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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37년 만에야 사실로 밝혀진 ‘5·18 헬기 사격’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2. 8. 15:51

[한겨레 사설] 37년 만에야 사실로 밝혀진 ‘5·18 헬기 사격’

등록 :2018-02-07 18:18수정 :2018-02-07 19:30

 

5·18 당시 희생자들.
5·18 당시 희생자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이 광주시민에게 헬기 사격을 하고 폭탄을 실은 전투기까지 대기시켰다는 5·18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7일 발표는 충격적이다. 전쟁중에 적군을 소탕하듯 대규모 화력을 동원해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지난 38년 동안 이런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특조위 조사를 통해서야 확인된 것은 국방부의 진실규명 의지가 없었던 탓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조위의 발표 내용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그동안 증언으로만 떠돌던 헬기 사격이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특조위는 당시 육군이 광주에 40여대나 되는 헬기를 출동시켰고 공격헬기(500MD)와 기동헬기(UH-1H)를 이용해 5월21일과 5월27일 광주시민에게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특조위가 찾아낸 자료에는 ‘103항공대가 5월23일 전교사에서 벌컨포 1500발을 수령했다’는 20사단 충정작전 자료도 있는데, 여기에 근거해 특조위는 코브라 헬기에서 벌컨포로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았다. 대다수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향해 이런 가공할 무기를 사용했다니,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다.

5·18 당시 공군이 수원과 사천 비행단에서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시켰다는 사실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당시 공군에 몸담았던 일부 예비역 장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 출격이 목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이 점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이와 함께 당시 해군(해병대)도 광주에 출동할 목적으로 5월18일부터 마산에서 1개 대대를 대기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도 의미가 크다. 5·18 진압을 위해 육해공 3군이 합동작전을 펼쳤음이 분명하다. ‘학살 작전’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특조위 조사 결과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여럿 밝혀냈지만, 조사 권한이나 조사 기간의 한계 때문에 완전한 진실 규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5·18 학살의 최종 명령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세력은 ‘북한군 개입설’ ‘폭도들의 난동’을 들먹이며 5·18을 폄훼하고 있다. 5·18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정의와 인륜을 세우는 일이다.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중인 5·18진상규명특별법안 통과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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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31265.html?_fr=mt0#csidx0a278955b70ab219fb75926395e32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