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철학자를 꼽으라면 대다수 철학 연구자들은 이마누엘 칸트(1724~1804)를 들 것이다. 칸트가 철학사에서 이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그만큼 혁명적이었고 근대 세계에 끼친 영향도 막강했다. 하지만 칸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어로 전모를 드러낸 적이 없다. 칸트 철학이 수입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온전한 ‘칸트 전집’이 나오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철학적 빈곤과 무관심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일찍이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한국인을 ‘철학 없는 국민’이라고 매몰차게 평가하면서 내린 다음과 같은 진단도 이유가 없지 않다.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들이파는 얼이 모자란다.” 함석헌의 이 진단에서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을까.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칸트 전집 번역을 놓고 우리 철학 연구자들이 벌인 최근 논쟁은 너무 늦게 시작된,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한겨레> 지면과 온라인에서 10여차례 계속된 논쟁은 칸트도 놀랄 만큼 격렬했다. 쟁점은 칸트 용어, 특히 ‘트란스첸덴탈’이라는 핵심어를 ‘선험적’으로 번역할 것이냐, ‘초월적’으로 번역할 것이냐에 있었지만, 논쟁의 뿌리는 한국어와 칸트 철학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닿아 있다. 논쟁 참여자 김상봉의 발언은 이 논쟁의 승패를 떠나 깊이 새겨둘 만하다. “시인과 철학자는 모국어를 지키고 가꾸는 정원사들이다. 언어를 가능한 한 아름답게, 가능한 한 정확하게, 가능한 한 풍부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깊이 있게 가꾸고 다듬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와 시인의 으뜸가는 사명이다.” 칸트 번역은 한국어를 넓히고 높이는 과정이자 한국어에 깃든 철학의 씨앗을 싹틔워 키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