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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검찰 기자 수난시대 / 이춘재(사회부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28. 06:53

[편집국에서] 검찰 기자 수난시대 / 이춘재

등록 :2020-04-26 18:38수정 :2020-04-27 02:41

 

이춘재 ㅣ 사회부장

 

‘너희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 <채널에이(A)> 이아무개 기자는 지금쯤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을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신라젠 사건과 엮기 위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과 일을 꾸몄다는 의혹과 관련해서 말이다. 채널에이 쪽의 ‘꼬리 자르기’로 이 기자는 지금 독박을 쓰게 생겼다.

 

채널에이 경영진은 4월9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이 기자에게 몽땅 책임을 돌렸다. “소속 기자가 취재 윤리 위반을 한 것은 송구하다. 윗선에선 사실을 알지 못했고, 검-언 유착 의혹에 관해서도 확인된 바 없다.”(<한겨레> 4월9일 보도) 하지만 이 기자가 신라젠 쪽 메신저(지아무개씨)와 나눈 대화 녹취록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녹취록에는 이 기자가 지씨에게 윗선의 관심사임을 강조하는 대목이 여럿 나온다. “그리고 이거는, 진짜 마지막 1분 남았어, 저랑 얘 그리고 우리 회사에 그때 말씀하셨던 간부 차장, 그다음에 부장 이렇게 네명 알고 있는 겁니다. 저희는 보안을 확실하게 하고 있고요.”(이 기자) “제 입장에서는 저희가 채널에이 그 지금 이 기자님 말고 윗선에서도 도와줄 의향이 있는지도 좀 확인하고 싶고.”(지씨) “아 알고 있죠, 당연히.”(이 기자)(출처: 조선닷컴)

 

물론 기자가 회사 허락 없이 윗선을 팔 수도 있다. “간부 차장”이나 “부장” 몰래 제멋대로 일을 꾸미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그 윗선은 무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언론사가 수습기자 때부터 강조하는 게 ‘보고 철저’다. 무엇을 취재하고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시시콜콜 다 보고하도록 한다. 그래야 취재한답시고 사고 치는 걸 막을 수 있다. 연차가 결코 적지 않은 이 기자가 유시민 같은 ‘거물급’ 취재를 윗선에 알리지 않았다면, 그 회사의 보고 체계는 진작에 망가졌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종편이라지만, 모회사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사인데 정말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윗선은 몰랐다”는 채널에이의 해명은 그래서 믿기 어렵다.

 

녹취록에서 거론되는 ‘윤 총장 측근 검사장’은 언론플레이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진가는 사법농단 수사 때 나왔다. 법리에 해박한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이 그의 화려한 언론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판사들이 그를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과 비교할 정도였다. 그는 언론사별로 ‘맞춤형 기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법에 보장된 피의자 방어권은 언론의 무차별적인 ‘피의사실 공표’ 앞에 무력화됐다. ‘사법농단에 가담한 판사들이 무슨 염치로 방어권을 입에 올리느냐’는 여론이 형성됐다.

 

언론은 검찰이 흘려준 것을 경쟁적으로 받아썼다. 어떤 의도로 흘리는지 묻고 따지고 할 겨를이 없었다. 경쟁사들이 돌아가며 ‘단독 보도’를 쏟아내는 마당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됐을 것이다. 그 검사장의 사무실 앞은 항상 기자들로 북적댔다고 한다. 그가 탐탁지 않은 기자도 그의 입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한겨레>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검찰발 소스에 대한 검증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한겨레>는 지금 뼈저리게 반성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 중이다. 앞으로는 경쟁사보다 한발 늦더라도 최대한 검증해서 제대로 보도하려고 한다.

 

검찰은 ‘3D’ 출입처로 꼽힌다. ‘단독’ 경쟁이 심하다 보니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제는 ‘기레기’의 전범 취급까지 당한다. 지난해 조국 가족 수사 때는 검찰발 단독 기사를 많이 쓰면 ‘친검 기자’,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친조(조국) 기자’라는 프레임이 작동했다. 검찰 출입 기자들은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바뀌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건 독자의 냉소뿐이다. 검-언 유착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한겨레> 검찰 출입 기자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검찰 출입 선배로서 미주알고주알 주문하려다, 말았다. 그저 독자들한테 ‘돌 맞을 일’만 없기를 바랄 뿐. 그럴 일이 생긴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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