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 이경자 소설가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에서 취임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반장도 못 해본 사람이 전국 조직의 장을 맡게 되어 얼떨떨합니다. 한때는 저도 혁명주의자였고 여성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지금 제 이념은 ‘할머니주의’예요. 할머니 같고 어머니 같고 누이 같고 딸 같은 마음으로 작가회의를 이끌어가겠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6층 마중홀에서 열린 ‘제31차 한국작가회의’(작가회의) 총회에서 이 단체의 2년 임기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소설가 이경자(70)씨는 취임 소감에서 ‘여성적 지도력’을 강조했다.
창립 44년 만에 첫 여성문인 수장
총회에서 한창훈 사무총장도 선출
“여성주의자 넘어 ‘할머니주의’로”
총회에서 한창훈 사무총장도 선출
“여성주의자 넘어 ‘할머니주의’로”
상벌위원회서 ‘문단 성폭력’ 논의
국립문학관 용산공원 설립도 추진
“소설·인물 이야기도 계속 쓸 것”
국립문학관 용산공원 설립도 추진
“소설·인물 이야기도 계속 쓸 것”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해 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2007년 지금의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며 이어온 이 조직의 수장 자리에 여성 문인이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신임 이사장은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 같은 소설을 통해 가부장제 아래 시달리는 여성의 고통과 싸움을 그렸다.
이 이사장은 “이번 총회를 준비한 총회준비위원회 22명 중 절반이 넘는 12명이 지역 지회장들이었고 신임 부이사장단은 5명 모두 지역 회원들로 꾸렸다”며 “그동안 작가회의 이사장을 맡았던 분들에 비해 나는 그야말로 ‘평민’인 셈”이라는 말로 조직 운영의 기조를 암시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이사회의 위임을 받은 총회준비위원회가 신임 이사장과 사무총장 후보를 선정한 다음 총회에서 추인·선출 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이사장과 호흡을 맞춰 작가회의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신임 사무총장으로는 소설가 한창훈씨가 이날 총회에서 선출되었다.
그러나 총회에서 일부 회원들은 총회준비위원회와 이사회가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사실상 ‘내정’하는 지금의 방식을 비판하고 이사장 및 사무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3시간30분 넘게 이어진 총회가 끝난 뒤 이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총회장에서 일부 회원들이 요구한 임원진 선출 관련 정관 개정 검토 소위원회 구성은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릴 생각”이라며 “그러나 작가회의는 남녀와 상하 구별 없이 육친 같은 정서로 뭉친 조직”이라는 말로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독재에 저항해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만들었던 때의 상황과 각오가 작가회의의 정신이자 뿌리”라며 “작가회의 회원은 이 뿌리를 뒤흔들거나 훼손시키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가는 무엇보다 작품을 잘 써야 한다. 작가로서 역할을 끊임없이, 잘 해야 한다.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밥값의 문학’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신임 이사장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현안 중에는 ‘문인 성폭력’ 논란도 포함돼 있다. 작가회의 소속 원로 시인의 과거 성폭력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시가 최근 뜨거운 쟁점을 낳았고, 2016년 불거진 ‘문단 성폭력’ 문제에 연루된 작가회의 회원들의 징계 여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는 중이다. 10일 총회가 열린 마포중앙도서관 앞에서는 성폭력 가해 지목 문인에게 보복성 고소를 겪으며 고통받고 있다는 여성의 성명문 발표와 기자회견이 있기도 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 이 이사장은 “작가회의 안에 상벌위원회를 만들어 조직에 누를 끼치는 회원에 대한 징계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원로 시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4월 중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회의 회원들이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을 받거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과 맞물려 지난해 특히 첨예한 논란을 낳았다. 결국 작가회의는 지난해 10월21일 ‘회원들이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심사와 수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을 담은 단체 입장을 전체 회원들에게 발송했다. 그러나 작가회의 대전지회와 충북작가회의 등은 ‘권고’만으로는 너무 미온적이라며 친일 문학상을 받거나 심사하는 회원을 징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이사장은 “작가회의는 자율성을 지닌 문인들이 모인 단체인 만큼 특정 문학상과 관련한 행동을 강제하기는 어렵다”며 “작가회의 지회 역시, 자치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본회의 입장을 좇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국립문학관 부지로 문인들은 용산공원 터를 선호하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에 반대하고 있다. 적절한 때에 박 시장을 만나서 문인들의 의견을 전하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2005년 1회 대회 이후 중단된 남북작가대회는 언제든 여건이 충족되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지만, 그것은 문인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힘들고 국제정세 및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문단 선배인 신경림 시인의 삶과 문학을 “할머니스러운 문체”로 풀어 쓴 인물 소설 <시인 신경림>을 낸 적이 있다. 그는 “가부장제가 남자들에게도 힘들다는 것을 납득시킬 만한 장편소설을 작년에 출간할 계획이었는데 미루었다. 개작해서 올해 내려 한다”며 “소설가가 소설을 못 내면 정신분열에 걸린다. 작가회의 이사장을 하면서도 소설과 인물 이야기 등을 꾸준히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