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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 거의 아침에만 볼 수 있는 모습. 여명기 저 모습은 돌부처도 감읍하지 않을 수 없는 풍광이다. 솔바람이 살살 불어 오는 저녁 숲의 소리가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자연의 음성이라면, 아침나절 세상을 덮고 위에 선 자만 누릴 수 있는 이 모습은 눈을 통해 살아감의 의미를 깨워주는 모습이다. 시간 : 2017년 9월 2일(토) ~ 3일(일) 코스 : 1일차: 거림 - 세석 - 장터목대피소 (11:40 ~ 18:30) 2일차: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중봉 - 치밭목대피소 - 윗새재(04:40 ~ 16:00)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뻐근함‘ 예전과 차이가 있다면 기분만큼 몸이 가뿐하지 않다는 것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잠시 꿈결 같았던 지난 주말을 되새기다 자리를 턴다. .......
지리산, 지금 세석 언저리를 찾는다면 6년전 보았던 촛대봉언저리의 구절초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길에 세석이 잡힌 이유도 그것일 게다.
주초부터 묘한 낌새를 비치던 일들이 결국 터지고 만다. 복잡, 복잡, 복잡. 미로다. 업무는 하나씩 잡아 풀면 풀리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상황마다 상대에 맞추지 못하면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기에 풀기 어렵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가자! 지리로. 그리곤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것을 본다.
잔돌평전의 구절초는 기대를 저버렸지만 나머지는 모두 기대 이상.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묘한 흐림이 있지만 사람의 눈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까지 또렷하게 보여준 산 그리메. 전성기는 아니지만, 빛이 조금 아쉬웠지만 눈으로는 충분한 연하선경(烟霞仙景). 지난 5월에 이어 또 다시 보여준 장터목 일몰과 보름달 같은 맑은 달밤. 보통 이상의 일출을 보여준 천왕봉 일출과 교묘한 천왕굴 방문. 처음 발걸음 하는 중봉에서 윗새재까지의 처녀길. 그 안에 담고 있는 치밭목대피소, 무제치기폭포 그리고 조개골의 일면까지.
예전 같으면 무박으로 치뤘어도 될 거리지만 1박으로 편안하게 다녀온 길. 대피소, 오가는 차편에 이어 택시까지 불러대는 치밀함. 지리꾼 세월님의 탄탄한 기획으로 고민 없이 따라만 다녔던 길.
곰곰이 씹으면서 우려낼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그래도 잊지 않았으면 싶은 지명 치밭목과 무재(제)치기폭포.
치밭목은 취가 많은 밭이 있는 목(길목과 같은 사용)에서 취밭목=> 치밭목으로, 무제치기는 크게 3가지 설을 보았는데 첫 번째는 시도 때도 없이 무지개가 치는 곳, => 무지개치기 => 무재치기로 두 번째는 물이 한번 (바위를) 제치고 내려온다는 의미에서 => 무제치기로 세 번째는 산청군이 최근에 만든 스토리텔링 같기는 한데 그곳 공기가 좋아 기관지염 환자가 그곳에서 병이 나았다고 재치기없는(無재치기) 설 개인적으로 위의 두 개의 설이 더 합당하다 생각된다. 더 궁금하신 분은 검색엔진을 통해 알아보시길 권장한다.
아무튼 그런 지리가 많은 사진과 함께 다가온다. 고만고만, 엇비슷한 사진들이 줄지어 쏟아지니 많은 말에 쓸 말이 별로 없듯, 많은 사진에 괜히 기분만 상할까 염려스러우나 버리기는 아쉬워.
1. 오늘은 거림에서 출발한다. 내겐 깊은 추억이 남겨 있는 곳. 이 길도 올 때마다 바뀌어 가고 있다. 산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2. 스테파노님이 가을을 담아 오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부족하지만 이걸로 시작한다. 가을은 이미 산 깊은 곳에 진을 펼쳤으니. 3. 거림골, 물소리 참 좋구나. 4. 세석대피소 언저리, 청학연못과 세석샘에서 흐르는 물줄기일게다. 이 높이까지 물이 있으니 지리는 천혜의 요새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인민들의 피가 곳곳에 뿌려진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5. 세석대피소 샘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자꽃이 맑게 웃고 있다. 얘네들이 맑다는 것은 구절초가 이르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듯 싶다. 6. 세석 샘터의 고마리. 참 높은 곳에서 이쁜모습을 갖추고 산객들을 맞는다. 7. 대피소에서 간식을 먹고 촛대봉으로 오른다. 맘이 급해서 길을 재촉하게 만든다. 반야봉이, 노고단이 아주 가깝고 또렷하게 보인다. 하늘엔 엷은 구름이 덮여 있으나 시계는 거의 무한대, 역대급이다. 8. 촛대봉의 벌개미취, 가만 쑥부쟁이인가? 멀리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너네들은 참 행복하겠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고, 재네들은 이론을 달겠지만. 정의를 내리는 것은 글 쓰고, 말을 할 수 있는 種의 특권이다. 9. 가을 산에서 같은 모습이라도 꽃이 빠지면 웬지 허전해 보인다. 10. 멀리 삼천포 앞바다까지 보이는 흔치 않는 광경을 목도한다. 바다에서 산정까지 이어지는 산너울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눈물이 핑 도는 풍광. 넘실거리며 넘는 파도 또한 느낌은 달라도 이와 같을게다. 11. 매일 본대도 질리지 않은 풍광. 구절초가 이른 것은 산오이풀의 늦은 퇴장일까, 산오이풀이 구절초를 기다리는 것인지 결정을 좋아하는 종인 나는 그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산을 밝히는 이들의 존재는 내가 산을 찾아오는 큰 이유는 분명할게다. 12. 오랜 친구. 마치 산 같은. 13. 잔돌평전의 구절초는아직 이르다. 다음 코스는 煙霞仙景, 바로 이길이다. 지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는 곳. 차마 들어서기 아까워 한참을 바라보다 발길을 가만히 넣어 본다. 14. 든든한 동반자 -주로 내 편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자 오랜 친구인 지리꾼 세월. 요즘 같이 동행을 못할 때가 많아 졌다. 내 허약한 마음과 체력 때문에. 15. 배려의 아이콘 조아네. 16. 그리고 오랜 산친구들 모두. 십여년을넘도록 같이 함은 그 무언가 통함이 있어서다. 그런 친구들과 지금 이 길을 걷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살아감에 몇 없을 그런 행운 말이다. 17. 자꾸만 뒤돌아 보게 만드는 길. 이 한구간 걷는데는 하루를 걸어도 짧을 테지만 내가 소모한 시간은 고작 시간 반가량 그러니 아쉬움이 남아 자꾸 되돌아 본다. 18. 큰 호흡 한번 하고 지나온 길을 뇌리에 박히도록 바라 본다. 조금이라도 잊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이곳에서 반야를 처음 본 것도 아니지만 노고단까지 저렇게 가까이 보이고, 그 너머 만복대, 정령치, 바래봉이 확연하게 흐르는 모습 또한 발길을 붙잡는 요소가 된다. 말없이 통하는 무언의 교감. 19. 얄팍한 인간들의 바램은 아랑곳 않고 눈으로 당기기 어려우니 기계로 억지로 당겨 담아 본다. 감격스런 모습이다.
20. 오늘을 마무리 지을 산장에 들어선 것이 6시40분. 대략 7시간만에 오늘의 숙박지에 들어 선다. 예전보다 빡빡해진 행정에 시간을 마냥 늦추기 민망하기에 서너살 아이들의 반항같은 재롱만 피우고 들어선다. 21. 오늘의 일정이 끝난 줄 알았는데, 지리산은 내게 또 하나의 선물을 남겨 놓았었다. 지난 5월 이 자리에서 보았던 일몰의 모습이 떠오르는. 오늘은 1+1으로 보름에 가까운 달도 보여준다. 그저 고맙게 받을 뿐. 2일차. 22. 4시가 안되어 일어나 물을 끓여 콘스프와 빵으로 요기를 하고 산정으로 오른다. 제석봉 고사목의 쓰라린 상처를 숨겨주는 어둠을 향해 한 줄기 헤드랜턴을 비추며 줄줄이 서두름 없이 산을 오르는 인파, 인파, 인파. 그리고 일출보다 더 멋진 여명을 즐기고, 일출보다 더 멋진 여운을 즐긴다. 발그스레 물든 빛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천왕봉의 사물들이다.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인간들도 군상을 이루어 매일 똑 갗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환호성을 지른다. 참으로 멋진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최고의 운해를 만난다.
23. 짙은 어둠을 바닥에 깔고 오늘의 태양이 떠 오른다. 매일 뜨는 해를 이리 경이롭게 살피며 즐기는 것은 우리 유전자 안에 지속되며 내려온 태양숭배사상이 한 몫 한 것이 분명하다. 이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지금 오른 또 한명의 산친구를 기다린다. 밤을 도와 무박으로 중산리에서 올 까타리님이다. 나는 애써 사람 많은 정상석이 있는 곳을 벗어나 앞 바위에 자리를 잡고 빛을 기다리고, 빛을 담으려는 욕심을 부린다. 24. 그렇게 매일 아침 벌어지지만 한 해에 한두번 볼까하는 해오름 쑈가 끝나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 본다. 막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지리의 산들, 그 주름 곳곳에 아침 햇살이 비집고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 또한 해오름 장면만큼 인상적인 모습이다. 마분지를 마구 접었다가 펴 놓은 듯, 가는선이 분명한 능선의 모습은 나를 감동시키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발 빠른 친구들은 이곳저곳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다니며 마음에 두었던 모습들을 바라 본다. 게으른 나는 이곳에서 좀체 움직일 방법이 없다. 오늘은 이것만 보고 싶을 뿐이다. 25. 드디어 씩씩거리며 올라서는 친구와 만나고 아침을 먹으러 새로운 곳으로 간다. 이 모습을 끝으로 당분간 천왕봉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침 자리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26. 소위 천왕굴이라 불리우는 이곳. 이곳에서 한참을 쉬며 배를 불린다. 이제부터는 하산길이지만 지리의 길은 언제나 멀기에 배를 꽉꽉 채워야 한다. 중봉은 아직 역광이라 어둡고, 산 아랫마을은 아직 구름을 벗지 못하고 있다. 27. 이곳에서 중봉까지는 20여분 남짓. 치밭목대피소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갈 길을 짐작해 본다. 28. 중봉에서. 이제 이곳을 내려서면 본격적인 하산길이 될 것이다. 기념 샷 하나 담고. 지나 온 길을 되돌아 보고, 눈에 보이는 많은 산군들의 위치와 이름을 확인하는 학습의 시간이다. 멀리 보이는 진주독바위, 눈에 보이지 않는 청이당, 가 보지 못한 새봉과 새재길. 모두 윗새재에서 지근거리에 있음을 처음으로 느낀다.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멀리서만 바라보던 황금능선의 실존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롭다. 길다. 그리고. 아름답다. 걸을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 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막상 그 안에는 고생길이 숨겨있다는 것이 세월님의 전언이다. 그럴게다. 세상일 만만한게 하나도 없으니. 지금부터는 처음 가 보는 길이다. 29. 치밭목대피소. 이름의 유래는 위에 적었으니 생략하고,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던 치밭목대피소는 주인이 바뀌고, 새 단장을 마치고 올해부터 손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눈으로 찾아야 보였지만 이젠 터가 넓고 흙이 드러나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대피소 앞 식탁들이 놓여진 대피소 흔적일게다. 30. 그 아래 무제치기폭포 전망대. 여기가 전망대인데 줄을 그어 막아 놓았다. 몇 해 전, 이곳에서 사진을 찍던 산객이 사고를 당한 후에 막아 놓았단다. 참 편리한 행정편의주의를 이곳에서 만난다. 사람들이 잘 살필 수 있도록 해주면 될 것을 그것을 고민하기 싫으니 그냥 막아놓고 넘어가면 벌금만 물리면 된다는 구시대적 행정의 본보기다. 그러고서도 이곳의 공기를 팔 수 있기를 바랬다는 것은 좀. 이곳에서 바라 본 2017년 9월 3일 일요일 오후 1시반의 하늘 모습이다. 31. 가을 단풍이 멋지다는 전망대에서 내려오다 기어이 폭포 하단으로 가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래 친절하게 길을 터 놓았는데 마음 급한 산객은 그 새를 못참고 금줄을 넘어 내려왔다. 3단의 폭포 물줄기는 흐릿하지만 위용은 지리산에 찾기 힘든 모습이다. 32. 새재갈림길. 직진하면 유평리. 우리는 좌회전하여 윗새재로 간다. 33. 조개골을 건너는 출렁다리 아래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이곳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그렇게 1박2일의 짧은 기간에 마음 속 깊이 넣어둘 추억을 간직하고 마무리 한다. 댓글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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