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과 안나의 신앙 눅2:25-39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는 의학을 공부한 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적인 진료를 했습니다. 그는 80회 생일을 맞았을 때 몇 가지 생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천하를 얻은 기쁨이었다고 감사했습니다. 둘째는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민족 감정에 의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의 기쁨에 비교하면 위의 기쁨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죽음의 세계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대림절 마지막 주일을 맞아 본문을 중심으로 “시므온과 안나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되었지만 초림의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재림에 대한 말씀 역시 성경에 여러모로 증거하고, 그 징조를 말하면서 깨어 주님 맞을 준비해야 할 것을 경종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초림의 주님을 맞이한 시므온과 안나의 신앙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시므온의 신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이므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혼란기였습니다. 도덕과 윤리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의롭고 경건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옛말에「난세에 영웅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진정한 애국자를 찾아볼 수가 있고, 믿음도 핍박과 고난을 당할 때에 진실 된 참 신자를 찾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의 의인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노아의 시대에 인간의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의인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고 그의 일가족을 살리셔서 그들을 통하여 인류를 번성케 하신 것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신앙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을 만나도 변함없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는 자들의 본이 됩니다. 욥의 신앙이 그러한 신앙입니다. 욥1:1에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사는 의인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또한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사가랴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아내 엘리사벳과 사이에 오래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섬기다가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내가 잉태하리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의 말대로 의로운 그를 통해 세례 요한이 태어나게 되고, 그를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귀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2에 고넬료는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고넬료에게 사자를 보내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다”고 격려하셨습니다.
반면에 창세기 18장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고 하실 때에도 의인을 찾으셨습니다. 그 성의 멸망을 면하게 하려고 간절히 중보기도를 드리는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지만 의 인 열 명이 없어서 결국 유황불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의 신앙을 본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약속하신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 되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나라를 로마에서 구원하여 줄 혁명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진정한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왜 정작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극히 적은 소수의 사람들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보지도 못하고, 믿고 영접하지도 못했을까요? 왜 오히려 메시야 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시므온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우리의 죄악을 사하고, 영혼을 살리며, 구원의 길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실 진정한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생각과 안목을 가지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를 독립시키고,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할 강한 민족이 되게 할 분, 물질적으로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어 세상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권세와 힘을 가진 메시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런 기대를 많이 가졌고, 가롯 유다는 끝까지 그런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하여 배신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한 때 주님을 따르다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에게 우리의 임금이 되어달라고 요청하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여 떠난 무리들도 그런 기대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되 시므온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받아 바로 알고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3.시므온은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성령이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생활로나 믿음으로나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모하였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함께 하십니다. 시므온은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 아무도 몰라도 이 시므온은 만민의 구세주 예수께서 탄생하실 것을 알고 기다렸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년, 2년이 아닙니다. 시므온은 나이 늙어 허리가 꼬부라져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때는 좌절과 실망도 했을 것이며 또 의심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이라야 합니다. 오늘날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들이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또 다시 오실 재림 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시므온은 정결 예식의 날에 무모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왔을 때 아이를 안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 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다음과 같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본문 31절 이하에서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 이다." 라고 하였고,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 믿고 영접하는 자의 만민의 구주라는 것입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온 세상 열방의 구원의 빛, 소망의 빛이 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가 되신 분이요, 사단과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기에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구원함을 입은 자들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인생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시므온처럼 늘 성령의 인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에 안나의 신앙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1.안나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본문 36절 말씀에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했고, 38절에 “예루살렘의 구속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해서 말하니라.”하였습니다. 여 선지자 안나는 성령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의 구속함을 바라는 모든 백성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였습니다. 안나는 불철주야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84년 동안 수절을 지킨 사람입니다. 출가해서 즉 결혼해서 남편과 같이 살아온 기간은 불과 7년밖에 안되고 과부가 되어서 84년 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유혹과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나긴 세월을 잘 지내왔습니다. 84년 동안 수절을 하였다는 것은 윤리적이나 도덕적인 것만이 아니라 신앙과 믿음의 절개도 지켰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신앙과 믿음을 자꾸만 배신합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 도를 깨닫고,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 받고, 많은 은혜와 은사를 맛보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또는 주님을 배신까지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직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산 안나의 신앙이 얼마나 귀합니까? 안나 선지자가 예언한 예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 하시는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시는 분입니다. 어떤 젊은이들이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두 사람은 소문난 잉꼬부부였습니다. 그들은 30년 동안을 함께 살면서 자기들의 말대로라면 단 한 번도 서로를 미워할 만한 부부싸움은 한 일이 없었다는 그런 부부였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낳아 곱게 잘 길렀습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주위에서 전도할 때는 부부가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예수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면서 거절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늘 입버릇처럼 우린 한 날 한 시에 함께 죽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31년째 되던 어느 늦가을 오후 심장마비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을 남겨둔 채 남편이 먼저 간 것입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그녀의 반석이 무너진 것입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그녀는 충격과 슬픔으로 자리에 몸져눕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준비해두었던 수면제를 먹고 남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긴 채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가족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전도를 받게 되었는데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영원하신 반석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31년 동안 믿고 의지했던 그녀의 반석이었던 남편은 그를 떠나갔지만 그 대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이 그녀 곁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 위로와 화평과 평안함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불에 타버리는 반석은 반석이 아닙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반석은 반석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영원히 의뢰하고 믿을 수 있는 반석은 영원한 반석이시며 만세 반석이신 나의 주 예수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2.안나는 항상 성전을 가까이 하며 살았습니다.
37절에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했습니다. 남편은 그녀의 곁을 떠났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그녀를 떠났습니다. 그러했기에 7년간의 행복이 그녀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주의 품인 성전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서 살았습니다. 많은 고령에도 힘과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사랑은 잠간입니다. 그래서 안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성전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시84:1-2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했습니다. 시84:10-11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장막 시대에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들이 장막을 칠 때 성막을 중심으로 치게 했고, 그 입구를 성막을 향하게 했습니다. 성전 중심으로 살라는 교훈입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성전 중심으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믿음생활 하다가 성전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과 멀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도는 성전과 가까워야 합니다. 성전과 멀어지면 자연히 하나님과도 멀어집니다. 그래서 한두 번 빠지게 되면 교회와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면 교회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지고, 교회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지면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틈을 타게 됩니다. 그러면 시험이 빠지게 됩니다. 몸은 집에 있고 들에서 일을 하면서도, 직장에 있으면서도 마음과 생각은 항상 주님의 성전을 향하여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늘 성전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안나는 주야로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37절). 당시 유대 사회의 조혼 풍습에 비추어 볼 때 안나는 14세를 전후하여 결혼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안나의 나이는 14+7+84=105세쯤 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그녀는 성전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안나는 기도할 뿐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38절에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녀는 항상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섬겼는데, 그 마음 중심에는 감사함이 늘 있었습니다. 여기 '감사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도몰로게이토'는 '찬양하다', '감사하다' 등의 뜻 외에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하다', '무엇인가를 믿음으로 고백하다' 등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안나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신앙 고백적인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한 안나 선지자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시므온의 송가(頌歌)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안나는 마침내 그토록 오랫동안 성전에서 기도하며 섬긴 보상을 풍성히 받았습니다. 그것은 메시야를 만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를 만나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교회에서 목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인 중에 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마다 언제나 그날 새로 등록한 초신자 스무 명의 명단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또 모든 시험을 이기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생 기도를 했습니다. 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스펄전 목사는 장례식을 인도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는 나의 가장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모두 다시 오실 주님을 깨어 근신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초림 때의 시므온처럼 성령 안에서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로, 안나처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성전을 가까이 하며 항상 깨어 감사함으로 기도하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8. 12. 21. 성산교회 원로목사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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