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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칼럼] 검찰 수사의 허와 실, 그리고 ‘검찰 인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 10. 07:11

[김종구 칼럼] 검찰 수사의 허와 실, 그리고 ‘검찰 인사’

등록 :2020-01-08 20:45수정 :2020-01-09 14:23



 

법무부는 8일 대검의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들을 대거 교체하는 검사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윤석열 검찰총장, 강남일 차장검사,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왼쪽부터)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무부는 8일 대검의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들을 대거 교체하는 검사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윤석열 검찰총장, 강남일 차장검사,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왼쪽부터)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이 불거진 지 10개월이 다 돼 간다. 자유한국당이 경찰을 고발한 것이 지난해 3월이었고, 사건의 간판이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으로 바뀌면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간 지도 벌써 두 달 가까이 됐다. 그런데 검찰은 아직도 사건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은 누가 뭐래도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이다. ‘범죄’의 그림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황 전 청장이 청와대의 은밀한 지시를 받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김 시장 측근들의 비리 혐의가 없는데도, 부하 경찰들을 다그쳐 무리한 수사를 했음이 입증돼야 한다. 그런데 엊그제 황 전 청장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지난 열 달 동안 검찰한테서 소환통보는 물론이고 서면조사에 응하라는 연락조차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수사다. 검찰은 울산경찰청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 관련 경찰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까지 했지만 아직 선거개입을 한 피의자 경찰관이 누구인지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와 여권 수뇌부의 선거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경로라면 일단 경찰의 선거개입 의혹 수사에 대해 최소한의 중간결산이라도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그런데 검찰은 이곳저곳 압수수색을 벌이며 ‘일단 판을 키우고 보자’는 식이다. 수사의 내용 또한 기묘하다. 후보 경선이 생략된 여당 내부의 후보 교통정리 과정까지 중대한 범죄행위인 것으로 몰아간다. 통상적인 ‘정치 행위’와 ‘범죄 행위’를 마구 뒤섞어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여권 내부 사람들끼리 만난 사실을 밝혀낸 것만으로도 마치 중대한 범죄행각의 꼬리를 잡은 양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말의 광휘는 찬란하다. 그것은 누구도 토를 달아서는 안 되는 절대선이라는 시각이 사회 한쪽에 강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역시 공감과 박수를 받으려면 이에 상응하는 내용과 형식 등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서 요즘의 울산 수사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수사 내용을 보면 정곡을 찌르는 명쾌함, 기민하게 본질을 파고드는 예지, 그러면서도 절제와 균형을 갖춘 수사 미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도 감동도 없다.

옆에서 지켜보는 관전자도 그런 느낌인데 당사자인 청와대나 여권 수뇌부가 어떤 심정일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게 있다. 검찰에 대한 인사권 행사는 선출된 권력이 갖고 있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그 의미가 매우 중대한 만큼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게 행사해야 한다. 보복 인사, 분풀이 인사를 했다는 비난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곤란하다. 뒤돌아보면 여권이 검찰 때문에 극심한 곤경에 처하게 된 데는 윤석열표 검찰에 대한 여러가지 잘못된 판단과 예측, 여론의 풍향을 면밀히 살피지 못한 둔감함도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단행된 검찰 인사 역시 또다시 성급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검찰 인사를 매끄럽고도 힘있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만 해도 인사에 앞서 수사 결과를 내놓도록 해서 그 내용을 인사의 근거로 삼으면 된다. 수사를 10개월이나 하고서도 경찰의 선거개입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검찰이 무능하거나 수사 자체가 무리수였음을 검찰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울산시장 선거 과정의 여권 지도부 개입 의혹도 마찬가지다. 4월 총선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별다른 혐의도 입증하지 못한 채 무작정 수사를 질질 끄는 것이야말로 검찰의 선거개입 행위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내놓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심판받게 하는 게 옳다. 국민의 공분을 살 정도의 권력의 선거개입 행위를 입증하면 상을 주어야겠지만, 수사의 알맹이도 없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면 당연히 지휘라인에 책임을 묻는 게 옳다. 이것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본뜻에 어울린다.

이런 점에서 법무부가 검찰과 파열음을 빚으며 서둘러 인사를 단행한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결정으로 보인다. 사실 검찰은 지금 자신들이 해온 수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처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검찰 인사가 자칫 울고 싶은 검찰의 뺨을 때린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종구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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