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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도를 온전케 하는 말 (시39:1-9, 약3:1-12) / 호현낙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0. 21. 17:17

성도를 온전케 하는 말 시39:1-9, 약3:1-12

이조시대 초기에 황희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습니다. 그가 암행어사의 명을 받아 남쪽을 향하여 내려갈 때의 일이었습니다. 때는 마침 모내는 철이라 들판에는 사람들이 많이 흩어져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곳을 지나노라니까 늙은 농부가 황소 한 마리와 검정 소 한 마리를 부려서 논을 갈고 있었습니다.

황 어사는 잠시 동안 논가는 구경을 하고 있다가 늙은 농부를 향해서 물었습니다. "황소와 검정 소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잘하오?" 늙은 농부는 이 말을 듣더니 일손을 놓고 황어사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와서는 황어사의 귀에다 대고 가만히 귀속 말을 했습니다. "황소가 일이 잘하오."

황어사가 농부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에 그처럼 수선을 떨며 귀속 말까지 하다니, 황어사가 또 다시 입 을 열었습니다. "그만한 일을 가지고 귓속말을 할 것까지 뭐가 있단 말이오?"

늙은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두 마리의 소가 다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소가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한다면 다른 소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 어사는 늙은 농부의 말을 듣고, 황소의 기분까지 살피는 농부의 말에 크게 깨달아 죽을 때까지 말을 조심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이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합니다.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 말이 덕이 되고, 은혜가 되고, 격려가 되고, 향기가 되는지, 아니면 화가 되고, 상처가 되고, 독이 되고, 악취가 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합니다. 신약 본문에서 야고보는 행함에 따른 교훈으로 말에 실수하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2-3절)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을 쏟아놓는데, 말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 말”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혀의 말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짖습니다.

신약 본문 약3:3-4에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했습니다. 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말이 재 멋대로 방자히 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아무리 거대한 배일지라도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말은 그만큼 중요하여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언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부정적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수치심을 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죄책감을 배우고 관대함 속에서 자란 아이는 인내를 배우고, 격려의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동경대 ‘쓰노다’ 교수는 미국인은 창의력이 뛰어나고 일본은 모방력이 뛰어난데, 그 이유는 영어와 일본어가 가지고 있는 언어구조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신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추신경입니다. 중추신경은 뇌에서부터 허리에까지 이어지는데 신경외과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중추 신경 중에서도 언어중추신경이 인간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말이 행동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하는 일은 잘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와 "하는 짓 보니 삯이 노랗다. 네가 그 꼴로 장래 뭘 하겠노?" 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의 삶이 다릅니다.

자살한 청소년들 10중 팔구가 그 부모로부터 "너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나가 죽어라."라는 말을 한번이라도 들었던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 교인 중에 한 어머니가 아들이 집을 나가 괴로워 하다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께 여러 가지로 그 마음 아픈 것을 털어 놓는데 나중에는 하나님은 내 기도는 듣지도 않는다고 원망까지 합니다. 목사님께서 물었습니다. 혹시 전에 아들이 속 썩일 때 차라리 없어져버리라는 그런 말한 적은 없습니까?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 속 썩일 때야 그런 말 많이 했지요. 차라리 나가서 죽어버리라는 말도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 아들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그런 말한 것부터 먼저 철저히 회개부터 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잠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되었느니라."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그의 언어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말은 행동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기 이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혼돈스럽고 어두울 때 긍정적이고 복된 말을 하면 그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빛이 나고 정리가 되어 집니다. 벧전 3:10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인생살이가 60-70세에 비참하게 되는 것은 젊어서 그가 너무 악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복된 말을 하게 되면 복된 환경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잠언 18:21을 보면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특히 복음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내가 주를 믿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나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나이다.’ ‘나의 죄를 사하실 분은 오직 나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 밖에 없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39:7) 라고 고백하는 언행이 우리를 생명의 길, 의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농담으로 여기거나, 헛튼 말로 듣지 않고 믿음으로 들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신약 본문 약3:7-8 에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했습니다. 모든 짐승이 다 길들여지는데 혀는 길들여지지가 않습니다. 개 길들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커스 같은 것을 보면 호랑이, 사자, 코끼리, 기린, 곰, 돌고래 등 등 많은 동물들이 다 길들려 집니다. 허리우드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면 동물 쇼가 있다고 합니다. 개, 돼지, 닭, 고양이, 말 그대로 온갖 동물들이 나와서 쇼를 합니다. 이처럼 모든 동물들이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혀는 길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잘 나가다가 결정적 순간에 잘못된 말들이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던 입술로 시장 바닥에서는 사람 붙들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이런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의 혀입니다. 온천에서는 찬물이 안 나옵니다. 찬물 나오는 샘에서는 뜨거운 물 나오지 않습니다. 나무도 무화과나무는 평생 무화과 열매만 맺습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만 맺습니다. 감람나무는 감람 열매만 맺습니다. 절대로 다른 열매 맺지 않습니다. 그런데 혀만은 제멋대로 입니다. 이 말 했다, 저 말 합니다. 샘은 한 구멍으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혀는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그 입으로 저주가 나옵니다. 그만큼 혀가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하는 혀가 작은 것이지만 그 위력은 무엇보다 크고 무섭습니다. 본문도 말은 말의 재갈과 같고 배의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말의 재갈이나 배의 키는 작은 것이지만 전체를 움직입니다. 혀의 말은 온 산을 태우는 불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죽이는 독이 혀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혀로 잘 못 말하면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이 너무 어렵고 고달프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면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함부로 말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말에 대해 하나님은 민수기 14:27,28에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대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가 말한 그대로 내가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죽고 싶다고 그렇게 불평 원망하니 죽여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흔히 보면 쉽게 죽고 싶다고 하는데 그런 말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왕하 2:20절 이하에 여리고에 물이 좋지 않아 짐승도 죽고 곡식도 결실하지 못하여 기한 전에 낙과하자 물 근원에 소금을 가지고 가서 던지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고치라고 말하자 물을 고쳐 다시는 짐승이 죽거나 곡식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근원입니다, 근원을 고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고, 계속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고대의 태국 왕들은 처벌해야 할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흰 코끼리는 태국에서 신성시 여기는 동물입니다. 왕으로부터 흰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코끼리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했습니다. 좋은 것을 먹이고 비싼 장신구도 달아주고 병이 생기지 않도록 노심초사했습니다. 결국 흰 코끼리를 받은 신하는 코끼리에 돈과 정열을 다 쓰면서 인생을 탕진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일종의 벌이었습니다.흰 코끼리처럼 좋은 것을 받아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듯이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성경을 통해 끝없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말씀을 이룰 힘이 생깁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때 악독의 말, 패역한 말, 불신앙의 말,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 헛되고 무익한 말, 거짓 말, 더러운 말, 불평과 원망의 말, 저주의 말을 피하고, 입으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선한고 은혜로운 말을 하고, 화평의 말, 진실한 말, 경우에 합당한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때로 사람 앞에서 침묵하고 하나님께만 입을 열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시39:1에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성도는 특히 악인 앞에서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모반으로 피신할 때 시므이가 저주를 해도 말로 대항하지 아니하고 많이 참았습니다. 이는 악인 앞에서 혀로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몸부림치는 다윗의 노력의 하나입니다. 악인과 함께 악담을 주고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함께 더러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잠언기자는 말하기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잠 11:11) 하였습니다. 사람의 복록은 그 입술에 있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 앞에서 말을 삼가 하여 함께 망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삼하 16:5-14).

성도는 악인과 같이 대항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입을 열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시39:3-4 "내 마음이 내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사람이 화가 잔뜩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자제력을 상실하여 그만 화를 내고 악담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사람 앞에 토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화를 냉각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다윗은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또한 연약함도 알아서 말하는 것을 삼가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이 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행위의 조심은 무엇보다도 말에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이 올 때도 악인 앞에 침묵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로,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시므로 강하고 담대하게 되고,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동물원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싸움을 하였습니다. 호랑이들의 우두머리를 정하는 수컷끼리의 싸움입니다. 싸움에서 이기면 모든 암컷 호랑이를 거느리며 좋은 먹이와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마침내 결전이 벌어졌습니다. 한 마리는 우렁차게 포효하며 덤벼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마리는 침묵하며 이에 맞섰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렁차게 포효하던 호랑이는 용맹스럽게 싸울 것 같더니 도중에 그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크게 소리 지르는 호랑이일수록 약한 놈이며 싸움에 진다고 합니다. 상대가 무섭기 때문에 괜히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진정 강한 호랑이는 오로지 침묵과 위엄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고 합니다. 성도가 악한 자를 대항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진정 강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경우에 합당한 침묵은 승리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침묵으로 세상을 이기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침묵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말의 침묵, 욕망의 침묵, 생각의 침묵입니다. 첫째는 완전합니다. 둘째는 좀 더 완전합니다. 셋째는 가장 완전한 것입니다. 침묵하여 성숙함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침묵의 훈련은 알맹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본문 시39:9에는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구약의 증언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침묵을 말씀합니다. 사42:2에는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라고 합니다. 시53:7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에 간음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치려고 하는 무리를 만났습니다. 이 무리들은 여인을 끌고 예수님께 와서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으로 흥분한 군중을 가라앉히기 위함이었습니다. 눅23:9에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헤롯이 값싼 호기심으로 기적을 볼까 하여 물을 때에 아무 대답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고통스럽게 매달려 계실 때에 조롱하는 사람들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명해 보이거나 대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침묵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고난의 종으로서 침묵입니다. 중상모략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이었습니다.

불이 타다가도 땔감이 없으면 불은 꺼집니다. 침묵은 갈등을 잠재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독일 격언에는 “중상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무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 격언에는 “잠자코 있는 것도 하나의 대답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때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즉 침묵은 가장 좋은 대답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주님께만 입을 여는 성도가 됩시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 말”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혀의 말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짖습니다.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때로 사람 앞에서 침묵하고 하나님께만 입을 열어야 합니다. 아멘.

<2018. 10. 18. 성산교회 원로 목사.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땅끝 사랑 선교회
글쓴이 : 호현낙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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