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인천 일가족’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생계급여 신청조차 못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11. 24. 03:47

‘인천 일가족’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생계급여 신청조차 못해

등록 :2019-11-22 21:03수정 :2019-11-23 02:33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재산 확인 위해
전남편·친정 금융정보제공 동의서 필요
주민센터 안내에 생각해보겠다고만
“관계 좋지 않으면 서류 마련에 부담”


노동·빈곤·종교·정당·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성북 네 모녀 추모위원회’가 21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분수마루 공원에 마련한 ‘성북 네 모녀 시민분향소’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동·빈곤·종교·정당·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성북 네 모녀 추모위원회’가 21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분수마루 공원에 마련한 ‘성북 네 모녀 시민분향소’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9일 인천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가족은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가난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생계급여 신청조차 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소득·재산 수준이 수급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가난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소득·재산을 가진 부모 및 자녀가 있으면 생계급여·의료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는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22일 보건복지부와 인천시 계양구청 관계자 말을 종합해보면, 수년 전 이혼한 뒤 아들(24)·딸(20)과 함께 살아온 ㄱ(49)씨가 지난해 10월 주민센터에서 주거급여를 신청할 당시 생계급여에 대한 안내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러나 3인 가구의 부양의무자인 전남편과 친정 부모로부터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아 와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ㄱ씨가 ‘생각해보겠다’고만 하고 결국 생계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월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재산의 소득환산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30%(2019년 기준 112만8010원) 미만이어야 하며,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재산도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 세 식구가 받아온 주거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돼 신청이 가능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 사회복지공무원은 “가난한 집은 대부분 부양의무자들도 어렵게 산다. 서로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 같은 서류를 받아 오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2017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송파 세 모녀 3주기 추모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7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송파 세 모녀 3주기 추모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어머니와 두 자녀는 숨지기 전까지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직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계양구청 관계자는 “근로소득이 있다 없다 들쑥날쑥했다”며 “어머니의 경우 중증 질환은 아니었으나 어지럼증 등 건강 문제와 생활고를 호소해 민간 후원 물품을 주민센터에서 연결해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세 식구가 부양의무자 ‘벽’을 넘어 매달 최대 112만원의 생계급여 수급자가 된다 하더라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복지부는 만 18~64살 수급자를 대상으로 의료 기록과 활동능력을 평가해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한다. 수급자가 장애인이거나 학업 등으로 일할 수 없는 사정이 소명되면 이러한 의무가 유예된다. ㄱ씨와 두 자녀는 서류상 장애인이 아니었고, 나이를 고려해봤을 때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보이지 않는 정서적 고통이 심했거나 정기적으로 일하기 힘든 사정이 있을 경우, 이러한 ‘조건부 수급’ 제도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천지역 사회복지공무원은 “매일 자활근로를 나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월 130만원대로 최저임금(174만5천원)에 미치지 못한다. 개인 사정에 따라 쉬면서 일용직으로 돈을 벌겠다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 대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크다”며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바늘구멍도 안 보이는 상황’을 맞이하고 결국 좌절에 이르기도 한다.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할 경우 일단은 공공이 개입해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기회를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