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쌓는 자는 쇠하고, 길을 닦는 자는 흥한다. 삶을 위한 묵상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이사야 52장 7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에베소서 2장 14절 기원전 3세기 동과 서에서는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됐다. 중국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로마제국은 이 시기부터 약 500년에 걸쳐 로마 가도를 만들었다. 진시황은 이민족을 막는 성벽을 쌓았고, 로마제국은 세계로 연결하는 길을 내었다. 로마 제국이 한창 번성할 때는 지중해 연안뿐만 아니라 유럽 땅을 거의 차지했다. 서쪽으로는 영국에서, 동쪽으로는 실크로드까지, 남쪽으로는 이집트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 이런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로망이다. 로마인들은 로마에서 시작하여 제국의 영토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하여, 수송로를 만들었다. 도로는 적들이 침공할 때도 똑같이 이용할 수가 있어, 위험성이 있는 양날의 칼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도로 건설을 선택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로마가 흥왕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차이가 중국과 로마의 운명을 갈랐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중화(中華), 즉 세계의 중심이고 우수한 나라라고 하면서 중화사상(中華思想)을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자긍심을 주기도 하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상이기도 한 양날의 칼이다. 중화사상에 따라 중국인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놓고, 중국인 이외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렀다. 특히 만리장성이 축조되면서 성 안에 있는 자신들은 중화, 성 밖에 있는 민족들은 오랑캐라고 더 확실히 분류했다. 성 안에 앉아서 바깥을 가리켜 ‘오랑캐’라고 부르는 순간, 오랑캐에게는 무슨 소통을 하며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랑캐로 불리던 흉노족, 선비족, 몽골족은 자유자재로 만리장성을 넘었다.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거두고 강제로 노동력을 동원한 것이 오히려 진나라 몰락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리장성을 쌓는 사람이 있고, 도로를 닦는 사람이 있다. 신 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전형적으로 성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의 모습은 전형적으로 눈총 쏘는 사람, 만리장성을 쌓는 분리주의자의 모습이다. “너와 나는 달라”하면서 눈총을 날린다. 그는 ‘서서 따로’ 기도했다. 기도의 내용도 그렇다. 다른 사람은 나쁜 사람 오랑캐, 자신은 좋은 사람이다. 우리 가운데 바리새인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멋져 보이는 사람 같은데 이상한 것은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된다. 그 사람만 좋은 사람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악질들이 되어버린다. 결국 이런 류의 사람은 만나기가 싫어진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반면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도로를 뚫어 소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모든 벽을 허무시고, 그 경계에 꽃을 피우셨다(엡 2:14).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대표적인 초대교회인 안디옥교회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소통하고 도로를 닦는 존재들이었는가 하는 감동이 일어난다. 또한 안디옥교회에는 선지자와 교사 등 은사도 각각이었다. 안디옥교회는 한마디로 서로서로 만리장성을 쌓고 하나 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벽을 허물고 진정한 사랑과 소통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인류의 역사는 길을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 소금 장수의 길에서부터 이른바 비단 길이라 일컬어지는 실크로드, 그리고 황금 길과 석유 길,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과 방송이라는 무한한 길을 통하여 발전하고 있다. 독점, 소유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수직 사회에서 수평 사회로, 승-패의 시대에서 같이 이기는 윈-윈(win-win)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벨탑과 같이 성을 쌓지 않는다. 누구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며 길을 연다. 하나님 나라의 길을 닦아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이다. 움켜쥐려는 자는 쇠하고, 나누어주려는 자는 흥한다. 성을 쌓는 자는 쇠하고, 길을 닦는 자, 그리고 그 길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흥한다. 하나님, 움켜쥐고 성 안에 갇혀 있었던 저의 모습을 봅니다. 이제는 갇혀 있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허물고 밖으로 나오겠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제자들과 소통하셨던 모습을 본받겠습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벽을 허물고 소통하고 도로를 닦는 자들이 되어 나아갔던 것처럼 저도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것을 움켜쥐기만 하는 성을 쌓는 모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소통의 모습, 초대교회 공동체가 자신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용납하며 함께 나아갔던 모습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나 자신이,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런 사람, 그런 공동체가 되도록 내가 먼저 노력합시다. |
'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옳고도 좋은 분, 우리 하나님이 그러하시다.[‘오직 은혜’(솔라 그라티아, sola gratia)] (0) | 2019.10.22 |
---|---|
당신은 무엇을 듣고 있는가? (0) | 2019.10.21 |
성경,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마귀의 방어를 대비해 기도하며 읽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사랑에 빠지다, 케이스 페린 (Keith Ferrin) / 규장] (0) | 2019.10.19 |
진정한 성공이란? (0) | 2019.10.19 |
모든 저속한 기쁨을 잘라내십시오.[그때 당신은 하나님의 복이 되고,풍성한 위로가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0) | 2019.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