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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방역, 일상의 거리두기가 성공하려면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5. 04:01

생활방역, 일상의 거리두기가 성공하려면

등록 :2020-04-03 20:50수정 :2020-04-04 02:3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지난 1일 오후 시민들이 차량 통행이 금지된 서울 여의도 여의서로(옛 윤중로)를 거닐며 벚꽃을 구경하고 있다. 이날을 끝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여의서로는 2일부터 전면 통제됐다. 연합뉴스

 

지친다. 속도 모르고 흐드러진 벚꽃이 밉살맞다. 봄나들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대로는 여름휴가도 ‘집콕’해야 할 것 같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직업이라 휴대전화 일정표에 점심, 저녁 약속이 빼곡히 들어차야 하는데, 3월 내내 적힌 약속은 딱 3개. 그것도 모두 내근하는 회사 동료다. 그나마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감지덕지해야 한다. 외근 기자가 많은 신문사 특성상 원래도 사무실 상주 인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각해진 뒤로는 안에서 대면 업무를 하지 않으면 신문 만들기가 어려운 사람을 빼놓곤 모두 회사 밖에서 일하라 하니 얼굴을 볼 수 있는 동료가 한 손에 꼽힐 지경이다.‘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렇게, 일상을 간절한 존재로 만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사람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눈을 보며 술잔을 부딪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애초 정부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한을 5일까지라 했을 땐 ‘딱 2주’만 버티면 될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못박았다. “생활방역은 (5일까지로 예고한)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 이외에도 일반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즉 2m의 이격거리, 생활상에서 밀접도를 낮추는 것, 발열 등 증상이 있으면 외출을 삼가는 것 등이 포함된다.” 방역당국이 대규모 감염의 재확산을 막으려고 방역체계 전환을 예고하며 준비하고 있는 ‘생활방역 체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라는 소리다.이미 어떤 맛집은 코로나19 이전처럼 줄을 설 정도로 시민들이 지쳤는데 이게 가능할까? 잠깐 시계를 11년 전으로 돌려보자.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가경쟁력을 유난히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역시 같은 이유를 들어 보행자 통행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꿨다. 88년 동안 ‘좌측통행’을 해온 한국 시민들은, 우측통행과 국가경쟁력이 무슨 상관이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금세 익숙해졌다. 그보다 더 오래전인 1999년부터 일부 단체와 정부는 ‘바쁜 사람 먼저 가게 양보하자’며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 운동을 벌였는데 사람들은 이에 금세 호응했다. 그런데 고장과 안전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정부는 2000년대 후반 들어 다시 두줄서기로 돌아가자고 홍보했다. 효과가 없었다. 10년도 더 넘게 지나도록 한줄서기는 계속되고 있다.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이 일들의 성패를 가른 열쇠는 ‘편함’이다. 보통 길을 걸을 땐 왼쪽으로 가나 오른쪽으로 가나 큰 차이가 없다. 정부가 규칙을 바꾸려고 들이댄 근거에 콧방귀는 뀔지언정, 굳이 그에 저항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는 다르다. 한쪽을 비우면 마음이 급하거나 바쁜 사람이 활용할 수 있어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경험을 이미 했기에, 이를 되돌리려면 그 편함을 뛰어넘는 무엇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여전히 대다수 시민들은 한줄로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탄다.이 사례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한 생활방역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편함이라는 열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버스 한대 놓칠세라 뒷문 계단에 낯선 이와 포개질 정도로 몸을 구겨넣고, 열이 나도 꾸역꾸역 일터로 나가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도 남들 다 간다는 ‘핫플’ 가서 인증샷은 찍도록 굳어진 습관을 바꾸려면, 개인의 시민윤리뿐만 아니라 정부가 제공하는 구조적인 편함이 필수요소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출퇴근 시간과 근무 형태·시간을 다양하게 바꾸고, 누구나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쉴 수 있게 뒷받침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영세자영업자나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임시일용직 등 취약계층이 이런 편리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이는 결국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를 잊는다면 생활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부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회적 대화든 사회적 합의든, 정부가 생활방역 체계를 얼마나 편하고 효율적으로 설계 또는 뒷받침할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조혜정 사회정책팀장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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