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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나눔의집, 뼈 깎는 자정 의지로 설립정신 회복해야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21. 05:49

[사설] 나눔의집, 뼈 깎는 자정 의지로 설립정신 회복해야

등록 :2020-05-20 18:42수정 :2020-05-21 02:07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집 전경.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2층으로 증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관이다.

광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의 불투명한 후원금 관리와 할머니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후원금이 지난해까지 64억원 이상 쌓였는데 정작 할머니들은 치료조차 제대로 못 받고 이사회는 이 돈으로 ‘호텔식 요양원’ 건립 계획을 추진했다니 분노를 넘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 한겨레> 보도로 드러난 이사회 녹취록을 보면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 이사회는 2018년부터 후원금으로 일반 요양원 설립을 논의했다. 이 계획을 뒷받침하듯 올해 2월 나눔의집은 법인 사업 종류를 ‘무료양로시설·무료전문요양시설’에서 돈을 받을 수 있는 ‘노인양로시설·노양요양시설’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정관 개정안을 광주시에 제출했다. 또 토지 매입과 생활관 증축 등을 하며 후원자 동의 없이 후원금을 유용하고, 직원들에게 일반인 할머니 입소자 모집까지 지시했다고 한다.

 

나눔의집 후원금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해마다 20억원 가까이 모였다. 그런데도 할머니들은 여벌 옷 한벌 제때 맘 편히 사지 못하고, 다쳤을 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직원들이 증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관 증축 공사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유품·물품이 훼손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하나하나가 역사적 유산이 될 할머니들의 물품이 방치되고 훼손되다니 나눔의집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이런 의혹에 대해 “나눔의집은 대한불교조계종이 직접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종단이 직접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관리감독권이 없다 하더라도 법인 정관에 따라 전체 이사의 3분의 2가 조계종 스님들로 채워져 있는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사실만 강조하는 태도는 실망스럽다. 1992년 나눔의집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던 스님들의 헌신까지 부정하는 꼴이다. 20년 넘게 나눔의집 운영에 관여해온 원행 스님이 현재 총무원장을 맡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조계종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설 운영진과 이사진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규명하고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또 후원금을 시설 운영을 위한 계좌가 아닌 법인계좌로 걷는 기형적 구조에 대해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못한 지자체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눔의집은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위안부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곳이다. 많은 이들이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힘든 노년을 보살피고자 기꺼이 후원금을 냈다. 드러나는 의혹들은 후원자와 시민들의 마음에 큰 실망을 안겨줬다. 뼈를 깎는 자정 의지로 나눔의집 설립정신을 다시 살려야 한다. 그것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남은 여섯 분을 위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상처 입은 위안부 인권 운동이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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