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16강) 본 받아야 할 신앙! (롬 4:13-2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31. 06:48

《제16강》      본받아야 할 신앙! (롬 4:13-25)

 

  어느 유명한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의 한 계곡에서 이쪽과 저쪽을 줄로 연결해 놓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관중들이 갈채를 보내며 넘버원! 최고야! 외쳐댔습니다. 곡예사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실력을 보여주고는 자신의 머리 위에다 의자를 올려놓고 소리칩니다.
  "여러분 내가 이 의자에 사람을 올려놓고 저 끝까지 갔다 올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관중들은 "당신은 충분히 하고도 남습니다. 당신의 실력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곡예사는 목소리의 톤을 높여 관중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여러분! 내 실력을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아무나 한 사람만 나오십시오. 그분을 제가 머리 위에 얹어놓고 멋진 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시장처럼 떠들썩했던 주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곡예사를 향해 당신의 실력을 확실히 믿는다고 소리 지르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합니다.
  그때, 누군가 "제가 하겠습니다"하며 앞으로 나왔습니다. 가만히 보니 어린 꼬마였습니다. 곡예는 시작되었고, 모든 관중들은 놀라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린 꼬마는 무서워하기는커녕 흥겹게 어깨춤을 추면서 폭포 위를 건너고 있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 꼬마는 곡예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떨어지면 살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도 꼬마가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아버지를 완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안 믿는다 할지라도 꼬마는 자신의 아버지를 완전히 믿고 자신의 몸을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여러분! 이 꼬마의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어떻게 믿었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 그 믿음대로 실천하면서 살다가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소개!▶

 

  로마서의 대 주제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 선한 행위를 하는데 있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사는 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일생을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을 빼 버린다면 세상 사람과 삶의 현장에서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색이 없어지고 맙니다.
  ▶1-12절에서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어떤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삯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하여 율법 앞에 아브라함도 율법 후에 다윗도 다같이 인생의 도덕, 노력, 행실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3절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사이의 맺은 언약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맺은 언약이라고도 합니다.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너희 후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저 바다의 모래알처럼, 저 땅의 티끌과 같이 창대 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세 번째가 '복의 통로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서 천하 모든 만백성들이 복을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누구를 통해서 성취가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약속을 바울이 본문에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한 약속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온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이 온 우주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이어받을 수 있는 후사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약속입니까?
  여러분! 후사가 무슨 뜻입니까? 후사는 대를 잇는 자식이라는, 상속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후사가 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아들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잇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바울이 본문 (하)반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그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시대 이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3:17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미 사백 삼십 년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기신 연고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우리들에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저 영원한 하늘나라를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기업으로 이을 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한 학자, 박사들이 저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잇는 것입니까? 성인  군자들이 잇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들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되어서 장차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이 대 원칙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세상의 후사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무엇인가? 우리에게도 이 복이 있습니다.
  창17;5절 "내가 너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의 혈통이 바로 다윗의 혈통으로 내려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창13:14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루리라" 창13:2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창24:35절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다"고 아브라함의 종이 증인하고 있습니다.
  
  ▶14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무슨 말입니까? 만약에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믿음도 헛것이 되고, 약속도 폐하여 졌느니라!"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도 헛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도 헛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약속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믿을 때 이루어집니다. 명령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복종할 때,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약속을 믿어버리면 내 것이 되고, 명령에 순종하면 주겠다고 한 것을 얻게 됩니다.
  ▶약속이란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①조건부 약속이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 즉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말입니다.
  ②일방적인 약속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죽을 때 아들에게 "이것을 네게 주노라" 유언 식의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방적인 약속에 대해 약속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 밖에 없습니다. '내가 네게 이것을 준다' 했을 때, 아멘! 감사합니다. 받으면 내 것이 됩니다. '네 죄를 사하였느니라!' 아멘! 감사합니다. '받아야지. 글쎄요! 죄가 사해졌는지 아닌지는 천국에 가봐야 알겠는데요' 하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약 율법에 속한 것이라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괜히 약속하신 분이 됩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할/

 

  ▶15절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율법이 없으면 죄가 어느 정도인지 모릅니다. 무엇을 훔치면 몇 년 징역을 받습니다. 이런 법이 있기 때문에 훔치면 죄가 됩니다. 법이 없으면 죄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통해서 자꾸 진노합니다. 613가지의 율법을 볼 때마다 '아! 나는 이것이 부족하구나, 나로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구나' 그것을 통해서 인간 스스로를 철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복음의 소식을 들을 때 반가워서 얼른 받아 드리라'고 율법을 준 것입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냐?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약하기 때문에 도저히 지킬 수가 없는 것뿐입니다.
  율법은 효용가치가 있습니다. 율법 때문에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가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 보면 가정의 귀중함을 압니다. 살벌한 곳에서 고생하면 가정에 와서 펑펑 울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실컷 정죄 받다가 복음(예수)를 믿을 때 감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닫도록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16절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후사가 되는 것이 무엇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어야 한다고 합니까? 은혜에 속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여러분! 만일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사랑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해서 내 힘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만일 세상의 후사되는 약속이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된다면 그 약속은 성취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전히 지킨 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후사 곧 상속자가 되는 복은 은혜 아니면 안 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값없이 주시는 '선물, 믿음, 사랑, 은총'입니다. /아멘!/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만일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약속을 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되는 것은 약속을 더욱더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근거한 약속은 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더욱더 굳게 세워지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속한 자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여기에서 율법에 속한 자는 율법을 지켜서 후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할례 받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율법에 따라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후사가 되고 율법과 할례 없는 이방인들도 아브라함같이 믿기만 하면 후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여기 '조상'이라는 말은 '본보기'라는 말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므로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아브라함처럼 구원을 받고 또 이 땅에 살면서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축복의 때가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아브라함처럼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이 받았던 그 모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신앙의 샘플입니다.
  ▶이제 17절부터는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7절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었는가? 첫째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둘째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세 번째로, 21절로 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①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생생한 체험을 했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차라리 잔인하기조차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멘으로 순종했습니다.
  그가 아멘 하고 외치는 순간 그의 아들, 이삭은 죽은목숨입니다. 모리아 땅으로 향하던 3일 길의 행로는 이미 이삭은 죽은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모리아 산의 지정된 한 제단에서 아브라함이 칼을 드는 순간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창22:12절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삭을 살리신 하나님! 이 사건은 모형 적인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3일 후에 다시 살리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십니다. 우리의 죽은 생활을, 무너진 사업을, 죽은 가정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어떤 자에게,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이런 역사는 이러 납니다. /할/

  ②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에 태의 문이 닫힌 사라의 통해서 이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믿음 안에서 없는 것을 있게 받는 실례들이 많습니다.
  ▶딸만 다섯 둔 집사 님이 눈물 뿌려 기도했더니 아들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예 40이 넘는 어느 자매 님은 예수 믿고 아들 얻었다고 기뻐하며 간증합니다.
  본문은 점점 아브라함의 본받아야 할 신앙들이 나옵니다.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말씀대로"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실감나게 바꾼다면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도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좀 일반적인 표현을 한다면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창15장을 보면 당시 아브라함의 처지는 대단히 막막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들어온 지 5-6년이 지났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사가 찾아와 아브라함을 불러냅니다. 밤하늘에는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가리키면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본문은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아멘!/ 아브라함은 바라볼 수 없는 중에 바라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볼 때,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 바라고 믿었습니다. 인간적인 희망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사는 너무나도 파도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절망적이요, 부정적인 상황이 물밀듯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모든 희망도 잃어버리고 낙심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줍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미 끝장이 나서 바랄 수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우리는 바랄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희망이란 제약된 것이 많습니다. 학벌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명문대학에 들어가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합니다. 집안이 좋아야 합니다. 집안 때문에 많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이별을 체험합니다. 또 능력이 있어야 인정을 받습니다. 같은 입사 동기생들 중에서도 하나는 과장, 하나는 계장, 평사원 등 이렇게 능력별로 진급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희망은 제약이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행진은 제약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신앙, 그것이 바라 볼 수 없는 중에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곧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 중에 바라보았습니다.
  ⑴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⑵그 이름이 창대케 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⑶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할 때, 그는 믿고 일어섰습니다.
  목적지가 분명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지시한 땅으로 하루 하루를 달려나갔으며, 축복의 내용이 너무 거창하여 실현성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는 추호도 의심 없이 그것을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19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100세가 넘은 자신의 처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90세가 된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지가 오래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일년 후 득남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분명히 믿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신학자들 가운데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 이곳저곳을 부인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똑똑한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믿어지는 것만 믿고 그렇지 않으면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것 중에 믿어야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가 막힌 사연임이 틀림없습니다. 자식이 많아도 바치기가 어려운데 외아들을 바치라고 하니 땅을 치고 통곡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는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믿음의 조상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돈키호테'라는 사람은 근거 없이 행동했기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돈키호테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주님은 종종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는 자여"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보다 작게 생각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전능 자이십니다.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은 문제를 피하지 않고 그 문제 앞에 맞섰습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면 피합니다. 외면하고 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여러분! 길이 막혔다 싶은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입니다. 홍해바다가 가로막힌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서서 나의 구원을 보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인간수단 다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때만이 참 믿음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것 같았으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약한 믿음, 흔들리는 믿음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어떻게 보면 모험이요, 배짱입니다. 절대로 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부딪치십시오, 직접 만나 믿고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 믿음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이라는 말에 또 밑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섰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신앙이었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는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나옵니다만은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의심치 않고" 의심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 의심하십니까? 믿음이 적어서 입니다.
  마14: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하십니다.  여러분! 의심하면 물에 빠집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다가 물에 빠졌습니다. 또 의심하는 자들은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약1:6-7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본문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견고할 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혈루증의 여인은 이 견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병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이 세 번째로 믿었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약속을 한 당사자가 신실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사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원한다 할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과연 어떠하신 하나님이신 지를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신 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크지도 않고 작은 어려운 일이 생기기만 해도 낙심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1:17절 이하에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제목이 나오는데 제일 먼저 기도한 것이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어떠하신 하나님인지 분명히 알고 믿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그냥 이루는 것이 아니고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습니다. 믿음은 확신입니다.
  빌1: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도 생수를 내시고, 오늘도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할!/

 

  ▶22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무엇을 보시고 그를 의로 여기셨습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대로 믿는 신앙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 의로 인정을 받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가 나를 믿으니 옳도다! 그 믿음이 귀하다! 내가 너를 옳게 보리라!" 우리가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 한 분만 바로 믿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제일 큰 보배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이 기록을 왜 기록해 두셨을까? 아브라함에게만 필요하다면 그에게 말로 하면 될 텐데… ▶그 이유는 23-24절에 나옵니다.

 

  ▶23-24절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브라함만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함입니다.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믿는 우리 신앙이 같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의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예수 안에서 죽은 자의 몸을 부활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신 것을 확실히 믿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5절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인하여 내어 줌이 되고"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믿을 때, 우리 죄가 소멸되고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분명하게 증언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우리는 변화 받은 새 사람이 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죄가 소멸되고 부활을 믿을 때, 의로운 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요, 그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십니까? 이제 더 더욱 열심히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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