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예배 렘7:1-7, 롬12:1-2
프랑스 루이 14세는 5살에 왕위에 올라 72년간 집권했던 왕입니다. 당시에 ‘페넬론’이라는 궁중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정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예배당 안에는 설교자 혼자만 있었습니다. 루이 14세 왕이 “오늘은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고 묻자, 설교자가 대답하기를 “임금님, 오늘은 임금님께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아니, 왜 예배 참석을 안 한다고 광고를 하였소?” 설교자가 대답하기를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고, 누가 임금님께 아첨하려고 오는지를 친히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배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려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요, 그런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아벨과 같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령한 은혜와 복을 받고 누리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은 만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인간의 기분에 좌우되는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인간의 진실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예배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것을 외면하고 우리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참된 축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도의 진실 된 예배가 가장 큰 축복의 통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예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신령과 진리로 산제사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예배는 구약에서 '솨하'라는 말로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으로, '숭배', '순종'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 대상자에 대한 복종과 경의의 표시로 엎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프로스퀴네오’ 누구에게(프로스), 입맞추다.(퀴네오)의 뜻으로, 높은 분께 경의를 표하는 것이요, 동시에 깊고도 친밀한 사랑을 표하며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온 마음을 기울여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자세가 따라야 합니다.
신약 본문 롬12:1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했습니다. 영적인 예배란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그의 ‘법철학 강요’ 서론에서 “이성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가장 이성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이라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영적이란 말은 이성적이고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입니다.
또한 영적이란 말은 ‘합당한’, ‘옳바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최상의 분에게 최상의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의 최고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드릴 때에도, 시간을 드릴 때에도, 물질을 드릴 때에도, 재능을 드릴 때에도 하나님이 최우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를 드리는 것이 영적이라고 한다면 산제사란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채로 드리는 제사요, 생활 전체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배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시간에 빠지면 안 됩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예배드리는 자는 반드시 제물을 준비하여 자신이 직접 제사장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 제물을 가지고 대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몸이 반드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예배가 되려면 몸만 와서는 안 됩니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의 모든 지체를 동원하고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만 와 있어도 안 되고, 마음만 있어도 안 되고, 영혼만 있어도 안 됩니다. 몸은 왔으나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있다면 예배드릴 때 하나님 생각보다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은 있으나 몸은 예배드리는 곳에 와 있지 않다면 진정한 참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영혼을 담고 있는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영적인 예배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에는 *죄를 자복하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결한 신부의 마음이 있습니다.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소원의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우연히 기차 안에서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마쳤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이봐, 오랜만에 만나고 했으니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오늘 하룻밤을 멋있게 지내세." 이어 그 친구는 그날 밤에 저지를 무서운 죄악에 대한 계획을 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있던 젊은이가 대답하기를 "나는 그런 짓을 할 수 없고 또 하기도 원치 않아. 네가 알다시피 나의 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분이고 존경을 받는 분이 아닌가? 네가 말하는 대로 내가 그런 짓을 하면 내 아버지에게 비난이 돌아가게 되니까 내 아버지한테 불명예스러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아"하고 거절했습니다. 육의 아버지 보다 훨씬 더 큰 사랑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는 세상의 어떤 유혹이 와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령과 진리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따르는 예배입니다.
구약 본문 렘7:2-3에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배드리기 위해 성전에 온 유대인들에게 예레미야는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삶 가운데서 살아가는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역시 사 1:16-17에서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했습니다.
신약 본문 롬12:2에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악한 세대의 풍조를 따르는 삶으로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기에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우리가 몸으로 참여하는 예배이지만 그 참여한 몸이 산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할 행동규범이 따라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삶이 반듯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품위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와 가정과 사회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서지 못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장의 거리에서도 정직과 올바름, 공장에서도 정직과 올바름, 사회생활에도 진실 되고 올바르게 살 때 기독교 국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 받는 나라가 되고, 그리고 세계 선진국이 되어 세계가 우러러보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어느 분의 짧은 글에 이런 소원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만든 나사 못 하나, 단추 하나라도 세계 시장에서 오래 그 신앙과 양심의 보증 수표처럼 믿어지는 그런 민족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직한 물건을 만드는 나라, 사랑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도문입니까?"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면 나라나 민족이나 교회나 종교도 예외 없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인 죄인 줄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인 줄 알면서도 대체로 죄를 이길 능력이 없어서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 충만 받는 일입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하면 여러 가지가 변화가 일어나지만 무엇보다 거룩한 꿈과 환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보게 되고, 자신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꿈을 생각하고,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넘칩니다.
물질과 자원과 인맥은 부족해도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고, 그 꿈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누구든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력, 재력, 학력, 배경, 경력 등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로마를 이겼습니까? 성경을 보면 그 이유가 한 마디로 압축됩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중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한계를 극복하며 사는 것이 최대의 은혜입니다. 자기 자신을 주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바가 된 소중한 사람이요,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독일 군인에게 있는 양심이었습니다. 그 양심을 없애려고 독일 군부는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3만 명이 넘는 수용소에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은 아무 데나 배설을 했고, 배설물과 어우러진 짐승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며 독일군의 양심은 사라져갔고, 인간다움이 없는 인간이 짐승으로 보이면서 살인은 점점 쉬워졌다고 합니다.
그때 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대개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매일 4시 반이 되면 수용소에서 한 사람마다 따뜻한 물 한 컵씩을 제공합니다. 그것을 받으면 조금 먹고 나머지 물을 아껴 세수를 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남은 물을 조금 사용해서 옷 조각을 가지고 이빨을 닦습니다. 그리고 수용소 안에서 발견한 유리병 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를 합니다. 내일 죽어도 인간다움은 잃지 않겠다는 몸부림을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음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성도가 성도다움을 포기하도록 공격하고 미혹합니다. 죄 짓게 만들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어 성도다움을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살게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만듭니다. 그 공격과 미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끊임없이 성도답게 살다가 복 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준비된 예배입니다.
준비된 예배란 희생이 따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이미 시간의 희생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물질의 희생입니다. 마음을 드리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버리는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인 산제사드림은 세상에서 육신의 소욕을 버리는 희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에게는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려면 무엇으로든지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희생의 제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대로 드려진 예배가 됩니다. 그래서 봉사가 중요합니다. 헌신이 중요하고, 헌금이 중요하고, 주님과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신 사랑의 희생,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희생의 사랑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이 될 때 자신의 희생은 주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희생이 억지로 하는 희생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뿐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빚 진자의 마음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하게 되어 하나님이 받으시는 산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매일 가는 학교라도 준비가 필요하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라도 준비가 필요하다면 적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준비가 없다면 그 예배는 가인의 제사처럼 실패한 예배가 되고 맙니다. 철저한 준비는 하나님께 드려질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큰 은혜로 넘치는 예배가 됩니다.
또한 준비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방해를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는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거리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예배를 잘 드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꼭 사단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런 손님이 찾아오거나, 급한 일이 생기게 되거나, 피곤이 몰려와 잠이 쏟아지거나 하여 예배자의 마음을 빼앗아가려고 걱정거리를 만들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드리려고, 십일조, 감사헌금을 준비해 놓았는데 갑자기 급하게 쓸 일이 생겨 드리지 못하게도 합니다. 몸은 교회에 와 있는데 혹시 내가 가스 불을 끄지 않고 온 것은 아닌가? 아니면 문을 잠그지 않고 온 것은 아닌가? 등등의 다른 생각으로 예배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게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제단에 올려놓았는데 솔개가 와서 그 제물을 가져가려고 방해를 할 때 솔개를 쫒아버림 같이 사단의 방해를 쫒아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방해를 극복하고 예배드리는 자가 산제사를 드리는 예배 성공 자가 됩니다. 그런 자들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습니다. 몇 년 전에 서해안에 낚시를 갔다가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배가 뒤집혀서 정부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과장급 몇 사람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날에 낚시를 가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모 교회에 다니는 초 신자였다고 합니다. 아내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남편이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아내의 권유에 의해 등록하고 교육을 받아 세례를 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주일날에 부처 안에 동료 과장들이 낚시를 가자고 해서 아내에게 가겠다고 하니까 아내가 남편을 보고 ‘여보. 오늘은 세례 받아야 되는데 당신 안가면 안돼요’ 그렇게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별난 부인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 동료들은 낚시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으로 배안에 있던 동료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 남편도 아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 날 주일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었습니다. 주일날은 어떤 장애물이 생겨 방해를 하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에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엉뚱한 곳으로 가다 보면 죽음 후에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전혀 생각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이를 갈고 슬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그것이 곧 신앙의 성공이요, 인생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예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산제사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따르는 예배입니다.
◒.준비된 예배입니다. 아멘.
<성산교회 원로 목사.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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