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성폭력 팀장은 달랑 정직2주, 피해자는 대기발령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2. 5. 15:55

성폭력 팀장은 달랑 정직2주, 피해자는 대기발령

한겨레 등록 :2018-02-04 19:04수정 :2018-02-05 09:10

 

성폭력 가해자 놔두고 피해자 추궁하는 사회

피해자는 폭로 뒤 불이익 받고
가해자엔 솜방망이 처벌 일쑤
되레 “불순한 의도 있었나” 매도

남성 위주 법·제도 탓 ‘2차 피해’
“두려움 없이 고발할 수 있도록
질문의 방향을 가해자한테 돌려야”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사 성폭력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사 성폭력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미투 1. 르노삼성에 다니는 박아무개(40)씨는 팀장한테서 1년 넘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팀장은 “전신 오일 마사지를 해주겠다” 하는가 하면 “보고 있어도 그립다”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선 “사랑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참다못한 박씨는 회사에 사실을 알렸지만 회사는 가해자인 팀장에게 정직 2주라는 솜방망이 처분만 내렸다. 정작 피해자인 박씨에겐 견책 처분이 내려졌다. 박씨는 지난 2013년 회사와 가해 팀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회사는 추가로 피해자인 박씨와 박씨를 도운 동료에게 직무정지, 대기발령 등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박씨의 청구 내용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판결을 했지만, 형사 고소는 4년 가까이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이 기소 여부조차 판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피해자의 고통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박씨는 답답한 마음에 지난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현재 상황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오히려 인사팀 직원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미투 2. 독립영화 감독 ㄱ씨는 2015년, 학교 동문으로 같은 여성인 동료 감독 ㄴ씨와 술을 마시다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ㄴ씨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교육이수 40시간 확정판결을 받았다. 1·2심에서도 준유사강간으로 유죄를 인정받았으나, ㄴ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유명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영화계 내 입지를 굳혀갔다. ㄴ씨는 재판 중에 ‘피해자가 성관계를 원했다’며 동의하에 이뤄진 관계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ㄱ씨는 재판 과정에 2차 피해까지 입으면서, 해오던 영화 제작에 차질을 빚었다. 또 성폭력 가해 사실에도 아랑곳없이 가해자가 명성을 얻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극도의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8년 만에 폭로하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 내기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폭로 이후의 상황은 피해자들에게 만만치 않다. 가해자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피해자들이 힘들게 말한 ‘#미투(Me Too)’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매도되기도 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계_내_성폭력’ 운동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역고소가 줄을 이었다”며 “피해 사실을 고발한 피해자는 불이익을 받고, 가해자는 처벌 없이 조직 내에서 건재한 현실이 성폭력 피해에 대한 문제제기를 막고 피해자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용기를 내어 성폭력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아동구호 기구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고위 간부가 ‘영어 하는 게 동두천 미군 접대부 같다’ ‘허리가 가늘어서 애나 낳겠느냐’는 등 부하 여직원을 상습 성희롱한 사실을 알린 내부고발자는 해고됐다. 자신이 추천한 위원들로 조사위를 꾸려 면죄부를 받은 가해자는 여전히 이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르노삼성 피해자 박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박씨는 전문 업무에서 배제됐고, 업무평가에서 F등급을 받았지만, 인사 불이익을 준 2차 가해자들은 승진한 뒤 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반성조차 없는 가해자들 대신 피해자들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한샘 사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2016년 말부터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입사 동기와 사내 교육 담당자 등으로부터 수차례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한 여자에게만 같은 일이 세번이나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식의 소문이 돌면서, 직장에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여름엔 한 여대생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뒤 “꼬리 쳤다” “꽃뱀 같아 역겹다” 등의 악플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질문의 방향을 가해자한테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혜정 활동가는 “모든 화살이 피해자에게 집중되니까 피해자가 입 다물기 쉽다”며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왜 더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냐’ ‘폭로에 의도가 있지 않냐’ 물으면서 가해자한테는 질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다수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문제삼지 않으면 개개인의 갈등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며 “개인이 아닌 집단의 문제로 삼아야 피해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 위주의 위계적인 문화에 젖어든 나머지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르노삼성의 피해자 박씨는 검찰의 ‘태업’ 탓에 3년7개월째 고통을 겪고 있다. 피해자 박씨의 대리인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이번에 또 담당 검사가 바뀌는데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며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통상적인 사건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기관 탓에 피해자에게 고통이 전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제는 너무 지쳐 직장 내에서 성희롱당하면 차라리 이직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고 했다. 박씨가 성희롱 당한 사실을 폭로한 뒤 회사한테서 받은 불리한 조처를 고소한 사건 중 일부는 공소시효조차 몇개월 남지 않았다.

서 검사의 폭로 뒤 모처럼 이어지는 지지와 공감은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됐다. 영화계 성폭력을 폭로한 ㄱ씨 쪽은 피해 2년여 만인 지난 3일 인터넷에 관련 사실을 공개하며 ‘#미투’에 동참했다. ㄱ씨는 <한겨레>에 “그동안 교수님이나 학교로부터 ‘침묵하라’는 이야기만 들어왔다.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다가도 ‘왜 술을 많이 마셨냐’ ‘ㄴ씨가 잘나가니 질투하냐’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ㄱ씨는 서 검사 등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이 용기 내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ㄱ씨는 “‘#미투’ 운동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나도 밝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하고 나니 ‘주변에서 도움을 못 줘 미안하다’며 손을 내밀었다.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장수경 신지민 최민영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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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0768.html?_fr=mt2#csidxbf1d24e75e453189b7dc8d96865fa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