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니 받거니… 삶을 위한 묵상
† 말씀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시편 145편 18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 2절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차원에서의 ‘바아’(*히브리어 동사다. 찾다, 간청하다, 구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로 나아가면 하나님과 소통하는 ‘소통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다니엘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에’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날 밤에 ‘이에’의 응답을 주셨다. 그렇게 ‘이에’의 간구에 ‘이에’로 응답하신 하나님에 대해 다니엘은 또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장면이 그려지는가? 다니엘이 ‘이에’로 간구했더니 하나님이 ‘이에’로 응답하시고, 하나님이 ‘이에’로 응답하시자 다니엘은 또 감사와 찬송으로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 부분을 묵상하는데 이 한 마디가 떠올랐다. “하나님과 다니엘의 주거니 받거니!”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다니엘처럼 하나님과 ‘주거니 받거니’가 일어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신 앙생활은 결국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제이다. 이것이 안 될 때 영적 침체와 비극이 일어난다. 사무엘상 28장 5,6절을 보라.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5,6) 위기를 만난 사울 왕이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물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울 왕의 잘못된 해법에서 결정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잘못된 해법을 보라.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삼상 28:7) 사울이 왜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었는지, 왜 하나님께 물어도 응답이 없었는지 답이 나오지 않는가? 하나님의 응답이 없고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40일 금식을 해서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매달려서 소통을 이루어내야 하는데,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잡신의 영향을 받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간혹 점집에 예수 믿는 집사님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얘기를 듣는데, 이것이 딱 사무엘상 28장의 사울 왕이 보여주는 현상 아닌가? 오죽 답답하면 점집을 찾았겠나 싶지만 그러면 안 된다. 답답할 때 신접한 여인을 찾은 것이 결국 사울 왕을 망하게 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어떤 상황인가 하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시글락에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 닥쳤다. 다윗과 남자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 마을을 불사르고 여자들을 다 잡아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참 야박하다. 지금 다윗도 절망적인 고통에 빠져 있는데, 그에 대고 뭐라고 하는가?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삼상 30:6) 이것이 인간이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하는 이 모습이 느부갓네살과 같은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 “…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6)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진심으로 주님께 돌아가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무슨 뜻인가? 위기의 때에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절도 보자.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삼상 30:7,8) 이 부분을 하나님과의 소통의 차원에서 읽어보라. 문제를 만난 다윗이 사울과 확연히 달랐던 점은 딱 이것 하나다. 인생에 위기와 두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접신한 여인을 찾았던 사울과 달리 다윗에게는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라고 하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있었다. 문제를 만날 때 당신의 모습은 사울의 모습에 가까운가? 아니면 다윗의 모습에 가까운가?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주님 앞에 나의 문제를 내어놓고 간구할 때 응답하소서. 그리고 높으신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하나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문제의 해결만이 아닌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쁨을 평생 누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과의 주거니 받거니’가 당신의 삶 속에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당신이 되기를 결단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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