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통일보다 평화, 남과 북은 ‘국가 대 국가’로 만나야 한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23. 06:17

통일보다 평화, 남과 북은 ‘국가 대 국가’로 만나야 한다

등록 :2020-06-22 22:46수정 :2020-06-23 02:42

 

[박명림 기고] 한국전쟁과 오늘 그리고 내일 ​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70년이 지났으나 6·25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전쟁은 남북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를 포함한 지금의 국제질서를 낳은 핵심 사건이자, 전후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갈등과 질곡의 의식체계 그 자체였다. <한겨레>는 6·25 70돌을 맞아, 한국전쟁 연구에서 출발해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다양한 담론과 성찰을 제시해온 박명림 교수의 기고를 세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철학과 종교, 신화와 역사를 포함해 인류사에서 개인과 공동체에 숫자 70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과 현실 모두에서 충분 또는 완숙·완성의 의미를 갖는다. 동·서양이 동일하다. 2020년 우리는 현대 한국과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대비극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다.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최초 격전장이자 최후 협상 장소였던 개성의 한 건물 폭파가 상징하는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직시할 때, 지난 70년은 완숙과 충분은커녕 우리들의 미숙과 몽매가 너무도 크다는 점을 먼저 성찰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70년 포로생활을 감내한,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뒤집어서 불러야 할지 모른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6일 오후 2시50분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17일 보도한 사진. 연합뉴스

전후 북진통일과 적화통일, 승공통일과 공산통일 추구 시대에 남북 각각은 상대에게 한국전쟁 시점처럼 서로 타도해야 할 적이었다. 지금 북한은 공식 언명을 통해 다시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간주한다. 겉으로 보아 역사의 후퇴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남조선과 더 마주 앉을 일은 없다’며 남북관계의 확실한 단절과 종언을 반복 공언한다. 조롱과 폭언을 포함한 말 폭력은 정상적 국가 관계라면 절대 수용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전쟁 최초의 격전장이자최후 협상장이었던 곳의 폭파가

오늘의 한반도 상황이지만역사의 후퇴로만 볼수는 없어

역설적으로 남북관계를 넘어

항구 평화를 위한 필수조건으로‘국가 대 국가’로 승화시킬 기회다

따로 평화롭게 살면 된다

 

문제는, 활용 여하에 따라, 이 상황을 후퇴로만 볼 수 없다는 데에 남북관계의 모순적 본질이 존재한다. 남북관계는 개선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즉 ‘따로 평화롭게’ 살면 된다. 지금은 역설적으로 한반도 항구 평화를 위한 필수조건으로서, 남북관계(한국 대 북한, 조선 대 남조선)를 넘어 국가 대 국가 관계, 즉 한국 대 조선(한조) 관계로 승화시킬 절호의 기회다. 민족주의에 바탕한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넘어 보편주의에 기반한 한조관계로 전환할 수 있는 중대 계기인 것이다.그리하여 한국과 조선 두 나라 사이를 보편적 국제 규범과 원칙이 준수되는 관계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과 조선 사이의 기본조약 체결은 필수다. 이후부터는 평화파괴·조약위반·내정간섭·생명살상·재산손실은 엄정한 국제법적 기준과 규칙을 적용하면 된다. 더 이상 ‘민족 내부’ ‘특수 관계’라는 민족주의 인식에 매몰되어 애정과 증오, 접근과 적대를 단속적으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주목할 만한 점은 급진민족주의와 민족통일노선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세력인 86세대가 활동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간 대화가 중단됐다는 사실이다. 보수정부·보수세력이 아니라 진보정부와 세력, 특히 통일주의세대의 남북관계 접근이 상대에게 공식적 반복적 모욕적으로 거부되었다는 점은 깊은 함의를 갖는다.보수의 대북정책을 반통일정책이라고 비판하던 진보로서는 할 말이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남북관계 단절과 비핵평화 실패를 포함해, 민주화와 통일을 연결하려 했던 과거 운동권의 실험은 명백한 사상적 실천적 오류로 판명되었다. 민족과 통일의 관점에서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온정주의로 접근한 것이 얼마나 큰 패착이었는지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남한과 북한의 민주주의는 평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북한이 세습독재·인권유린·폐쇄체제를 지속하는 상태에서 통일주의와 통일운동은 비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이다.그러나 이 실패는 보수와 진보 모두 주권국가 한국과 조선의 관계를 민족 내부 문제로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실상 연속사태였다. 이승만·박정희가 이념통일을 추구한 전형이었다면 86세대는 민족통일을 지향한 대표세력이었다. 둘의 공통점은 각각 이념과 민족을 근거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자는 국가 이념과 정통성 독점사관에서, 후자는 분단사관과 민족통일주의에서 그러하였다.

 

전쟁세대의 국가보안법적 접근과 86세대 민족통일적 접근의 실패...

우리의 공식 통일방안 속살은민족이 아니라 국가, 통일이 아니라 평화가 요체였다

남북기본합의서, 유엔동시가입,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사실상 두개의 국가를 추구한 독립공존 평화우선주의였다

 

그렇다면 최근의 단절은 이미 파탄 난 국가보안법 방식의 북한 국가성·주권성 부인과 이념통일 접근에 이은 민족주의 방식의 북한 국가성·주권성 부인과 민족통일 접근의 파탄과 실패를 의미한다. 이념통일과 민족통일이라는 반대 방향의 두 통일접근이 왜 모두 실패를 낳았는지, 보편과 이성의 눈을 통해 이념동굴과 민족동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그들 스스로는 알 수가 없다. 이념과 민족, 이념통일과 민족통일은 빨리 내려놓을수록 좋다.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한 뒤 국가 대 국가 사이의 평화와 공존이 정답이다.노태우·김대중·이홍구의 합작품인, 한국의 공식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속살은 민족이 아니라 국가, 통일이 아니라 평화가 요체였다. 공동체를 국가 연합과 연방의 의미를 갖는 코먼웰스(commonwealth)로 해석·번역하는 데에 이 탁월한 선구자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유엔 동시 가입,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한-중·한-소 수교 역시 ‘사실상의 두 국가’를 추구한 독립공존의 평화우선주의였다.김대중은 ‘남과 북 모두가 서로 독립된 하나의 정권’이라면서 ‘통일보다 평화’, ‘평화가 통일 문제보다 중요’ ‘목적은 조속한 시일 내의 통일이 아닌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라고 장기간 명확하게 반복하고 있다. 그는 영리하게도 통일방안을 추상적으로 합의하여 통일 논의와 논쟁을 종식시켜버렸다. 노무현은 ‘북한 정권은 사실상 국가권력’이라면서, ‘두개 이상의 국가권력의 하나로의 통합’을 말하는 “평화통일, 과연 가능한 목표인가?”라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평화는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 ‘통일은 이념적 포장, 평화는 현실 그 자체’라고 통일주의의 허구를 날카롭게 짚는다.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홍구의 처방이, 한국전쟁의 통일주의와 그것이 낳은 통일폭력의 유산을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가는 한 지름길이다. 실제 한국과 조선의 그간의 최고위 공식 합의는 놀랍게도 ‘남북관계’를 넘어 ‘한조관계’로의 확고한 변전이었다. 두 나라의 최초 합의문인 7·4 공동성명에서는 ‘서울’과 ‘평양’이었던 두 정치체의 명칭은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에서는 ‘남·남측’ ‘북·북측’을 거치면서 마침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을 사용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은 쌍방의 국명이 본문에 들어간 첫 공식합의였다. 상호 정식 국호 사용은 이후 상례가 되었다.독립·주권의 상호 수용과 상대 국가의 공식 인정이었다. 노무현 시기에는 ‘분단된 조국’ ‘갈라진 조국’은 물론 ‘조국통일’이라는 표현 자체가 합의문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민족통일’은 흔적 자체가 없다. ‘분단과 통일’의 조합은 물론 ‘조국과 통일’의 조합도 찾을 수 없다. 더 놀라운 점은 ‘평화통일’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화와 통일 항목은 서로 분리되었다. 평화주의자 노무현의 선견이었다.전쟁세대의 국가보안법적 접근에 이어 과거 1980년대 이후 86세대가 취한 민족통일적 접근의 무력하고 허망한 실패를 볼 때, 상반되는 관념주의 통일담론인 이념통일 및 민족통일 노선들이, 한국과 조선의 사유와 정책에서 속히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퇴락하고 평화 세력과 사상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한반도 항구 평화는 정녕 쉽지 않다. 더 이상 그들의 낡은 잔해에 달라붙어 있어선 안 된다.우리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처음으로 가공할 분단 트라우마가 뿌리를 내렸다. 여러 나라가 분단을 겪었으나 한국처럼 깊은 집단 트라우마와 상처를 내장하지는 않았다. 즉 그동안 한국전쟁의 체험과 유산으로 인한 절정의 대결과 증오로 초래된, 내부 체제 및 남북 사이의 ‘국가폭력’ ‘통일폭력’과 ‘전쟁 트라우마’를 우리는 ‘분단폭력’과 ‘분단 트라우마’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운동과 인위로서의 통일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지구상에서 한국 국민과 청년들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통일폭력으로서 한국전쟁의 유산 때문이었다.단일민족·분단국가·분단시대·분단체제라는 종족주의적 허구도 넘어서야 한다. 한국과 조선의 현실 관계를 규율하는 것은 혈통·언어·민족·문화가 아니라 국가·주권·헌법·체제다. 즉 전통성이 아니라 근대성이다. 물론 분단을 통일과 대응하려는 시도도 오류다. 분단공존은 얼마든지 평화국가·평화시대·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과 적대의 반대는통일이 아니라 평화공존이다

독재를 겪지 않은 청년들에게 세습독재와의 통일 요구는 폭력...

한국과 조선의 평화 공존은 통일의 포기가 아닌 유예다

독립공존을 거친 평화세대에 의해

통일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한국과 조선 두 국가의 평화공존은 통일의 유예다. 그러나 통일의 포기는 아니다. 오히려 장기 평화야말로 교류와 접근을 통해 통일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국가 대 국가로서 평화 관계를 지속한 뒤 후대에서 폐쇄·세습독재·강제수용소·핵무기 같은 반인간적 반민주적 반평화적 요인을 해소한 시점에서 통일을 실현하는 게 옳다. 남북관계를 한조관계로 전환한 뒤 독립공존을 거친 평화세대에 의해 통일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실제 오늘의 청년세대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통일보다는 평화를 선호한다. 게다가 통일 찬성보다는 반대가 훨씬 더 높다.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그들에게 세습독재와의 통일 요구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옳다. 평화세대가 전쟁체험세대(6·25세대)와 통일운동세대(민주화세대)를 여하히 극복하느냐에 미래의 장기 평화가 달려 있다.참으로 깊은 사유와 통찰에 따르면 유사 이래 인류의 전쟁과 학살과 폭력은 가족과 동족과 민족을 포함해 주로 내부를 향해서였다. 반면 외부와의 그것들은 크게 적었다. 평화 철학과 연구의 위대한 발견이었다. 정치적 시민적 연대는 언제나 종족적 민족적 연대에 우선하였다. 반대로 종족 내, 민족 내 폭력은 종족 간, 민족 간 폭력을 압도하였다. 한국전쟁은 한 표징이었다. 근린증오와 근린적대의 보편성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성정과 인간사 일반을 모른 채 더 이상 민족통일과 같은 허상을 추구해선 안 된다.분단의 반대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다. 적대의 반대도 통일이 아니고 평화공존이다. 통일이 목적이 되면 언젠가는 한국전쟁처럼 통일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 통일 대신 평화가 목적이 됐을 때 끝내 통일폭력을 넘어 평화공존을 구가할 수 있다. 한국전쟁 70년, 한국과 조선은 이제 국가 대 국가로서 보편의 지평에서 만나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마침내 항구 평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고려대에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정치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하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하버드-옌칭 연구소 연구원 등을 지냈다. 그는 박사 논문을 보완해 출간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1996, 나남)와 치열한 사료 고증이 돋보이는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002, 나남)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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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박명림 기고 : 한국전쟁과 오늘 그리고 내일