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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마음의 추위를 느끼는 당신에게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8. 11. 04:13

한여름에도 마음의 추위를 느끼는 당신에게

등록 :2019-08-09 06:02수정 :2019-08-09 20:57

 

[책과 생각]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④ 생의 온기를 나눌 줄 아는 힘

우리가 간절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갈망하는 이유, 그것은 그 안에 우리가 통과해야 할 모든 슬픔과 사랑의 뿌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인 에어가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상처받지 않았더라면.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이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지독하게 외로운 남자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로미오가 줄리엣을 따라 사랑이 없는 이 세상이 아닌 사랑이 있는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보이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티머시 섈러메이(사진)가 엘리오 역으로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티머시 섈러메이(사진)가 엘리오 역으로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오직 누군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지닌 삶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질 때가 있다. 지난겨울 대영도서관에서 아주 사랑스러운 엄마와 딸을 만났다. 제인 오스틴의 필기구와 노트, 그녀가 오빠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전시한 컬렉션을 보면서 엄마와 딸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전시관에는 제인 오스틴과 샬럿 브론테의 얼마 남지 않은 개인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촬영은 불가능했다. 작가들의 유품을 마치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듯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엄마, 이게 제인 오스틴이 쓰던 펜이야?” “, 그래. 제인의 오빠가 선물해준 거라는구나. 제인 오스틴이 이 펜으로 <오만과 편견>을 썼겠지? 아니면 <이성과 감성>을 썼을까?모녀의 대화를 듣다 보니 제인 오스틴이 마치 옆집에 살고 있는 다정한 언니처럼 살갑게 느껴졌다.

아들의 고통이 부러운 아버지처럼

가끔 먼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내가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가슴속에 칼바람이 일 때가 있는데, 그날은 이 모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따스한 화로 하나를 선물받은 듯 행복했다. 문학작품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이렇게 작가가 남긴 아주 작은 흔적까지도 소중히 아끼는 마음이었다. 엄마와 딸의 대화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그 따스한 문학적 수다가 이방인인 나의 마음속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문학의 온기를 엄마와 딸의 소소한 대화 속에서도 나눌 수 있다는 것, 이런 추억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난히 힘들었던 그 겨울의 고독을 나는 견뎌낼 수 있었다. 문학은 이렇듯 삶의 온기가 간절히 필요할 때 우리 가슴에 노크를 하며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견딜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영국 배스 지방의 제인 오스틴 기념관. 사진 정여울 제공
영국 배스 지방의 제인 오스틴 기념관. 사진 정여울 제공
  
얼마 전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된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읽다가, 우리에게 여전히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문학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끝내 말로 표현할 수 있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몸부림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기는커녕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아들 엘리오에게 아버지는 아무런 금지의 말도, 아무런 걱정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소년은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의 눈을 피해 그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고, 이제 그를 머나먼 나라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가슴앓이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이제 혼자 남은 아들에게 담담히 앞으로 얼마나 커다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이야기해준다. 앞으로 아주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자연은 교활하게도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내거든. 이것만 기억해라. 난 항상 여기 있다. 지금은 네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 () 하지만 네가 한 일을 느껴 보려고 하려무나.

열여섯 살 소년이 스물네 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소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소년의 깊은 슬픔을, 소년의 깊은 사랑을, 소년이 남몰래 흘리는 마음속의 눈물까지도. 소년이 부정하려 하자 아버지는 뜻밖의 고백으로 아들을 놀라게 한다.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지도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아버지는 그 이별의 고통을 올올이 느껴 보라고, 그 사랑의 추억을 한 올 한 올 되새겨보라고, 아들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감정도 결코 억압하지 말라고, 결코 그 감정을 짓눌러서 부서뜨려버리지 말라고.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 못 이루게 하는 자기 안으로의 침잠은 끔찍하지.아버지는 아들이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그 모든 열정과 회한과 그리움의 불꽃을 결코 꺼버리지 말기를, 기원한다. 그 사람을 통해 느끼는 이 감정의 불꽃은 오직 한 번뿐인 생의 반짝임이니까.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의 열정과 순수를 너무 빨리 태워버리는 우리. 아픔이 오면, 마치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파르르 떠는 우리들. 아픔을 음미하기도 전에, 아픔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도 전에, 아픔을 전염병처럼 퇴치해버리는 우리들. 우리는 그런 높은 방어기제 때문에,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 느낄 수 있는 감정들까지도 한사코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기 안의 소중한 감정까지 죽여버리는 우리, 현대인들. 막상 뒤늦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줄 열정도 순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아버지의 속삭임은 가슴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이 사회에 적응하고 동화되기 위해, 우리 안의 무엇을 불사르고, 조각내고, 부서뜨린 것일까.

하지만 삶은 하나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닳아 버리지. () 나는 고통이 부럽지 않아. 네 고통이 부러운 거야.아버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아들에게, 다른 고통이 아닌 오직 너의 고통을 부러워한다고 고백한다. 소년의 고통은 오직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극한까지 경험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토록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 또한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떻게 이 소설 속 아버지처럼, 타인의 아픔을, 그것도 견딜 수 없는 혹독한 아픔을, 진심으로 부러워할 수가 있을까. 돌이켜보니 나도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아픔을 앓고 있는 이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 가시밭길을 걸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그런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 그런 도전에 온몸을 던져본 적이 있는 사람만 흘릴 수 있는 눈물을. 이 작품에서 아버지가 부러워하는 아들의 아픔은 오직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누군가를 사랑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열정, 사랑, 아픔의 극한까지

우리가 간절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갈망하는 이유, 그것은 그 안에 우리가 통과해야 할 모든 슬픔과 사랑의 뿌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인 에어가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상처받지 않았더라면.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이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지독하게 외로운 남자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로미오가 줄리엣을 따라 사랑이 없는 이 세상이 아닌 사랑이 있는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보이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겨드랑이를 스치는 문학의 향기가 가득 실린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를 세상의 절벽 아래로 떠미는 것을 느낀다. 상처의 틈새로 온 세상의 햇살이 온통 나에게로 쏟아지는 듯한 벅찬 감정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나나조차도 아직 꺼내보지 않은 나의 잠재력의 경계가 기쁘게 부서진다.

문학을 통해 나는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견딜 수 없는 고통의 세계의 경계가 부서지는 것을 느낀다. 그 아픈 경계가 기쁘게 무너져내릴 때, 나는 고통 앞에서 더욱 당당한 존재,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처럼 절망할 수는 있어도 운명에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 훌륭한 책이라면, 도끼가 되고 망치가 되어 우리 잠든 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그 문학이라는 도끼를 조금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누구든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고 싶다. 문학이 독자를 피 흘리게 하는 망치나 도끼가 아니라 향기 나는 도끼, 멜로디가 울리는 망치 같아서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아프게만 하는 무기가 아니라 우리를 오히려 다독이고 끌어안고 손잡아주는 그런 도끼가 바로 문학이니까. 문학이 필요한 시간은 바로 시나 소설 속의 문장 하나하나가 사랑하는 이의 손길처럼 내 지친 등짝을 두드려주는 순간이니까. 우리는 이 아름다운 문학작품들을 통해 열정의 극한까지, 사랑의 극한까지, 아픔의 극한까지 걸어가 볼 권리가 있다. 그 모든 감정의 극한을 문학 속에서 올올이 경험한다면 우리는 실제 삶에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더 눈부신 열정을, 더 뜨거운 고통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기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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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05137.html?_fr=mt6#csidx43edc1196a21080984ba00e7beded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