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한나의 기도와 그의 고백! (삼상 2:1-1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2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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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와 그의 고백! (삼상 2:1-10)

 

  한나는 그 유명한 사무엘의 어머니입니다. 옛말에 '범이 범을 낳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언제나 위대한 부모가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입니다. 쓰러져 가던 이스라엘을 바로잡았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의 배후에는 '한나'라는 아주 경건하고도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우선 우리가 그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는 사사시대 말기였습니다. 사사 삼손이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에는 이렇다할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틈을 타서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던 블레셋은 점점 강성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점점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1:1절에 나오는 엘가나는 사무엘의 아버지입니다. 2절에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엘가나는 두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한나가 본처입니다. 그런데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첩으로 브닌나를 두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세 가지 수모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여자가 머리 빠지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자 대머리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흉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여인의 수모입니다. 둘째는 결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독신녀들이 많은 시대니까 요즘에 이것은 큰 흉은 아닙니다. 셋째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전통에는 여인들이 결혼을 해서 3년 안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남편을 다른 여인에게 양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 한나라는 여인이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결혼해서 3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양보했습니다. 브닌나라는 자신의 몸종을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평소 이 몸종이 아주 순종을 잘하고 착하고 양순해서 마음놓고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이 여인이 마침내 남편의 아이를 잉태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참하고 양순하게만 보이던 몸종이 갑자기 포악스러워지고 방자하고 도도해지기 시작하는 데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본처가 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첩이 본처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한나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한나가 괴로워합니다. 고민을 합니다. 매일같이 눈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참 착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는 아내에게 가서 1:8절을 보면 이렇게 위로를 합니다. '여보, 울긴 왜 울어.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하는 거요. 내가 있잖아.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아. 울지 마' 이 남편은 참 신사적이고 착한 남편입니다.
  한나는 착한 남편으로부터 사랑도 받았고 극진한 위로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1:10절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오늘 삼상2:1절에 시작도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입니다. /할/

 

1. 그렇습니다. 한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아멘!/


  ①한나의 기도의 간절성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요소입니다. 기도에는 무엇보다도 간절성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한나가 성전에 앉아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를 했던지 성경을 보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음성도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이 그만 술 취한 줄 알고 큰 소리를 칩니다. 1:14절을 보면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합니다. 한나는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바람에 '술 취한 것같이 기도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할/
  이렇게 보면 정말 애절하고 간절한 기도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그런 곳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주 진지한 대화는 조용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데이트하는 청춘 남녀들을 보십시오. 시장 바닥 같은 곳에서 데이트하지 않습니다. 아주 조용한 곳에 둘이 앉아서 말도 하지 않습니다. 둘이 눈만 마주하고 앉아서는 얼굴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굳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도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그것이 기도입니다. 한나는 지금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홀로 앉아서 아주 심취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멘!/


  ②기도의 확실성, 한나의 기도는 그 목적이 아주 분명한 기도입니다.
  그냥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1:11절을 보면 '나에게 아들을 주십시오. 주시기만 하면 그를 평생 나실인으로 키우겠습니다.' 여기 나실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으로 키우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병들어도 약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평생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됩니다. 또 술을 마셔도 안 되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거나 모아서도 안 됩니다. 이 말은 어머니가 죽어도 가서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한나는 아들을 낳아도 자신이 죽은 다음에 와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좋으니 '아들만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기도의 목적이 분명합니까?
  우리들의 기도에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목적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냥 구하기는 하는데 목적이 없습니다. 왜 돈을 달라는지 그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한나는 아주 분명했습니다. '아들을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치겠습니다.' /할/ 우리도 이런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아멘!/


  ③기도의 약속성, 한나의 기도는 서원한 약속을 잘 지킨 기도입니다.
  결국 한나는 기도 응답을 받아서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을 낳아서 젖을 뗄 만큼 키웠습니다. 그러니 그 얼마나 귀한 아이입니까? 그래도 이 여인은 약속대로 젖을 때자마자 아이를 데려다 엘리 제사장에게 맡깁니다. 이 아이는 이미 내 아이가 아닙니다. 내 품에 끼고 살 수 있는 그런 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이로 성전에서 자라도록 보내 버립니다.
  그리고 아들이 보고 싶으면 일 년에 한 번씩 제사 일에 가서 그것도 아이가 마음이 산란해질까 봐서 가까이 가서 안아 보지도 못하고 먼발치서 자라나는 아이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모습입니까?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급할 때는 우리들이 얼마나 약속을 잘합니까? 별 약속을 다해서 기도 응답을 받고 문제가 풀리면 대부분은 약속 이행을 하지 않습니다. 병만 고쳐 주시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다고 해놓고는 병이 나으면 언제 그렸냐는 식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그러니까 서원을 했으면서도 간단하게 잊어버리고, 약속하고서도 간단하게 어겨 버리고, 간단하게 번복하고 그럽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 점에 아주 분명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아주 귀한 아이였지만 서원대로 아이가 자라자 하나님께 갖다 바칩니다. 그리고 아이가 보고 싶으면 가까이 가서 안아 보지도 못하고 먼발치서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만 보고는 눈물지으면서 그냥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엘리가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한나를 불러 놓고 축복 기도를 해줍니다.
  2:20절에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축복해 줍니다.
  그랬더니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후에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를 바치고 다섯을 얻었습니다. /할/ 바로 이런 생활을 가리켜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 신앙은 고백입니다. 그의 고백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본문은 진정 마음이 슬픈 여자의 기도를 기억하사 아들을 허락하신 여호와께 그 아들 사무엘을 영원히 하나님께 드린 후, 한나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위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신앙은 고백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믿고, 고백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이 결정됩니다. 한나의 신앙은 그의 고백으로 자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믿는다'는 것이 한나의 고백이며 본문의 내용입니다. ▶한나의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①나는 하나님 때문에 즐겁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
  '내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한나는 아들을 주셔서 즐겁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니까 기쁘고 즐겁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계신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습니까? 부모 없는 고아들의 아픔을 아십니까?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것만으로, 아내가, 형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복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지금 한나는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친 다음에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들을 주셨고, 아들을 잘 키워서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옛날에는 사실 태어나서 잘 자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잘 죽었습니다. 한나는 그 자식을 위해서도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기도대로 사무엘은 잘 자라서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여러분 한나의 즐거움이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구나,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 사실 때문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기도의 맛을 본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합니다. 한나는 기도의 맛을 안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한번 주시는 것을 보니 또 주실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그 뒤에 하나님께서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셨습니다(21).
  한나의 즐거움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은 늘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아들이 있고 없고 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큰 기쁨의 사건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도는 여호와가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즐거움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이유는 마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어도 마음이 즐거워야 소화가 잘되고, 구경을 해도 마음이 편해야 즐겁습니다.
  신앙생활도,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도, 부모와 형제들을 사랑하고 싶은 심정도 마음에서 울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잠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할/
  우리가 산다는 것,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키우고 가르치는 것, 돈 벌고 사업하고 성공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즐거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한나는 즐거움의 우선 순위를 먼저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아들을 낳게 해주신 것도 즐거웠지만, 하나님 그분이 계시다는 그 자체가 즐겁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주님이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⑴'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1).
  그 당시 여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면 멸시받고 천대받는 시절입니다. 그 사실에 주눅이 들어 기도조차 큰소리로 못하고 억눌려 살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한 한나에게 하나님이 자식을 주심으로 머리를 들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여기 뿔은 이것 달린 동물이 자신의 머리를 높이 쳐들고 힘을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다닌다는 점에서 힘, 능력, 권위, 자부심, 자랑 등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한나에게 자식을 주어, 기를 피고 살게 해 주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해주시고, 가슴을 펴게 하시고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믿/
  사람들이 사는 처지는 천태만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 지은 과거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업의 실패로, 육신의 질병으로, 어떤 환경이나 처지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나의 뿔을 높이 들어주신 것처럼,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예수 안에, 은혜 안에,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사랑 안에, 권세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머리를 높이 들게 하시고 당당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며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주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기죽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기쁘게 해 드리고 믿음으로 삽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머리를 높이 들게 하시고 떳떳이 하나님을 바라면 이웃을 바라보며 살게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할/
  ⑵주의 구원 때문에 즐거워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하).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나의 신앙의 높은 차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아들을 낳았다든지, 몸이 건강하다든지, 자신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든지 하는 일차적인 조건에서 기쁨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여러분! 기쁨 가운데 제일 큰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기뻐했고 감격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기쁨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옷과 잠자리를 주는 것이 기쁨이고, 병든 사람에게 치료해주는 것이 기쁨이고, 죽어 가는 사람에게 살려주고, 죽을 죄인을 용서해 주는 대 사면의 은혜가 최고의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로 허물로 죽어야 마땅할 존재들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 구원의 길은 간단합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몇 천만 원, 몇 억씩 갖다 주는 것같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롬10: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산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기쁨은 천당 가는 기쁨입니다. /할/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구원에 감사, 감격하십시오,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에게는 생활 속에서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한나는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 속에는 생활 속에 구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나는 비웃는 사람들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자식을 주심으로 원수들 앞에서 한나의 입이 크게 열렸습니다. 나중에 웃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도 잔치의 상을 베풀어주십니다. 시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할/
  다니엘도, 다윗도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오늘도 구원의 확신 속에 사는 성도들에게 생활의 구원이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쩌다가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지 자다가 일어나서도 감사, 감격할 뿐입니다.
  ⑶하나님은 반석이기 때문에 즐겁다고 고백합니다(2절).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나이다.' 반석은 견고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변치 않는 분이시며, 든든한 분이시며,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히13: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멘!/
  변덕쟁이와 함께 살고 일한다면 그 인생은 고달프고 불행합니다.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은 '조석변개'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아침과 저녁이 다릅니다. 사람은 대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약속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32.500가지의 축복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시18:2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고 또 사26:4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반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 그 분은 오늘도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가 그분께 모든 것 맡기고 살면 절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할/

 

  ②지식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3).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인간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전무후무한 지식입니다.
  ⑴인간의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지식입니다.
  ⑵앞뒤를 다 아는 지식입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읽어버린 과거도 아시고, 앞으로 되어질 일도 아십니다. 신학적으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⑶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시139:1-4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⑷행동하시는 지식입니다. 한나는 3절 이하에 '행동을 달아보시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달아본다, 세어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계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믿음을 달아보시고 사랑을 달아보시고 열심도 달아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양도 달아보시고 충성도 달아보십니다.
  행여나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달아보셔서 함량미달이 된다면 이것처럼 큰 비극과 불행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너무 과소평가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믿/
  다니엘 5장을 보면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자기 아버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하나님의 성전 그릇에다가 술을 퍼마시면서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대 연회장 하얀 벽에 나타나셔서 글씨를 쓰셨습니다.
  단5:25절에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메네'는 '세어보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이 여러 해 동안 그의 날을 세어보시다가 '이제 너의 시대는 끝났다'고 정지 신호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선언하시면 인생들은 하던 모든 것을 중지해야 합니다. 벨사살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날을 끝나게 하셨습니다.
  ▶'데겔'은 '무게를 달아보았다'는 뜻으로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들어 났다는 것입니다. ▶'우바르신'은 무게를 잰 결과로 왕의 나라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믿/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실제로 그 날이 벨사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30절을 보면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밤에 메대의 다리오 왕이 이끄는 군사들에게 벨사살 왕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감히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3절에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에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말을 잘 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 말은 우리의 혀를 잘 단속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풍자한 말입니다. 또 말과 행동의 일치가 없을 때 하는 소리입니다. 세상 끝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때 우리는 손이나 발로 지은 죄 보다 아마 혀로 지은 죄가 제일 많을 것 같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 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③하나님은 지금도 인생들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⑴인간의 죄악을 달아보십니다. 죄악의 잔이 차고 넘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가 임하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도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그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⑵인간의 선행도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달아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선한 행실도 달아보아서 어느 분량이 차면 축복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죄 짓는다고 금방 심판이 내리지 않는 것처럼 선행도 금방 축복과 상급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시는 어느 분량이 차야 응답과 상급이 내립니다. 기도도 분량이 차야하고, 십일조나 헌금 생활도 정성의 분량이 차야 합니다. /아멘!/
  ⑶인간의 정성을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의 저울에는 정성이 무겁다'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또 '천국 가는 길은 정성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⑷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

 

  ④그러면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
  ⑴인생의 삶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고 사는가를 평가합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⑵인생의 행실로 평가하십니다.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⑤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고백하고 있습니다(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힘과 상대적인 힘입니다. 절대적인 힘이란 모든 것이 다 가능한 힘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힘이란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그런 힘입니다.
  오늘 본문의 의미는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절대권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한나는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절대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과 삶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장면이 세 번이 나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딸이 죽어갑니다. 그의 아버지가 주님께 나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의 집으로 가는데 벌써 죽었으니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종들이 말합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헌화를 하면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믿음 있는 사람만 데리고 들어가 죽은 소녀 앞에 기도하시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하시니 죽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이 죽어 상여에 실려 무덤을 향하여 갈 때 주님이 슬피 우는 과부의 모습을 불쌍히 보시고 상여에 손을 얹고 기도한 후에 명하시기를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시니 죽었던 그 청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베다니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는 죽어서 장사한지 3일이나 되었습니다. 그 지방은 열대지방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시체가 상합니다. 그런데 3일이나 지났으니 시체가 어떠하겠습니까? 상해도 폭삭 상했습니다. 주님은 3일이나 지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명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의 이 명령 한마디에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사형수 하나 둘쯤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자리는 사람을 높이게도 하고 낮추게도 합니다. 장관으로 세웠다가 자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대통령을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생명이 어디서 왔습니까? 생명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힘으로도, 과학으로도 생명을 조작할 수 없습니다. 인조 잔디는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습니다만 그 풀 속에 생명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창조주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창조의 능력으로 명하십니다. '달리다굼!' '청년아 일어나라!'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 /할/
  행여나 우리의 삶의 모습이 지금 무덤 속 같은 절망 속에 있지는 않으십니까?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까? 사업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정의 환경으로, 부부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주님의 권세로 명하십시오. 저주는 떠나가라! 실패와 낙심도 물러가라! 질병도 떠나가라! 주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에는 모든 길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한나는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멸망과 구원으로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사는 것이고, 구원받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구원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절대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내가 이 땅에 30, 50, 그리고 70, 80년을 사는 것도 그 주권이 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싶다고 오래 살고, 죽고 싶다고 빨리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고, 이 나라 정치와 역사가 '흥할 것이냐 망할 것이냐' 이 문제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사실 인생 모두가 하나님 앞에 보잘것없는 초라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시14: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할/

 

  ⑥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7).
  7절 상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사업장을 축복하시면 하루아침에 판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모든 민족 위에 머리가 되는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어렵지만 하나님은 천이 백만 성도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 한국 경제를 더 튼튼하게 세워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복 주셨던 하나님! 이삭이 가는 곳마다 100배의 복을 주셨던 하나님! 야곱에게 축복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믿/
  히브리 기자는 무엇을 말합니까? 히11:6절에서 살아 계신 참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상주시는 자'이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신앙 안에서 복 받고 재벌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고 그 재물을 지켜주실 힘도 주십니다.
  사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그 재산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아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물질의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하늘창고에 올리십시오, 그리하면 온전히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하시고 황충을 제해주시고 과일이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십니다.
  본문의 8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여기 진토나 거름더미는 극도의 수치와 천대 가운데 있는 비천한 자의 삶의 현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진토와 거름더미 속에서 허덕이는 요셉을 높이 들어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귀족되게 하셨습니다. /믿/
  하나님이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축복해 주시면 사람의 힘으로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 분이 닫고 거두시면 또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느니라' 욥1: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오늘 본문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마5: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란 돈이 없어도 양심 바르게 살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지 않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정신까지 병들고 마음까지 병들면 안됩니다.
  오늘 한나의 고백은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풍요로운 마음을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떼돈을 벌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산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옹졸하면 그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합니다.
  여러분, 자족하며 삽니다.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감사하며 살아갈 때 감사의 조건이 더 열리게 됩니다. /믿/

 

  ⑦한나는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7).
  본절의 순서를 주목하십시오. '높이게도 하시고 낮추게도 하시고'가 아니고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게도 하십니다'.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미 어떤 이유나 문제 때문에 낮아져 있는 사람이라도 주님이 마음만 정하시면 높이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 평생 살다보면 낮아지는 경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서 낮아졌다는 것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뜻밖에 재난, 그 어떤 실패, 건강의 적신호 등 나를 낮추고 내리막으로 내모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 경제가 이토록 바닥 경제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높이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할/
  한나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아멘!/ 하나님은 베들레헴 들판에 양치기하던 다윗을 높이 들어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웠고,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요셉을 큰 나라 국무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혈기로 가득 찬 어부 베드로를 하나님이 높이 들어 주님의 수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여러분! 우리도 높임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의인, 천국 시민, 복 있는 사람, 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백성'들입니다. '감사하며 삽시다! 충성하며 삽시다! 남은 생애 주를 위해 헌신하며 삽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마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⑧한나는 '심판도 여호와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0).
  우리는 여기에서 주목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고 교역자를 대적하고 잘 된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를 대적하던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었고,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함으로 인하여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출10:1-2) 그들을 삼켰습니다.
  고라와 르우벤 자손인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에게 도전했다가 땅이 갈라져 그들을 땅이 삼켜 버렸습니다. 출16:40-50절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시려고 염병을 보내어 14,700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려다가 산산조각이 나지 말고 깨어지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0절 계속 보시면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라고 했습니다. 심판 주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상은 땅 끝까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그 심판에 대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할/아멘!/  (2011년 8월 20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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