다음에 36, 37 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절에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자 새벽 기도하던 그 장소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쫓아 왔어요 뭐라고 말합니까? 모든 사람이 주를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를 찾나이다 라는 단어는 본래 원문에서 이 단어가 집요하게 추적한다는 뜻입니다. 집요하게 추적한다.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새벽부터 찾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제 안식일 저녁에 많은 병자를 고치셨잖아요. 소문이 계속 납니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합 니다.


 자 그때 38절 자 이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고 있는데 선생님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빨리 내려오셔서 기도해주셔야지 이때 예수님의 반응을 주목해 보십시오. 38절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엄격하게 말하면 이것은 제자들의 요청 앞에 예수님이 응답하신 겁니까? 거절한 것입니까? 거절이지요.


선생님 오늘 새벽부터 사 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해주셔야죠. 어제와 같은 놀라운 일을 행하셔 야죠. 예수님은 고요하고 침착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니야, 오늘은 다른 계획이 있어.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거기서 전도해야 해. 주님은 사람들의 압력, 프래셔에 사람들이 하자고 하는 데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인생만을 살지는 않으셨습니다.


골든 맥도날드라는 사람은 오늘 현대인들 가운데 삶을 사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충동적인 삶 혹은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소명에 의해서 인생을 사는 사람들. 소명에 의한 삶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그 소명을 따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별로 의미 없이 의미 없는 일에 바쁘게 끌려만 다니는 인생, 충동적으로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생산성 있는 삶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의 스타일 가운데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이 이 충동적 삶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가치관이 없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몰라요. 우선순위가 없습니다. 바쁘긴 바빠요. 무지무지하게 바빠요 그런데 의미 없이 바빠요 끌려만 다녀요 충동적으로 살아요.


     그러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충동적으로 화내고 이웃들을 심판하고 상처 내고 자기도 상처 받고 이런 충동적 인생의 모습. 왜 한국인들이 의미없이 여유를 잃어버리고 이 바빠지는 인생을 살게 되었는가? 한국학을 연구했던 어떤 한국학자는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한국 사람이 좀 이 산업화의 과정에서 변질되었다. 옛날엔 안 그랬는데. 언제부터 변했는가?


라면 먹는 날부터 변했다. 라면 먹는 날부터. 그전에는 옛날식으로 밥을 지었을 때 밥 짓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려요 또 그렇게 지어 놓은 다음에는 아랫목에 묻어 놓고 계속 뜸을 드리고 그 기다림의 여유 있는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은 훨씬 더 여유 있는 민족이었습니 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을 지내는 과정에서 소위 급진적 문화, 소위 인스턴트 문화 즉각적으로 뭘 해결해야 된다는 말이죠.


라면이 얼마나 편리한 음식이에요. 당장에 먹어요. 이것이 한국 사람을 급하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이다 그날부터 변했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라면도 보면 1,2,3,4,5,6으로 숫자적으로 라면이 있더라고요. 일, 일 번지 라면, 이, 이백냥 라면 삼, 삼양라면 사, 사발면 오, 오향면, 그런거 있어요? 오백냥 라면. 육, 육계장 라면 칠, 세븐면이 있더 라구요 요즘 보니까 팔 팔도 라면 다 있지? 열 라면도 있어요?


 제가 북한에 가보니까 북한 사람들이 뭐 줬으면 좋겠냐고 하니까 혹시 선생님 라면 가져온 것 있습니까? 그래요.북한에. 네, 그런데 북한에 가보니까 훨씬 더 여유가 있어요. 근데 제가 라면을 좀 가져갔거든요. 옛날에 갈 때. 그런데 라면을 주면서도 굉장히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 여유 있었던 민족들이 라면 먹고나면 다 버리겠구나.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급해졌는지 몰라요.


급한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여유를 잃어버리고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초점을 잃어버립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몰라요. 병 고치는 것이 좋죠. 그러나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병 고치는 것 좋죠. 그러나 예수님이 왜 오셨어요? 병 고치는 것은 필요한 거지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병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 이만큼 이곳에서 전도하면 됐다.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전도하자. 자 예수님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알았어요. 분명한 초점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한걸음 한걸음 옮겨가는 인생 목표가 분명하고 초점이 분명 하고. 저는 주님도 위대하지만 본문에서 또 가만히 묵상하며 제자들도 굉장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때 내가 제자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거기서 전도하자. . 선생님 안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데요. 자 선생님 인기가 높습니다 여기서 계속 병자를 고치셔야 합니다. 아니야. 오늘은 다른 마을로 가야 해. 복음이 모든 곳에 전해져야 해. 주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 거절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저는 한국 문화가 성숙하려면 특별히 한국의 크리스챤 문화가 성숙하려면 남이 아니요 할 때 그 거절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 람들이 NO하게되면, 아니요 라고 거절하면 내 인격을 모욕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NO 할 수가 있는 거죠.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고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어차피 인생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에 따라서 선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중요한 일을 하도록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생님 그 일을 하셔야죠, 제 요청 안 들어 주셔도 괜찮아요, 오해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말고 그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에요.


 데이빗 메케나 라는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가 있는데 . 이 분은 현재 에스베리 신학교의 총장이신데 그전에 시애틀에 있는 퍼시픽 유니버시티 라는 대학에 총장이었을 때 학교가 아주 막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개교기념일을 맞았을 때 이 분이 백주년 기념을 하면 정말 멋진 학교의 기념식과 졸업식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애틀 오페라 하우스를 빌려서 아주 거대한 졸업식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이 졸업식의 스피커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초청을 했습니 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답장을 했대요 그 답장은 뭐냐 하면 거절하는 편지였습니다. 그 얘길 하면서 데이빗 메케나 라는 이분이 자기가 쓴 책에서 무슨 이야길 했냐면 자기가 그 편지를 보고서 감동을 받았다는 거예요.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어떻게 거절하셨는고 하니, 데이빗 나를 당신 학교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해 주어 정말 고맙네 그러나 데이빗, 나를 잘 알지 않는가 나와 자네는 친구이고 당연히 가서 연설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전도자야.


하나님은 나를 전도자로 부르셨어 예수 믿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단 말이야 졸업식에는 나보다 더 적합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네 하나님이 나를 본래 불러주신 그 부르심에 일 할 수 있도록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겠는가? 그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대요.


 근데 저는 그 얘기를 읽으면서 그 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초청을 거절한 빌리그래함을 수용한 데이빗 매케나 박사의 인격이 훨씬 고결하게 보이더라구요 남의 거절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되요.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 더 큰 하나님의 뜻.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병자 고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러나 복음이 골고루 여러 마을에 전파되는 것 더 큰 하나님의 나라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내 생각대로 내 의견대로 되지 않아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저는 이것이 진정한 기도 생활의 성숙이라고 생각합 니다.


 기도한다는 것이 뭘 의미 합니까? 진정한 기도, 참된 기도, 기도의 성숙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기도를 통해서 발견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내가 쓰임을 받는 것이야말로 기도 생활의 절정이요 기도 생활의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주셨습니까? 주님이. 나라이 임하옵시고 또 뜻이 내 뜻? 내 생각? 아니예요.


교회에서 일하면서도 이따금씩 우리가 마음 속에 불편함을 갖는 것은 다 자기 뜻 자기 생각 고집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뜻 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의해서 내가 쓰임을 받는 인생이 되는 것 기도생활의 궁극적인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부부가 어느 날 기도하고 있었대요.


 교회 나와서 기도하는데 한 사람 이 남편이 계속 이렇게 기도하더래요 채워주소서 채워주소서 채워주소서 오 주님 채워주소서 그런데 옆에 있던 부인이 이상하게 기도하더래요. 옆에서 자기 남편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가져가소서. 가져가소서 가져가소서 옆에서 보는 사람이 이상하다.


이 부부는 뭐 이렇게 기도하나. 더 자세히; 들어보니까 부인의 기도 소리가 들려 오더래요. 하나님, 이 인간 채워주셔봐야 맨 날 자기밖에 모르오니 가져가소서. 가져가소서. 왜 기도해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인생 이것이 기도 생활의 절정이요 기도 생활의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보를 옮기시는 주님.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마지막 절 39절에 보시면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더 많은 곳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종하셨기 때문에 갈릴리 전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기도 여러분의 기도, 저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는 놀라운 축복 가운데 쓰임을 받는 기도의 전사 그리고 기도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