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2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호명된 직후 배우 송강호와 포옹하고 있다. 칸/AFP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호호 콤비’의 인연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둘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주요 작품들을 함께하며 환상의 호흡을 뽐내왔다.
둘이 첫 인연을 맺은 건 <살인의 추억>(2003)에서다. 장편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 흥행 참패 이후 절치부심한 봉 감독은 두번째 장편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며 당대 인기 배우 송강호를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한 캐스팅 비화가 있다. <제이티비시> 영화 예능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서 변영주 감독은 “무명배우 시절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이 조감독을 맡았던 영화의 단역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당시에 봉준호가 그에게 ‘언젠가 꼭 함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직접 전해 송강호를 감동시켰다”고 전했다. 그 인연 덕에 <살인의 추억> 캐스팅이 성사됐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바로 다음 작품에서도 둘은 함께했다. 한국형 괴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괴물>(2006)에서 송강호는 괴물에게서 딸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연기하며 영화를 이끌었다. <괴물>은 1301만 관객을 모아 봉 감독 최고 흥행작이 됐다.
이후 배우 김혜자로부터 영감을 얻은 영화 <마더>(2009)를 연출한 봉 감독은 그 다음 영화에서 또 다시 송강호와 손을 잡았다. 다국적 프로젝트로 추진한 <설국열차>(2013)에서 마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와 송강호를 투톱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송강호는 할리우드 스타들에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며 제 구실을 해냈다.
둘이 <기생충>으로 다시 만난 건 <설국열차> 이후 6년 만이다. 송강호는 지난 4월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개인적으로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받았을 때 느낌과 가장 비슷하다. <괴물>과 <설국열차>는 또 다른 장르적 즐거움을 줬는데, 이번 영화는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의 ‘봉준호의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라 할 만하다”고 추켜세웠다.
봉 감독은 “송강호 배우는 제가 영화를 찍을 때 더 과감해지고 어려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의지가 되는 선배님”이라며 “축구는 11명이 뛰지만, 메시나 호날두는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도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규정해버리는 강호 선배님이 바로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이에 송강호는 “봉 감독과 안 지 20년이다. 인간적인 믿음도 있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비전에 늘 감탄한다”며 “제가 메시는 아니지만, 파란 잔디밭에서 마음껏 축구 하듯 뭘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이가 봉 감독”이라고 맞받았다.
둘이 서로 배려하는 훈훈한 장면은 이번 칸 시상식에서도 이어졌다. 시상식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영화이고,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나의 동반자인 송강호씨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마이크를 송강호에게 넘겼다. 이에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모든 대한민국 배우들에게 이 영광을 바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봉 감독의 장편영화 7편 중 4편을 함께하며 한국영화 역사를 새로 쓴 ‘호호 콤비’가 앞으로 또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이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영화 팬들이 주목할 듯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