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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칼럼]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정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8. 31. 04:13

[조은 칼럼]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정원

등록 :2019-08-29 17:58수정 :2019-08-30 16:59

 

조은
사회학자, 동국대 명예교수

지식인의 담론 생산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라는 고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날들이다. 무거운 제목을 뽑아 놓고 칼럼을 시작했는데 써지지가 않았다. 몇줄 쓰다 말고 왜 언급할 가치도 없는 궤변을 상대해야 하는지 멈춰 생각하다가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정원 이야기를 소환했다. 어쩌면 독자들에게도 후덥지근하고 짜증나는 논박보다는 여름 정원 이야기가 위무가 될지도 모른다며 칼럼의 제목을 바꿔 달았다.

지난달 강화도에 소박한 집을 마련한 지인을 방문하게 됐다. 집은 이른바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있었다. 두번이나 차에서 내려 검문검색을 받고 열두세집 정도가 모여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 지인은 동네의 맨 꼭대기 집을 가리켜 이 동네를 환하게 하는, 정말 예쁘게 정원을 가꾼 집이라면서 안내를 했다. 희귀종 화초가 있거나 값비싼 정원수가 있거나 그런 정원이 아니라 오직 집주인의 손길과 정성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갖은 여름꽃들로 채워진 정원에 감탄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정갈하고 화사한 정원을 가꾸게 되었느냐고 집주인에게 무심코 물었다. 인사치레였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강화도의 장애아 부모들의 쉼터로 마련했어요. 제가 장애아 엄마거든요.그러고는 저희 딸이 심한 자폐를 앓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장애아 엄마로서 너무 힘들 때 어디 가서 위로받으며 차 한잔 마실 곳을 찾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딸은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자폐일 뿐 아니라 몸도 전혀 못 움직이는 복합 장애여서 시설에 있다. 장애아 부모들에게 일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정원을 만들어주고 싶어 공을 들이고 또 들였다. 타샤의 정원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고 했다. 타샤의 정원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어떤 정원도 타자의 아픔을 위무하고 상상하며 만든 정원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인 정원이었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은 일본 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가 1925년생인 자기 아버지 구술을 받아 저술한 <일본 양심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빌려왔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삶을 구술 받으며 들은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아버지가 갖고 있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적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20살인 1945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소련에서 패망을 맞았고 조선인 일본군과 함께 수용소에 갇혔다가 풀려나 일본에 돌아와서는 평범한 서민으로 일생을 마쳤다. 전쟁의 참혹함을 잊을 수 없어 한번도 자민당에 투표하지 않았다. 말년에 이른 72살에 중국에 사는 조선인전우에게 자기가 받은 일본 정부 위로금을 나눠주고 그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로금 반환 소송을 하자 3심 패소 때까지 줄곧 공동 고소인이 되어 함께했다.

오구마의 책을 찾아 읽은 것은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하 직함 생략)이 대표 저자가 되어 내놓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훑어보다 역겨움을 덜어내고자 꺼내든 책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보는 순간 바로 <반일 종족주의>를 가로지르는 매판 지식의 대척어라고 생각했다. 이 칼럼을 시작할 때 처음 뽑은 제목은 뜻밖에 소환된 모계 가계도와 매판 지식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이영훈이 모계 가계도까지 끌어내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우겨대지 않았다면 고려 말 호적 자료까지 불러와 그런 제목의 글을 시작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반일 종족주의>의 논리와 논거가 친일로 반격을 받자 나도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실증경제사학자의 방어 논거로는 참 구차하고 황당하네정도로 넘어갔다. 그가 적시한 독립유공자 조상이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 차리석 선생으로 외증조부라고 밝혔을 때까지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고려 말 호적도까지 소환할 생각은 아니었다. 차리석 선생 외아들이 팔 게 따로 있지라면서 무슨 후손이냐고 나오자 그는 자기 어머니의 어머니(외조모)의 둘째 숙부가 차리석 선생이며 따라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외외증조부인데 외증조부로 약칭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사칭은 아니라고 넘어갈 생각인 듯했다. 외외증조부를 외증조부로 약칭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자유당 시절 사사오입 개헌 때 동원된 알량한 통계 지식을 연상시키는 궤변이다.

우리 역사에서 모계 조상을 3대까지 포함시킨 가계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일명 고려 말 화령부 호적 관련 문서가 유일하다. 그 호적에는 본인을 중심으로 부와 조부 증조부 모와 외조부까지 그리고 처의 경우도 부와 조부 증조부 그리고 모와 외조부를 기록했고 거기에 더해 외조모의 부와 처 외조모의 부까지 8() 호구식도 있다. 이는 우리 역사 기록에서 모계 가계도의 최대치다. 이영훈은 그의 <한국경제사>에서 마르티나 도이힐러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가 고려 말 호적 자료를 인용해 그려 낸 양계(부계-모계) 가계도를 자세하게 인용한 적이 있다. 모계 3대가 나오는 그 가계도에도 외외조모 부친의 남동생(외외증종조부)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계까지 8조를 뒤져도 독립유공자 한명이 없었던 모양이라는 추론으로 몰아갈 생각은 없지만 선대를 불러들이고 싶었다면 일본 사회학자 오구마를 흉내라도 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 책장을 덮으며 매판 지식과 궤변에 아까운 시간을 쓴 것이 억울했는데 지면까지 할애하려니 글이 나가지 않는다. 이 책의 논거는 사료의 편파 선택이나 일반화의 오류같은 점잖은 학문 용어로 비판하기에는 너무 하수다. 사료에 근거해 품격 있고 차분하게 조목조목 따져 진위를 가리고 반론을 제기해 볼까 하다가도 그럴 가치도 없고 깜냥이 못 되는 작업에 학계가 선뜻 나서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매판 지식이 일으키는 소음은 너무 크다. 매판 언론까지 나서 소음을 키워낸다. 우리 지성계의 딜레마적 상황이다.

글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도 헛돌 것 같다. 다시 아름다운 여름 정원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 정원에는 유난히 다양한 수국이 많았다. 겨울나기가 쉽지 않은데 영하 20도에 견디는 수종을 골라 심었다고 했다. 수국은 겨울까지 정원에 그대로 두면 마르면서 눈을 맞아 얼음꽃이 되고 겨울 정원을 덜 쓸쓸하게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이 시리거나 쓰리거나 아픈 사람들이 덜 쓸쓸한 겨울 정원과 마주할 것을 상상해보는 여름 정원은 더 아름다웠다. 이쯤에서 지식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식인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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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7710.html#csidxf684285bac84f02b37b4d9038a49ff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