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살기 위하여/빌1:19-24
출처/서은철목사
주신 말씀 빌1:20-24절을 통해[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라는 주제로 주께서 주시는 큰 은혜 받기 원합니다.
앞 단락에서 바울의 투옥이 복음의 진보를 이루게 되었음을 말하고 이어서
바울 사도가 자신이 투옥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사를 초월한 사생관을 밝힘으로써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19절에서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고백한 후 바울 자신의 초월적 사생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소망하나, 복음 전파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면 석방되어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직자는 성도들의 기도를 먹고 산다고 말합니다.
본문 19절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자신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으며
살후3:1 “ 형제들아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간구함으로 도우라 ”
몬1:22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성도들이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성도들의 합심기도가 필요한 것이지 모든 것을 홀로 할 수 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합심기도 없이는 교회의 부흥도 믿음의 성장도 사회봉사도 아름다운 섬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기에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자기 몸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20)
바울 사도의 말처럼 성도는 자신이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게 행해야 합니다.
비록 초근목피로 배를 채울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유유자적할 수 있는 긍지와 자부심 명예를 버리면 안 됩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나 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부끄러운 짓 즉 거짓이나 위증이나 담합이나 편들기등 편파판정은 안됩니다.
바울 사도는 판결의 결과가 어떻든 복음을 전하고 할 일을 다하여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바울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존귀한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 자기 몸을 산제사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로써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먼저 복음을 이웃에게 담대하게 전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 합니다.
이웃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복음을 담대히 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감추고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밝히면 거짓말도 못하고 말도 함부로 못하고 자기 이익을 보장하기도 그렇고 회식때 술도 못먹고 .....
마10:32-33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한 말씀처럼 성도가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숨긴자는 주님께 영원한 불이익을 당하게 될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 예수의 가름침대로 살지 못하는 생활이 부끄럽다합니다.
성경에서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도가 간구해야 할 것은 매사에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어떤 것이 부끄러운 일인지 분별하고 멀리 피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온갖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셨으므로 성도들은 다시 주님이 부끄럽지 않도록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존귀를 드러내기 원한다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우리 몸으로 그리스도의 존귀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먼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전으로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성령의 전으로 합당하게 즉 거룩하게 행하라 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전의 생명이기에 성도는 범사에 거룩하게 행해야합니다.
거룩은 구체적으로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절제할 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존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지체는 머리 뜻대로 움직여야지 머리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장애자입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행해야 합당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 몸을 그리스도의 의의 병기로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죄악을 이기고 의를 행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거울로서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예수 믿는 사람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에 성도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리스도의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빛된 생활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성도의 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만들어가는 성도되시길 축원 합니다.
둘째로 삶 자체를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21)
여기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에서 사는 것(ζήν 잰)은 죽음에 대조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력을 소유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육신적인 삶이나 영적인 삶의 근원이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식과 체험이 그리스도로 꽉 차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그의 최대의 관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삶의 영감과 지침과 목적과 의미를 제공한다는 바울 사도의 고백은 우리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란 행하는 모든 것,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의 힘으로 형제를 사랑하며 돌보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위한 것으로 , 자신의 일생이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고 예수에게 집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처럼 그리스도로부터 능력을 힘입으며 그리스도의 겸손한 성품을 그 마음에 가지며,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를 받으며 진실, 사랑, 소망, 순종, 복음 전파등이 그리스도로 넘쳐나듯 우리가 바울을 본받는 삶을 사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 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사를 초월한 신앙을 지닌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까?
먼저 죽음 이후에 영원한 삶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니”라 했듯이 성도에게 죽음은 단지 영생으로 가는 관문에 불과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생사를 초월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은 성도는 죽음과 동시에 세상 고난과 수고를 마치고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14:13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합니다. 죽으면 이생의 수고와 고난을 마치고 영원한 쉼에 들어가게 되므로 설령 죽음이 우리를 위협해도 죽음조차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는 생사를 초월한 믿음의 성도되기 원합니다.
그 다음은 죽음이후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상급을 받게되기 때문입니다.
딤후4:7-8“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삶의 영감과 지침과 목적과 의미가 될 때 내세를 몰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생사를 초월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섬겨 영광을 돌리며 사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내 삶의 열매 맺는 소망가운데 살아야합니다. (22-23)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바울이 재판에서 승소하여 살아난다 할지라도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풀려나게 되면 내 일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므로 자신에게 더 유익하지만, 살아 있음으로 이내 자신의 사명인 복음 전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τό ζήν έν σαρκί)는 육체 가운데 사는 이것이라는 말인데 , 죄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 안에서의 삶, 즉 지상에서 육체를 입고 사는 것을 의미 합니다.
육신으로 사는 삶은 지상에서의 전도사역, 즉 전도로 인한 복음의 확장과 그리스도를 전하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 삶을 가리킵니다.
특히 여기에서 열매일진대(καρπός)는 열매라는 명사이지만 상징적으로 유익, 이득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일(έ΄ργον)은 사업이나 직업, 소행이나 행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도구가 되어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택할는지(αίρέομαι)는 선택하다, 좋아하다는 의미입니다.
둘 사이에 끼었으니 라는 말은 육신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과 죽어서 그리스도와 완전한 교제 속에서 거하고자하는 강한 바람 사이에 내가 끼었으니 (συνέχομαι 쉬네코마이)는 양편으로 포위되어 옴짝달짝 할 수 없는 경우나 사방에서 적들이 포위하고 있는 사면초가 상태를 말하기도하고, 슬픔이나 공포로 괴롭게 하고 있는 경우, 외적 영향력으로 완전히 통제당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 쉬네코마이를 써서 죽어서 더 이상 고통없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자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 강하게 붙들고 있는 한편, 살아서 복음을 전하고 빌립보 교인들의 복음의 진보를 도와야 한다는 사도로써 의무감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어 그 가운데서 어찌하지 못하는 자신의 심정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가운데 있다할지라도 바울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질, 가정, 직장, 자녀, 건강문제들로 끝없는 갈등과 고민 가운데 살지라도 (불교에서 108가지 걱정거리를 백팔번뇌라함). 바울처럼 살아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느냐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냐로 갈등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과 사를 초월한 거룩한 고민을 참된 성도라면 몇 번은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영생을 사모하는 성도에게는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보다 어서 주님이 불러주셔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중심으로 살되 교회중심으로만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중심으로 살지않되 세상의 본이 되고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주축세력이 되어 민족과 나라를 바로 이끌어야합니다.
거짓인줄 알고 악인줄 알면서도 남을 속이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속이는 것임에도 최태민 교도들은 변호사로 *사모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편갈라놓고 상대는 무조건 종북 간첩 하며 싸우게하며 어부지리를 얻으려합니다.
자기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회개 원리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없이는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자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예배가 되는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받아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신앙연조가 깊어질수록 그의 의와 나라를 구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영접하는것은 불가합니다. 절대로...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소망 가운데 사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자기 몸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20)
둘째로 삶 자체를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21)
셋째로 내 삶의 열매 맺는 소망가운데 살아야합니다. (22-23)
주님의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성도되시길 축원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 간절한 바울의 소망과 기도가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을 통해 성취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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